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
- 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다산에듀 2014
이 책의 저자 이혜정 박사는 평점평균 4.0(만점 4.3) 이상인 서울대 2~3학년 최우등생 150명 중 46명에 대한 심층면접, 전체 재학생 상대 설문조사, 미국 미시건 대학과의 비교연구 등 장기간의 실증적 조사연구를 통해 서울대의 학부교육을 해부한다. 나로서는 서평 청탁을 받은 것을 후회할 만큼 난감한 내용도 있다. 내가 몸담은 서울대의 교육실태에 대한 심각한 비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의 학부교육은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이 아닌 수용적 사고력 위주의 교육에 심하게 기울어 있다. 최우등생들의 학업전략에 대한 묘사는 충격적이라고 해도 좋다. 그들은 교수의 강의를 그야말로 농담까지 받아 적을 정도로 철저하게 1차 필기를 한다. 그리고 “수업 후에 이를 구조화하고 도식화하는 2차 필기”를 함으로써 수업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따라서 예습보다는 복습에 집중하는 학습법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며, 강의실에서 창의적인 문제제기나 활발한 토론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서울대 교육의 뼈아픈 현실
이 결과는 문학작품을 해독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과정이 주를 이루는 문학수업과는 거리가 있어서 나로서는 다소 낯설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는 공부법에만 익숙해서 문학수업에 대처하지 못하는 ‘우수한’ 학생은 나도 종종 겪었다. 서울대 교육의 현황에 대해 심각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책 내용 중 가장 뼈아픈 것은 서울대 학생에게 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6장 ‘공부를 즐기기보다 견디는 능력’이 묘사하는 최우등생은 “해야 할 일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에 능하고, 그리하여 잘 즐기기보다 잘 견디는 것에 능숙”하다. 이른바 ‘동기조절능력’이 탁월한 학생들이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정말 흥미있는 것에 몰입하여 열정을 쏟은 경험이 별로 없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미래를 살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똑똑한 젊은이들이지만, 정작 그 행복은 “고시, 대기업, 교수 정도에 국한”된다.
물론 이와는 다른 성향의 최우등생들도 있다. 하지만 3월초에 면담한 신입생에게서 “부모님의 뜻대로 로스쿨 진학이 목표”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나올 때 내가 느꼈던 당혹감과 저자의 설명은 상통한다. 로스쿨 공부가 뭔지도 모를 나이에, 낯선 선생 앞에서 부모의 뜻을 입에 올리기 싫은 자의식이 생겨야 마땅할 나이에, 장래의 포부에 대해 이런 대답이 나온다는 것은 듣기에 무척 괴로운 일이다.
서울대가 학부교육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비판 또한 뼈아프다. 교수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체제가 연구 중심이기 때문에 자연히 교육을 등한히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대학 내부의 경쟁체제가 강화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서울대의 세계 대학랭킹은 올라가도 학부교육은 정체되거나 심지어 방기되는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어려운 일들은 제쳐놓더라도, 교수들이 학과별, 단과대학별, 혹은 특정한 주제에 따라 자주 모임을 가지고 교육과 관련한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는 문화가 별로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것은 제도나 여건을 탓할 필요도 없이 교수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개선할 허점이다. 이런 노력을 앞세울 때만이 저자가 언급하는 홍콩 중문대나 싱가포르국립대의 교육 관련 교수평가 제도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저자의 시각에는 아쉬운 점도 많다. 논의가 교수법 위주로 흘러가면서 더 큰 제도적 문제에 소홀하다. 무엇보다도 서울대가 대학 본연의 모습을 이미 많이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서울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는 경영대, 치의대로 대표되는 직업학교(vocational school)적인 전공이고, 이런 경향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수의대와 약대는 6년제로 바뀐 지 오래이며, 법대는 폐지되었지만 로스쿨을 위한 학점경쟁은 치열하되 아직 학부교육의 내실화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범대 역시 실제 교사 배출현황과 무관하게 교육내용은 점점 더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창의적·비판적 사고력의 양성, 즉 인문교육(liberal education)의 본령은 교양과목들과 이를 주로 담당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맡겨지지만, 실제로 그 담당교수의 과반은 열악한 처우의 비정규직 계약교수와 시간강사이다. 그러니 교양과목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나마 서울대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강조하던 핵심교양제도를 10년 남짓 운영해본 끝에 최근 폐지함으로써 교양교육 약화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또한 교육부의 허용 방침에 따라 신입생 모집도 학부제에서 학과별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공지식에 대한 수용적 학습을 강조하는 전공 중심 교육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실망을 금할 수 없는 일은 핵심교양제도의 폐지와 마찬가지로 학과별 모집 전환 또한 기존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빠진 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학부제 실시가 대학의 자율적 논의와 결정을 바탕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교육당국에 의해 타율적으로 강요된 면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서울대는 학부제를 실행하면서 통합교육의 대의를 내세웠으며, 자연대 생명과학부나 공대 재료공학부와 같은 학제 개편의 성과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부제의 부작용만 부각되면서 시대를 선도할 통합교육의 대의는 까맣게 잊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실증적인 조사와 자료 축적을 토대로 한 저자의 연구가 역설적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면이 있다. 개별 대학이든 교육부든, 제도 변화를 꾀할 때 충분한 조사연구와 논의를 통해 근거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우리에겐 드물다.
민주적 교육의 중요성
느닷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마주친 기억이 없는 단어의 하나가 ‘민주주의’이다. 수용적 사고력에 치우친 교육을 극복하려면 대학에 민주적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정년보장을 받은 전임교원은 연구하느라 교육을 등한히 하고, 힘없는 비정규직 교원에게 궂은일이 내맡겨진다면 교육은 개선되기 어렵다. 전임교수 사이에서도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는 태부족하며, 때로 봉건영주 같은 태도로 자신의 강의를 생각하는 모습도 접할 수 있다.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는 여전히 권위주의에 갇혀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구비하여 입신하려는 기풍이 승하면서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지적 탐구열이나 다수 국민이 겪고 있는 힘겨운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책임의식이 희박해진다는 점이다. 정해진 길로만 가려는 분위기를 극복하려는 열정이 없으니 강의실에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강조해본들 그마저도 민첩한 적응전략에 의해 무력화되게 마련이다.
사족: 저자로서 출판사의 입장도 어느정도 배려해야 했겠지만,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습 전략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첫 저서에서 얻을 수 있는 두가지 메시지의 하나로 든 것은 지나치다. 교육전문가가 모순되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내놓는 것은 거북한 일이다.
김명환 / 서울대 영문과 교수
2014.11.2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