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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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미국 민주당의 ‘공정무역’과 한미FTA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자유무역의 대안으로 '공정무역'(fair trade)이 추천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공+수출'로 요약될 개발독재시절 '압축성장의 추억'은 너무나 강렬하다.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 가치로 강등된 지 오래인 '반공'이야 이제 그렇다 치더라도, '수출' 프레임을 건드린다면 정치적 뭇매를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출에 대한 대중의 신화는 '자유무역'으로 포장되어 가히 우리 사회에서 '물신'의 지위에 올라 있다.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들마저 우리가 '수출로 먹고산다'는 담론의 엄중한 진리성은 부정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실은 강자의 보호주의이며, 또 지배이데올로기의 변종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임을 입증하기에 이 지면은 사실 비좁다.


근대 경제학의 '교부(敎父)' 폴 쌔뮤얼슨조차 "자유무역이 언제나 윈-윈인 것은 아니다"라고 일갈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한미FTA를 추진한 한국형 신자유주의자들은 끊임없이 그것이 '윈-윈'임을 강변해왔다. '다행히'(?) 미국의 경제위기는 이들의 경험적 준거, 곧 '지상낙원 미국'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렸지만, 그럼에도 MB정부의 믿음은 굳건하다. 이제는 미국 로비스트까지 고용해서라도 한미FTA를 미 의회에서 조속히 통과시키겠다 한다. 로비가 불법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바마정부가 '로비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을 잠시 잊었나 보다. 미국인 4분의 3이 자유무역협정이 미국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로비를 통해 미국 민심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미국의 새로운 통상흐름, 공정무역론


작년 선거를 통해 또다시 공정무역론자들이 미 의회에 진출해 그 수가 현재 71명에 달한다. 이 말은 공정무역론이 단순한 규범적 요청을 넘어 하나의 정치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08년 110대 의회에서 상원의원 브라운(S. Brown), 하원의원 미셔드(M. Michaud) 등 80여명의 상하 양원 의원들이 발의한 '2008년 통상법'(TRADE Act)은 미국 민주당, 나아가 미국 시민사회 공정무역론의 신로드맵이라 할 만하다. 수많은 타협을 거칠 이 법안의 최종 모습이 어떨지 현재로서 알기 어렵지만, 어쨌든 한미FTA는 말할 것도 없고 전지구적 통상거버넌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주요 내용을 짚어보면 이러하다.


첫째, 2010년 6월 10일까지 연방회계감사국(GAO)은 기존 통상조약에 대한 포괄적 재검토를 실시하고, 대통령은 2008년 통상법상의 기준과 상이한 부분에 대한 재협상 계획서를 제출한다. 이 계획서는 예컨대 한미FTA 등 현재 계류중인 협정에 대한 의회심의 '이전에' 제출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 환경, 식품 및 공산품 안전기준, 국가안보 예외조항, 무역구제, 연방주의 강화는 모든 협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의 재협상 계획서 심의를 위한 별도의 위원회를 신설한다. 넷째, 기존 신속협상절차(fast track)를 대체할 새로운 절차를 마련한다.


세부 항목에 들어가서 보자면 먼저 써비스산업과 관련해, '포지티브 리스트'를 채택하고 있다. 쉽게 말해 개방할 부문만 열거하는 방식이다. '네거티브 리스트', 곧 개방하지 않을 부문만 추려 유보 리스트를 만드는 '미국식 FTA'의 일대 혁신이라 할 만하다. 한미FTA 협상은 물론 자본시장통합법 논란 당시에도 '네거티브 방식'이 마치 세상의 최신 조류인 것처럼 떠들던 우리의 통상관료들은 이제 뭐라고 할지 그 입이 궁금하다. 포지티브 방식이 채택되면 한미FTA의 전면 수술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새 통상법은 사회보장, 보건의료, 안전, 교육, 물, 위생 등을 포함한 공공써비스 민영화 및 규제완화를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예컨대 학교와 병원에 대한 '영리법인화' 같은 규제완화를 통상협정을 이유로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새로 제정된 미 통상법과 한미FTA 간의 충돌


그리고 투자와 관련해서는 ① 투자자-정부소송제(ISD) 적용 배제 ② 투자, 투자자에 대한 엄밀한 개념 정의 ③ '투자계약'에 대한 분쟁해결절차 적용 제한 ④ 미국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권리 제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 2008년 통상법은 투자 관련 조항과 ISD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악명 높은' ISD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각 주의 '공정무역연합'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미연방정부를 외국 법정에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여러 FTA상의 해당조항과 관련해, 나는 이 권한을 엄격히 제한할 것이며 또한 공공안전을 보호하거나 공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제정된 모든 법률과 규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배제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ISD를 대폭 손질하는 것과 관련해 미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 비슷한 흐름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겠다. 만에 하나 투자 챕터에서 ISD가 분리된다면, 한미FTA 투자조항의 대폭 수정 또한 불가피해진다.


2008년 통상법상의 의약품 접근권 강화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ISD와 더불어 한미FTA 최대 독소조항 중 하나인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조항과 상충할 가능성이 높다. 식품안전 강화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한미 쇠고기협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한미FTA 농업조항이 2008년 통상법과 조화되는지도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무역구제는 명백히 강화되는 추세며, 한국 환율시장의 상황에서 볼 때 외환의 급격한 진출입과 관련된 금융 쎄이프가드를 재점검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아울러 한미FTA '농업 특별쎄이프가드' 역시 엉터리 협상의 전형인 바, 자국 농민의 보호를 강조하는 2008년 통상법의 취지에서 보자면 전혀 맞지 않다.


2008년 통상법에 표현된 미국 민주당의 공정무역 로드맵은 매우 포괄적이다. 2차대전 직후 선진국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제1세대 공정무역론이 커피 등 제3세계 상품에 대한 가격보상 캠페인에 가깝다면, 지금 논의되는 것은 훨씬 높은 차원의 통상거버넌스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관세·비관세장벽의 강화를 통한 자국산업 보호를 지향하는 단순한 보호주의 경향과 달리, 통상을 통해 기층 대중의 일자리 창출, 소득보전까지도 기대하고 있다.


통상의제를 시민사회로 회수하자


통상이 차지하는 비중에도 불구하고 통상의제와 시민사회는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통상 패러다임의 전환과 새로운 세계화정책을 위해서는 통상의제를 시민사회로 '회수'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 과정에서 한미간 시민사회 차원의 연대 혹은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또한 새로운 대안으로 긴급하다.


2009.2.11 ⓒ 이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