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조르주 미누아 『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에 관해 우리는 말할 수 있는가?
-조르주 미누아 『자살의 역사』
“정말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뿐인데,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판단한다는 것은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부응한다.” 이와 같은 까뮈의 언설은 수많은 자발적 죽음의 행렬을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는 불경한 문제설정인 듯 여겨진다. 작가 김영하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자살문제를 논의하는 한 기고문에서 다른 사람의 자살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너무 두려워서 더이상 자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는 1996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에서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도와주는 자살안내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살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제 자살은 심각한 사회병리, 우울증 치료의 중요성, 자살예방을 위한 노력과 같은 언어가 아니고서는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을 우리는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침묵하거나 자살의 병리화를 추동하는 의료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시대는 자살에 관한 사유 자체를 멈추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심각한 자살이라는 문제 그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직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살에 대한 풍부한 사유와 연구
조르주 미누아(Georges Minois)의 『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이세진 옮김, 그린비 2014)는 이러한 사유의 여정에 좋은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자살이라는 문제는 자살자의 동기와 행위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적 사유이자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것을 통제하고자 한 권력기술 간의 투쟁이며,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한 인식을 포괄하는 주제이다. 이 책은 중세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회에서 발생한 자살을 둘러싼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16세기말(1580~1620)과 17세기말(1680~1720)의 두차례 결정적인 의식구조 변화와 연관지어 논의한다.
미누아는 풍부한 사료와 문헌을 통해 서양사회의 자살에 관한 인식과 태도가 계급에 따라 다르게 취급되었고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태도가 뒤섞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생명권력의 탄생을 논의한 푸꼬가 주로 새로운 담론의 형성과 변화에 주목했다면, 미누아는 담론의 반복과 점진적인 변화, 각축하는 다양한 시각의 상호공존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세시대에 자살은 교회법과 세속법 모두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었는데,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이상하리만치 잔혹한 태도를 취하였다. 자살자의 영혼은 지옥에 간다고 간주되었고 시신은 교회 묘지에 매장되지 못하였다. 고인의 재산은 몰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체모독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자살자의 시체는 얼굴이 바닥을 향하도록 하여 끌려 다니다가 거꾸로 매달리거나 화형당하고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영국에서는 가슴에 말뚝을 박아 큰길 아래에 묻기도 했다. 자살자의 시체에 대한 이와 같은 참혹한 처형장면은 자살을 억압하고 금지하기 위한 제도권력의 엄격한 조치였다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푸꼬는 공개처형과 시체전시의 관행이 군주가 신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음을 과시하는 권력의 기술이었음을 논의하였다. 죄가 확정된 사람의 자살이 특히 가혹하게 처벌되었다는 점은 자살이 생명의 위협을 통해 작동했던 군주의 생사여탈권에 대한 도전을 함축하였음을 보여준다. 중세시대에 자살은 악의 세력의 작용에 의한 사악한 죽음으로 인식되었기에 시체모독형이 퇴마의식으로서의 성격도 가졌다 함은 이러한 관행의 성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성경에는 자살에 대해 직접적으로 금지하거나 죄악시하는 논의가 없다. 또한 자발적 순교의 열정으로 인해 중세 초기 교회는 자살에 대해 다소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였다. 미누아는 자살을 적대시하는 풍조가 형성된 배경으로 로마제국의 발전과 함께 초래된 경제적·인구학적 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진단한다. 제국을 유지할 노동력과 군사력이 부족하고 교회의 소유지가 확산되면서 인구를 확장해야 할 인구정치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계급에 따라 자살에 대한 처벌이 양면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서민들의 자살은 매우 엄격하게 처벌되었는데, 이는 인구의 감수로 인해 세금이 줄어드는 것에 불만을 갖은 지배계층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귀족의 자살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이 취해졌다. 유족들은 자살자의 명예를 보호하고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당대에 허용된 자살자 처벌의 예외조항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13세기 중반 이래 자살은 ‘논 꼼뽀스 멘띠스’(non compos mentis,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경우)와 ‘펠로 데 쎄’(felo de se, 자기 자신을 배반한 경우)로 구분하여 후자의 경우에만 동산과 토지를 몰수하였다. 마귀 들림, 정신착란에 해당하는 경우 관대한 처분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지배계층의 태도는 중세시대의 자살이 악마나 광기의 작용으로만 논의되었던 사회경제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미누아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 급격한 위기를 맞아 기존의 가치들이 동요를 일으킬 때 자살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문제로 제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인문주의자와 철학자들은 자살이라는 주제로 많은 논의를 전개했다. 시대에 따라 자살에 관한 논의는 사회적으로 표명되기도 하고 억압되거나 은폐되기도 했다. 자살에 반대하는 주장은 신에 대한 복종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의 의무를 강조하는 입장이었고 자살을 옹호한 쪽에서는 존엄한 삶에 대한 요구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자살옹호론을 펼친 많은 이들은 자살하지 않았는데, 미누아는 자살에 대한 사유와 자유로운 토론이 자살충동을 승화하고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관점은 순교와 종교적 헌신, 전쟁, 결투와 같이 언뜻 자살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과 행동을 은밀하게 자살욕망을 내포한 행위로 바라본 점이다. 미누아는 이와 같은 행위들을 자살충동을 승화하는 당대의 사회적 행동양식이거나 삶 속에서 죽음을 실천하는 행위로 논의한다.
이 책의 번역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자살의 개인화와 의료화를 경계하고 자살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기획의 일부이다. 자살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당대 지배권력의 성격과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우리 시대의 자살에 관한 사유는 자살을 사회적으로 문제화하는 방식 자체를 되묻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인식이 되고 있는 우울증과 자살의 의료화가 자살이 제기하는 질문과 성찰 자체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불어 생각해보면 좋겠다.
정승화 /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2015.1.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