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제임스 W. 페니베이커 『단어의 사생활』
단어는 당신을 말해준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단어의 사생활』, 사이 2016
신년의 첫달도 중순을 넘었건만,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언어는 여전히 화제다. 거기에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말로 귀국 일성을 대신한 새로운 대선후보의 ‘형용모순 수사법’까지 가세했다. 이 애매한 정체성 선언에 사람들은 ‘비박 같은 친박’부터 ‘부먹적 찍먹주의자’까지 재치 넘치는 패러디로 응답 중이다. “술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이후 최고의 히트작이 될 듯한 예감이 드는 건 나뿐일까. 심지어 “사심 없고 개인생활 없고 가족 멀리하고 오로지 공적인 업무만 했다”는 인터뷰는 탄핵당한 권력자의 언어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심리학자인 저자(James W. Pennebaker)가 블로그 등 인터넷 게시물, 문학작품, 영화, 노래 가사, 정치인의 말과 글 등을 분석해 인간의 다양한 심리상태를 설명한 책 『단어의 사생활』(김아영 옮김)이 흥미로운 지점도 이 부분이다. 하루에 ‘1만 6천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각자의 단어 사용 스타일이 있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말하더라도 뭔가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 역시 ‘법꾸라지’들의 현란한 말바꾸기가 거짓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헬조선’, 그리고 대통령의 언어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그냥 <회사> 혹은 더 나쁜 경우에는 <저 회사>, <그 회사>라고 말하고 동료들을 가리켜 <그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면 이는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들 회사>가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직원들 스스로 직업적 정체성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회사> 직원들은 불행하게 일하고 이직률도 높다.(18면)
이 분석에 따르면 한국 대신 ‘조선’, 그것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우리의 상황은 매우 우려되는 것이다. ‘조선’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이 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단어가 젊은 세대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들은 ‘대한민국’ 대신 ‘조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언제든 탈출하고 싶은 자신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그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SNS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2016년 10월말에 시작된 국정농단 폭로부터 12월초 탄핵 가결 때까지 ‘행복’에 대한 언급이 급증했는데, 이는 현재 ‘행복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행복하고 싶다’라는, 달성해야 할 목표로서의 행복이었다.(배영 「[빅데이터로 세상읽기] 한국인에게 ‘행복’은?」 한국일보 2017.1.15.) 국가의 위기상황 속에서 오히려 행복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면이다. ‘공정’이나 ‘진정성’ 같은 단어들이 한국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은 이런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런 가치들이 극도로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진단(김준형·윤상헌 『언어의 배반』, 뜨인돌 2013)이 이미 나온 바 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같은 비극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구글 번역기에서 영어로 번역해보면 더 이해가 쉽다”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대통령의 언어가 보내는 위험신호를 애써 무시하고 외면해왔던 건 아니었을까. “언어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언어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도 만든다. 독재자의 언어를 애용하는 사람은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걷는다. 박근혜가 사용하는 단어, 문장, 어법을 면밀하게 뜯어보고 그 안에 담긴 그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심리상태를 국민이 진즉에 알아차렸다면, 한국 정치의 불행은 오늘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박근혜의 말』(원더박스 2016)의 저자 최종희의 분석은 늦었지만, 그래서 귀담아들을 만하다.
‘블랙리스트’를 버젓이 집행해온 정부에 기대할 수준의 주문은 아니지만, 정책언어의 빈곤함과 유행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이 철지난 언어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최순실 정국’을 거치면서 관가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은 어느새 ‘금기어’가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7년 신년 업무보고에서 ‘K’로 시작하는 모든 사업의 이름을 재빨리 바꿔버린 것처럼. 문제는 이와 같이 언어를 쓰고 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 언어 자체가 갖고 있던 기능조차 오염시키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총합
결국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총합이다. 우리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단어를 분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어 사용이 구매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구글을 비롯한 검색엔진 회사에는 그리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이미 페이스북은 내 검색어나 내가 주문한 물품과 유사한 광고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을 만큼의 알고리즘 분석을 끝낸 상태다. 온라인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당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신도 모르던 당신’을 구글의 검색엔진이 더 잘 반영해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이 사용한 단어는 그 사람을 충실하게 반영하지만 단어 그 자체만으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고 공감하는 기본적인 능력마저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는 분석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다. 당신은 오늘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접하고, 입 밖으로 내보냈는가? 이름과 실재가 일치하는 ‘정명(正名)’을 찾아보기 어려운 2017년의 한국에서 당신은 어떤 언어로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가? 저자의 말대로 단어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열쇠’라면, 당신은 누구의 마음을 열 것인가?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7.1.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