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조성주, 그리고 청년의 정치
최근 정의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조성주 후보의 출마선언문과 그 지지선언이 화제가 되었다. 조후보는 2010년 청년유니온 설립을 주도한 이래 청년현실에 밀접한 정치의제를 직접 다뤄왔고,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치발전소 등의 단체를 이끌며 청년과 노동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의제를 발굴했으며, 이제는 정의당이라는 정당을 통해 중앙정치에서 또다른 바람이 불게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가 주목받는 것은 그의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른일곱이라는, 정치인으로서는 어리게 느껴지는 나이도 한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 사람들은 정치계에 끊임없이 등장해온 청년들의 모습에 새삼 놀라는 것일까?
지금, 청년의 정치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청년정치’라는 말을 통해 일컫는 ‘청년’은 같은 나이의 직장인이나 주부를 칭하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오히려 ‘청년’은 2008년도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취업난을 겪으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를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청년정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체화(正體化)하고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정체성 정치이자 인정투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점이 바로 조성주 후보의 기반이 된 청년유니온의 노동운동이 기존의 노조 기반 노동운동과 다른 점이다. 청년유니온은 한국 최초의 세대노조로서 구직자들의 노동, 특히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로서의 청년을 정체화·가시화하였다.
조성주의 정치관은 단지 청년세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정치발전소에서 미국의 사회운동가 알린스키(S. Aiinsky, 1909~1972)의 정치철학을 강의해온 조성주는 ‘가능한 진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이상적인 목표로서는 등록금을 전혀 내지 않고 대학에 다닐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이 당장 현실화될 가망이 없다면 등록금을 후불제로 내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작은 실패 에도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이상적인 목표보다 현실적인 목표의 실행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의 접근은 때로 목표가 너무 작지 않느냐는 의심을 사지만, 오히려 그 누구의 계획보다도 조금씩 진전되는 사회를 향해 있다.
우리는 2010년대 들어 청년세대가 정치주체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한편,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하나의 정치주체로서 여기게 될 수밖에 없었던 흐름을 포착할 수 있다. 그 원인인 청년세대의 주변화 및 그에 따른 경제난에 대해 상당부분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이가 바로 지금의 조성주다.
더욱 다양하고 적극적인 목소리가 나와야
하지만 그것으로 청년의 정치가 완결될 수는 없다. 다음 과제는 청년세대를 조성주라는 한 개인이 대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다양한 당사자적/비당사자적 운동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청년세대가 자신을 위해, 또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치의 영역에서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새로 조직되는 학생조직을 기반으로 청년세대운동 및 청년정치를 주도하려는 이들, 여성, 장애, 환경문제, 성적 다양성 등 기존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했던 영역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더 주목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조직 형태를 따르지 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청년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청년의제가 이미 하나의 정치주체로는 포괄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세대 내부를 이끌어가면서 전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노력을 우리 모두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진달래 /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전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2015.7.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