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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봉건사회로 퇴보하는 대한민국

박창기 / (주)에카스 대표, 《혁신하라 한국경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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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적인 사회로 퇴보하고 있다. 최근 '갑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불거진 여러 사건들의 뿌리는 재벌 봉건체제에 있다. 필자는 졸저 《혁신하라 한국경제》에서 한국재벌의 구조가 봉건체제와 유사한 점 여덟가지를 설명했다. 재벌의 총수는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고, 권력은 자녀에게 세습된다. 간부 직원들은 중세의 가신들처럼 평생을 한 주군을 위해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한국의 내수시장은 봉건경제처럼 재벌그룹들이 자체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는 자급자족형 폐쇄경제가 압도적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자동차시장의 과점적 시장지배력을 활용하여, 보험업(현대해상화재보험), 할부금융과 신용카드업(현대캐피털), 증권업(HMC증권), 물류업(글로비스), 광고업(이노션), 전산개발업(오토에버), 건설업(현대엠코) 등을 영위한다. 이들은 그룹 자체의 물량의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후 외부시장을 공략해왔다. 지난 10년간 이들의 급속히 몸집을 불려가며 정몽구 회장과 그 가족의 개인적인 재산축적에 악용해 왔다. 삼성, LG, SK, 한화 등 다른 그룹들의 행태도 비슷하다. 수십개의 재벌집단이 봉토를 나누어 자급경제를 하며 영역 다툼을 하는 모습은 중세 봉건시대와 유사하다. 춘추시대에 주나라왕의 힘보다 봉건영주의 힘이 강했듯이, 현대 한국의 재벌들의 영향력은 국가기구를 능가한다.

 

현대 한국의 봉건영주, 재벌과 이권집단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 역시 폐쇄적으로 세습하며 공급을 제한하여 자신의 이권을 추구했던 봉건시대의 동업자조합인 '길드'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은 소득수준 상위 5% 안에 들어가고 유사한 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의 3배 정도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터무니없는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자식에게 일자리를 세습하는 권리까지 쟁취하기도 했다. 이들 역시 우리나라를 봉건제로 '퇴보'시키는 이권집단이다. '진보'란 봉건적인 압제와 신분차별을 혁파하여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의 사회로 만드는 과정이다. 소수가 자기들만 더 큰 이권을 얻기 위해 비정규직, 하청업체와의 임금격차를 확대해가는 것은 명백히 반동적인 퇴보다.

 

재벌의 지배집단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조의 부당한 요구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적대적 공존의 부작용으로 국민경제는 멍이 들고 수많은 서민들은 일자리 없는 설움과 빚독촉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2013년 들어 현대차는 노동조합의 태업 때문에 생산량이 부족해지자 국내 대신 중국에 생산기지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터무니없는 고임금에 통상임금을 대폭 올리는 문제까지 발생하자 한국지엠(전 대우차)은 계획했던 8조원 규모의 투자마저 다른 나라로 돌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외교적 결례와 법질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지엠대우의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에 직접 만나서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 고임금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리라. 만약 지엠대우가 8조원의 투자를 다른나라로 돌린다면, 뒤이어 봉건적인 구조가 국민경제를 몰락시키는 사건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 같아서 두렵다.

 

한국사회가 소수의 재벌을 중심축으로 관료집단, 전문가집단, 고임금 노조 등 기득권집단 20%가 80%의 서민을 착취하는 구조의 신분제도가 굳어져가며, 봉건적으로 퇴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의 횡포는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봉건적인 억압 관행이 일부 드러난 것일 뿐이다. 수십년간 '갑' 노릇을 해왔던 포스코의 임원은 항공사 승무원을 봉건시대의 노예 부리듯이 대했다. 기업주에게 아부하며 갑의 권력을 행사하던 남양유업의 간부들은, 조선시대 지주의 하수인이었던 마름처럼 대리점 주인들을 소작농 취급해왔다.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들에 대한 횡포는, CJ그룹이 수십년간 끊임없이 담합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봉건적 사법체계가 만들어낸 습관적인 만행이다.

 

80% 서민의 권익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윤창중의 성추행사건은 봉건적 억압장치를 이용하여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던 '장자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엘리뜨 카르텔의 업보다.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언론사의 최고위 인사들이 주범으로 가담했던 '장자연 사건'은 악질적인 범죄행위이었음에도 언론사의 권력을 이용하여 덮어버리고 국법질서를 유린한 사건이다. 이런 일에 익숙했을 법한 기자 출신 윤창중의 유흥습관이 어땠으며 여성에 대한 의식이 어땠는지 짐작하게 된다.

 

봉건적인 신분구조가 강화될수록 경제는 후퇴하고 사회는 부패되고 민심은 황폐해진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봉건체제는 언제나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서 전복된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자체장은 국민들이 낸 세금을 써가며 20% 기득권층의 이익에 종사하는 한국의 간접민주제적 정치구조는 엘리뜨 카르텔만을 위한 봉건체제를 강화시키고 있다. 소외된 80%의 서민도 국가의 정책에 자기 의사를 더 반영할 수 있는 직접민주제적 방향으로의 전환이 봉건적 신분사회로의 퇴화를 막고 풍요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13.5.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