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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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한강 『소년이 온다』

어떤 기억의 방식


『소년이 온다』가 우리에게 묻는 것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는 ‘기억’에 대한 너무도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나온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117면) 1980년 5월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한 사내의 말이다. 우리는 교대 복학생 신분의 한 젊은이가 체포 후 겪었던 지옥 같은 고문과 짐승의 시간을 파편적으로 듣기도 했지만, ‘몸이 사라져주기만’ 바랐던 그 참혹한 기억이란 기실 근본적으로는 ‘증언될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절규하듯 조금씩 자신의 몸을 떼어내는 고통 속에 들려주는 기억의 한 끝에는 영원히 묻어두고 싶은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도청에 숨어 있다 두 손을 들고 내려온 네명의 고등학생과 한명의 중학생을 향해 계엄군 장교는 M16을 조준해 발사한다. 그는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 꿇고 앉아 도청 마당에서 그 장면을 목도한다.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133면)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열여섯살 중학생 아이의 이름은 강동호. 계엄군의 총탄을 맞은 친구 박정대의 손을 놓치고 혼자 달아났다는 죄책감에 끝까지 도청에 남는, ‘소년이 온다’의 그 ‘소년’이다. 사내는 반문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135면)

 

『소년이 온다』는 그때 죽고 사라진 이들의 이야기이면서, 더 많게는 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죽은 이들은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기억은 견딜 수 없는 형벌이다. 그날 새벽 가두방송을 맡아 하다 체포된 스물한살 미싱사 임선주(그녀는 석방된 뒤 학살과 고문의 악몽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광주로 갔다가 학생들이 몰래 벽에 붙인 그날의 사진에서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워 있는 동호의 시신을 본다. 그는 ‘분노’의 힘으로 다시 살아가기로 하지만, 그날 동호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자책은 계속된 악몽으로 돌아온다)의 절규도 있다.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167면)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174면) 그렇다면 여기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년 동호의 목소리와 살아남은 자들의 견딜 수 없는 기억들은 누가 대신하고, 들려주는 것인가. 물론 소설가 한강이다. 그런데 무슨 ‘권한’으로? 또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소년이 온다』가 광주를 다룬 한편의 뛰어난 소설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묻고 말을 거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장편의 에필로그에는 갑자기 ‘나’라는 화자가 등장해서 소설을 쓰게 된 경위를 들려주거니와, 통상적으로는 ‘작가의 말’로 들어갈 부분일 테다. 그러나 에필로그를 읽어가면서 우리는 1970년대와 80년대초, 광주 중흥동의 한 한옥을 둘러싼 소녀와 소년의 엇갈린 연대기가 이 소설의 오랜 뿌리로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물론 여기에 부분적으로 소설적 변용이 있을 수는 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그 한옥에서 8년여를 살다 1980년 1월 서울 수유리로 온 소녀는 예전 자신이 살던 집으로 이사 온 중학생 소년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되고, 생각한다. “일가친척 중 누구도 다치거나 죽거나 끌려가지 않았다. 다만 그해 가을 나는 생각했다. 차가운 장판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숙제를 하던 방, 그 부엌머리 방을 그 중학생이 쓰지 않았을까.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208면)

 

소녀는 이태 뒤 광주학살 사진집을 어른들 몰래 보게도 된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199면) 그러니 이 소설은 그 소년을 찾아가는 30여년의 긴 기억의 여정인 셈이다. 에필로그가 소설의 몸체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그러나 이게 정말 우연일까?) 이 사적인 인연으로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 앞에 도착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 자신에게 새삼 뜨겁게 되묻게 만든다.

 

그날의 광주와 지금 이곳의 이야기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그간 공적인 기억의 영역이나 역사적 평가에서라면, 여전한 일부의 왜곡되고 저열한 이념공세에도 불구하고 어느만큼은 합당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인 기억은 언제든 얼마만큼은 박제화될 위험 또한 안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쉽게 일컫는 대로 희생자였을까.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213면)

 

자료를 읽다 악몽에 쫓기고, 디지털 계기판의 연도와 날짜를 그해 그 날짜로 입력하는 혼신의 대면 끝에 작가는, 그날의 그 행동이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그러나 정작 그 비장해야 할 시간에 다들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앞서의 증언자는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인간 존엄의 싸움은 불행히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 남일당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작가가 자신도 모르게 “저건 광주잖아”라고 불쑥 중얼거렸던 것처럼.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207면)

 

사태의 성격은 다를지언정 세월호 참사 이후 ‘잊지 말자’는 말이 분노와 탄식을 넘어 생생한 다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공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제기가 개인의 기억과 진실의 이야기로 거듭 확인되고 보충되지 않는다면, 망각의 정치, 망각의 시간은 언제든 고개를 들지도 모른다. 『소년이 온다』가 보여주는 기억의 방식은 ‘그날의 광주’를 위해서도 ‘지금 이곳’을 위해서도 전혀 뒤늦은 것이 아니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4.7.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