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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검찰만 바라봐야 하는 시스템을 바꿀 때다

박근용

박근용

검사는 범죄를 수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형사소송법 195조는 검사가 범죄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는 조항이다. 보통 경찰이라고 부르는 사법경찰관들도 그렇다. 같은 법 196조 2항은 사법경찰관의 수사의무 규정이다. 다만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수사지휘에 따라야 할 의무도 있다(196조 1항).

 

수사의 핵심적인 수단은 물건의 압수, 공간에 대한 수색, 사람의 체포와 구속 같은 강제처분이다. 이런 강제처분을 위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이는 검사뿐이다. 영장은 검사를 통해 청구하도록 헌법에 정해져 있다.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면 검찰에 영장청구를 신청해야 한다. 검찰은 경찰의 신청사항을 검토한 뒤 법원에 청구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사 다음 단계는 피의자를 형사법정에 세우는 기소다. 공권력에 의한 기소여서 ‘공소’라고도 한다. 경찰은 공소제기 기관이 아니고 수사기관일 뿐이다. 반면 검찰은 수사기관인 동시에 공소제기 기관이다. 기소권 또는 공소권은 검사의 독점 권한이다. 우리나라에 현대적 형사사법체계가 도입된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그랬다.

 

검찰이 기소할 마음과 수사할 마음이 없을 때

 

이처럼 검찰은 범죄 수사와 기소, 재판으로 구성되는 국가의 형벌권 행사 과정에 있어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의 권한을 나쁘게 사용하려는 유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권세력은 필요에 따라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적 시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검찰권을 이용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보도를 한 ‘피디수첩’ 제작진들을 기소한 사건이나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기소한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재판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진다. 무죄가 선고되어 기소 자체가 부당했음이 법적으로 판가름 나기도 한다. 표적수사를 통해 얻고자 한 목적을 검찰이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 검찰권 행사가 틀렸음은 사후적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권력자나 검사들의 비리가 제대로 수사되지도 못하고 형사법정에 세워지지도 않는다. 불의한 권력자들의 횡포를 멈추고 권력을 박탈하지 못한다. 불의와 불법이 정의와 합법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에 법과 원칙을 따르는 선량한 공직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한다. 비난을 받을지언정 검찰권 행사가 잘못되었는지는 법적으로 확인되지 못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봐주기 수사를 한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떳떳해하기까지 한다.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잘해도 검찰에 의지해야 했고, 못해도 의지할 곳은 검찰뿐이었다. 마음에 안 들지만, 검찰에 제발 제대로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비판하고, 또 비판하고 촉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수십년 반복됐다.

 

도저히 검찰에 맡겨둘 수 없는 경우에는 특별검사팀이 꾸려진 적도 있다. 최근 사례로는 박근혜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다룬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매입 사건을 다룬 이광범 특별검사팀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고 특이하다. 특별검사팀이 꾸려져야 하는 사건임에도 여당의 반대로 특검법 제정이 무산되는 일이 더 많았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특별검사임명법은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요청을 했음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의 물대포 공격에 관련된 특별검사 임명도 실패했다.

 

공수처 설치, 더 미루지 말자

 

이제 권력형 범죄에 대해 검찰만 바라보면서 잘해보라고 재촉하는 데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개별 사건별 특별검사 임명 방식도 뛰어넘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고안된 방안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다. 공수처는 일반 검찰청의 검사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 등)을 똑같이 행사할 수 있다. 공수처 소속 검사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과 검사 및 고위 경찰관들처럼 수사기관 구성원의 범죄를 전문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공수처가 검찰이나 경찰처럼 청와대의 인사권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공수처의 책임자인 공수처장은 특별검사처럼 국회에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게 해야 하고, 공수처 소속 검사들의 인사권도 대통령이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물론 공수처 검사들의 범죄혐의는 일반 검찰청이나 경찰이 수사하도록 한다. 일반 검찰청 검사들의 범죄를 공수처가 수사하게 하는 것처럼, 이른바 ‘셀프수사’는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방안은 근 20년 전부터 꾸준히 제안되어왔다.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검찰의 저항이 제일 컸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도 저항했다. 이들은 검찰의 힘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온갖 명분을 내밀었지만 핵심은 기득권 지키기였다. 집권세력들도 원하지 않았다. 검찰 하나만 잘 다루면 되는 상황에서, 손쉽게 다룰 수 없는 조직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은 것이다.

 

올가을 정기국회에서만큼은 공수처 설치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물론이거니와 민주당, 정의당, 그리고 국민의당까지는 찬성이다. 바른정당은 지난 2월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나마 유승민 의원은 지난 선거 때 공수처 도입을 공약사항에 담았다. 자유한국당은 적폐세력답게 반대다. 정당별 의견분포만 보면 통과할 수도 있지만, 공수처 설치 법안을 심의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자유한국당 소속 권성동 의원인 게 제일 큰 걸림돌이다. 다만 권의원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이들은 공수처가 권력기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권력은 독점적일 때 문제가 된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검찰과 공수처 간에 상호 견제를 하게 되니, 공수처가 권력기관이 될 거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역대급 권력형 부패와 범죄에 대한 분노가 박근혜를 탄핵시켰다. 권력형 범죄를 포함해 모든 일을 공정하면서도 엄정하게 처리하는 데 한계를 보인 사회 시스템에 대해 국민은 실망하고 그것을 바꾸기를 소망했다. 촛불시민혁명은 국정농단세력에 대한 정치적·사법적 처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치와 사회 시스템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개혁을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가 공수처 도입이다. 권력형 범죄에 대해 검찰만 바라보지 않아도 되게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박근용 /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2017.9.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