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대학개혁, 구조화된 병폐의 청산이 우선이다: 교육부의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 발표를 보고

윤지관

윤지관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민심 폭발과 정치권의 대통령 탄핵소추로 한국 사회가 요동치는 가운데 어떻게 이 위기를 사회변혁의 계기로 전환해나갈 것인가라는 과제가 목전에 닥쳐 있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고 특히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시기를 맞은 대학 문제가 그렇다. 대통령 탄핵소추로 이어진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이 이화여대의 학사부정이고 이대사태가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 사업이 초래한 교육현장 왜곡에서 촉발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교육부가 그동안 대학통제의 채찍과 재정지원의 당근을 구사하여 어떻게 대학들을 줄 세우고 순응시켰는지 확연히 드러낸 이대사태는 한국 대학들이 처한 상황의 축도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 '개선안'이 불러올 대학교육 '황폐화'

 

그렇다면 촛불민심이 확산되고 구악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시기에 교육부의 관행이나 정책방향에 어떤 변화라도 있었는가? 전혀 아니다. 민심이 들끓던 지난 11월 말 교육부는 2주기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위한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평가를 통해 전국 대학을 이등분하여 상위 50퍼센트에 대해서는 조정을 면제하고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대학들에만 대폭 정원감축을 요구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1주기 평가방식이 전국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누어 최상위인 A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에 차등적으로 정원감축을 요구한 것과는 달리, 절반에 달하는 하위대학에 조정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이 실행된다면 군소대학들과 지방사립대 대다수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한국의 대학생 절반을 황폐화된 교육환경 속에 방치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어서 교육부는 대통령 탄핵투표를 앞둔 지난 12월 8일, 내년 1학기부터 시행을 목표로 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을 아무런 공론과정 없이 발표했다. 동시에 이를 위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시대”에 대응하는 “창의혁신인재 양성”을 내세운 이 개선방안은 그동안 교육부가 대학을 옥죄는 수단으로 삼아온 효율이나 생산성 위주의 기업체식 구조조정 정책의 연속이자 그 폐해를 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탄핵정국 속에서 이에 대한 공론은 일체 생략되고 언론들은 학사운영을 유연하게 한다는 교육부의 홍보자료를 그대로 보도했다.

 

현실 반영하지 않은 융합전공제는 효과 거두기 힘들 것 

 

이 방안은 명목상으로는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학사운영을 허용하자는 것으로 실제로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 대학사회 일각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융합전공제를 비롯 대학 간 교류 활성화니 유연학기제니 원격수업이니 해외진출 지원 등 다양한 ‘개선방안’이 열거된다. 그러나 역시 초점은 융합전공제라고 하겠고 그 목적은 학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 “칸막이식 3차산업형 학사구조”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통섭능력을 갖춘 융복합적 인재양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학은 학과전공을 넘어선 융합전공 개설을 자유롭게 하고 학생은 자신이 속한 학과의 전공필수를 이수할 의무 없이 신설된 융합전공을 선택하거나 스스로 전공내용을 구성하여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얼핏 보면 이 개선방안은 기존 전공의 틀을 벗어난 융합을 촉진하고 학생에게 학과의 틀에 매이지 않을 선택권을 준다는 점에서 학생중심의 개혁으로 오인되기 쉽다. 그러나 해당전공에 대한 필수 수련조차 없이 다른 전공과의 융합을 해낼 역량이 학생에게 갖추어질 리도 없거니와, 교양과정을 제외하고 2~3년에 불과한 전공수업 기간 동안 학문체계도 채 형성되지 못한 신설 융합전공을 제대로 이수한다는 것은 거의 무망하다. 이 같은 방식이 효과를 거두려면 미국의 연구대학들이 그렇듯이 학부교육을 소양중심으로 하고 전문교육은 대학원에서 하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거나, 최소한 학생들의 선택에 부응할 수 있는 교수진의 충분한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수 1인당 학생수가 OECD 평균의 두배에 달하는 것이 한국 대부분 대학의 현실이다.

 

이런 열악한 여건에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새로운 전공을 개발하고 학과의 벽을 허물겠다는 정책은 터무니없거니와 지금까지 산학 중심으로 추진하던 ‘통폐합’을 ‘유연화’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작년 3월 중앙대가 이와 흡사하게 학과를 없애고 학생의 선택에 의한 자율전공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후 교수 학생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것도 그것이 진정한 자율화라기보다 기초학문을 고사시켜온 구조조정의 일환인 점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이번 학사제도 개선방안은 중앙대의 시도를 모든 대학에 전면화하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뿌리 깊은 구조적 병폐 해결에 나설 때 

 

현재 한국 대학이 처해 있는 상황은 엄중하다. 이대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시피 현 정권 들어와 재정지원을 빌미로 한 대학통제가 극에 달하고, 구조조정의 명분 아래 극단적인 시장주의정책을 강행함으로써 기초학문의 토대가 무너지고 대학의 창의력과 주체적인 역량은 거의 소실되었다. 무엇보다 수도권 일류대를 정점으로 한 심각한 서열화와 고액등록금으로 유지되고 전근대적으로 운영되는 사립대 중심의 대학체제를 그대로 두고 지구화 시대에 한국의 대학이 제 역할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대학사회가 구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길은 이 위기를 한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진정한 대학개혁은 어설프고 잡다한 ‘학사제도개선’이 아니라 뿌리 깊은 대학의 적폐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2016.12.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