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주 티엔원 장편소설 『황인수기』
반동의 역사성
- 주 티엔원 장편소설 『황인수기(荒人手記)』
십여년 전 ‘세기말’이라는 말이 유행병처럼 번진 때가 있었다. ‘포스트’ 자가 붙은 책들이 슬그머니 서점가를 점령했고, 역사나 민족 같은 거창한 대의를 향한 냉소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입했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지만 ‘대의’를 향한 질주가 축적해온 피로를 되돌리기엔 너무 낡아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대책 없는 ‘반동’은 민주화의 열매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도 그 열매의 양가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대만 작가 주 티엔원(朱天文)의 『황인수기(荒人手記)』(김태성 옮김, 아시아 2013)를 보면서 우리의 90년대를 떠올린 것은 어딘가 낯익은 세기말의 정서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늘은 지금 대만사회의 처지를 보면 차라리 전주곡에 불과했다. 한국처럼 대만도 1987년 민주화시대의 분수령을 넘었지만, 그 열매는 너무나 썼다. 오랜 반독재운동 안쪽에 독버섯처럼 자라난 또다른 질곡이 대만사회의 저변을 한층 더 근원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당에 대한 저항운동은 어느샌가 외성인(外省人, 1949년 전후로 국민당정권과 함께 본토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본성인(本省人, 대만 원주민)의 저항이라는 종족대결로 치환되었고, 승리한 민주주의의 환호는 비극의 새 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민주화와 동성애운동
『황인수기』는 민주화의 기운이 완연했던 1994년에 출간되었다. 대만문학의 ‘포스트계엄’ 시대를 알리는 이 작품은 동성애소설이다. 지구상에서 동성애운동의 최전방에 서 있는 대만이지만 그 출발은 90년대초였다. 1991년 문화운동의 전위 『다오위비안위안(島嶼邊緣)』이 창간되었고, 이어 『아이바오(愛報)』 『뉘펑여우(女朋友)』 등 학원저널과 연대함으로써 동성애운동의 전진기지가 구축되었다. 영미와 구별되는 대만 동성애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학원운동을 근거지로 삼고 문인 등 작가군으로 확산됨으로써 강력해진 엘리트주의적 성격이다. 『황인수기』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출현했다.
물론 『황인수기』가 동성애를 다룬 최초의 대만소설은 아니다. 1983년 대만 모더니즘의 거두인 바이 시엔용(白先勇)이 이미 『서자(孼子)』라는 작품에서 동성애 문제를 다룬 바 있었다. 그러나 동성애문학이 공론장의 이슈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단연 『황인수기』였다. 특히 이 소설이 『중궈스바오(中國時報)』가 주관하는 ‘백만문학창작상’ 초대 수상작으로 선정(1994)됨으로써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펴졌다. 이에, 잇따라 동성애소설들이 뒤를 이음으로써 대만문단에 이른바 ‘동지문학(同志文學)’(대만에서는 동성애자를 ‘동지’라 부른다)의 대조류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가짜 대만인’ 선언
왜 대만에서는 포스트계엄 시대의 서두에 동성애문학이 출현했을까. 이는 민주화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 종족문제를 떠나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1993년 『다오위비안위안』에는 당시 대만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대족군(四大族群)’을 비꼬는 ‘가(假)대만인’ 특집이 전재되었다. ‘사대족군’이란 원주민, 민남인(閩南人), 객가인(客家人), 외성인(外省人)을 지칭하는 것으로, 외성인 대 본성인 구조로 대결해온 기존의 대만인 정체성 구조를 ‘신(新)대만인’이라는 새로운 국족(國族)으로 재구성하는 언설이었다. 이에 『다오위비안위안』은 ‘가짜 대만인’을 내세워 ‘신대만인’ 언설에 전면 대항했던 것이다. 이들은 ‘사대족군’에 들지 못하는 ‘제5족군’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천명했다. 자신들은 ‘신대만인’이 시도하는 인간의 동질화 기획에 편입하지 못하는, 마치 체에 거르고 나면 남는 찌꺼기와 같은 존재라며 비아냥거렸다.
『황인수기』에 나오는 ‘황인(desolate man)’은 바로 이런, 체에 걸러지지 않는 찌꺼기이다. 자신을 검열하고 편제하려 드는 권력을 피해, 황인들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복제인간처럼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숨어 다닌다. 더이상 후대를 생산하는 것에 흥미와 동력을 상실한 채 그저 주어진 생명이 조금만 더 연장되기를 기도하며 사회의 주변부를 떠도는 욕정의 무리들. 규범을 어긴 죄로 평생 외롭게 망명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버려진 피조물 ‘황인’들의 운명이다.
반동적 동성애서사
그런데 동성애문학으로서 『황인수기』의 문제성은 주인공 ‘나’의 모호한 위치에 있다. ‘나’는 결코 자각한 성소수자가 아니다. 그것은 급진적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인 ‘아야오’에 대한 ‘나’의 거리두기에서 잘 드러난다. 어린 시절 ‘나’의 성정체성을 일깨워준 정신적 멘토이자 첫사랑의 대상인 아야오가 세상에 펼치는 저항에, ‘나’는 좀처럼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한다. ‘나’의 눈에 아야오는 중국신화 속, 황제(黃帝)에 대들다 죽임을 당한 형천(邢天)처럼 무모한 반항아일 뿐이다. 결국 아야오를 에이즈로 죽게 하고 그것을 모든 ‘황인’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황인수기』는 ‘동지’를 배반하는 반동서사로 미끄러질 경각에 놓이고 만다.
세상에 저항하지 않는 동성애자. 동성애문학 『황인수기』의 ‘진본성(authenticity)’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 아야오가 에이즈로 죽고 마는 설정이나 임종 직전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장면은 결국 이 작품이 주류서사에 갇힌 반동서사라는 낙인을 얻게 만들었다. 또한 작품 전반에 밴 병적인 탐미주의와 허무주의 또한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표현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곤 했다. 고분고분하고 순하게 살면서 남들을 즐겁게 하는 광대노릇까지 마다하지 않다보면 운명도 감동하여 조금 더 오래 살게 해줄 거라는 ‘황인’의 소박한 소망은, 분명 동성애서사에 대한 심각한 결핍이자 배반이다.
출구 없음의 역사성
이러한 반동성은 『황인수기』를 일반적인 동성애소설로 보아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90년대 대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이 개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당 군속(軍屬) 작가 주 시닝(朱西寧)의 딸로 태어난 주 티엔원은 어린 시절을 ‘권촌(眷村)’에서 보냈다. 그의 초기작품에 중요한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권촌은 대륙에서 내려온 국민당 군인과 그 가솔들을 위해 만든 집단거주지였다. 『황인수기』에서 권촌은 짧지만 의미있는 한 장면으로 삽입된다. 바로 십팔년 전 위인의 붕어, 즉 1975년 장제스의 죽음이다. 마치 온 마을이 집단최면에 걸린 양 TV에서 반복되는 위인의 일생과 인터뷰를 들으며 가사상태에 빠져 있던 그 시절을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사심 없이 마음을 연 마지막 날”로 기억한다. 작가에게 그것은 오류임을 알면서도 신화로 굳어져 어쩌지 못하는 ‘원향(原鄕)’이었다.
‘황인’의 방황은 그 원향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린 시절 순결하게 믿었던 진리가 오류로 판명난 이 아비 부재의 사회에서 ‘나’는 부랑아처럼 어둠을 전전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동성애자에겐 조국이 없다고. 그러나 이 고별선언엔 출구가 없다. 그가 고별하고자 했던 원향은 진정 무엇이었는가. 만약 그것이 국민당 시대의 신화라면, 이 작품이 씌어진 90년대초는 이미 그 환각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진 때가 아닌가. 여기에 ‘황인’의 딜레마가 있다. 신화가 그 옹색한 민낯을 남김없이 드러낸 봄날의 햇빛 아래, 그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을 분류하고 편제하려는 사회의 욕망은 신화의 베일이 걷힌 포스트계엄 시대에 한층 더 전방위적으로 집요하게 조직되고 있었던 것이다. 원향에 대한 황인의 고별은 원향 주변을 유령처럼 맴돌 뿐이다.
결국 ‘황인’이 선택한 것은 세상의 모든 가능한 원향에 대한 고별이다. 심지어 조국이 없는 것조차도 신조가 될까 두려워하는 철두철미한 원자화. 이것이 『황인수기』의 동성애서사로서의 결핍과 배반을 초래한 것이다. 『황인수기』의 반동은 어쩌면 역사성에 대한 담보물인지 모른다.
백지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5.2.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