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정원 개혁, 국정원에만 맡겨선 안 된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대선개입 사건이 처음 드러난 2013년, 국정원장과 국방부장관은 이에 대해 한결같이 일부 직원들의 일탈행위일 뿐이며, 국민여론이 오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한 ‘방어심리전’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촛불시민혁명과 정권교체 이후 일부나마 밝혀지고 있는 국정원과 군의 정치개입과 국민사찰 실태는 그 주장이 얼마나 파렴치한 적반하장의 거짓해명이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정원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과 정치인, 심지어 평범한 시민들까지 조직적으로 공격하고 이들에게 종북 딱지를 덧씌웠다. 국정원의 이른바 ‘방어심리전’에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외설스러운 합성사진을 제작해 유포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국정원은 정부비판세력을 공격하고 종북으로 몰기 위해 극우보수단체를 물적·인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조직하기까지 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사망과 천안함사건을 계기로 이런 파렴치한 공권력 남용행위가 본격화되었다. 군도 같은 짓을 했다. 군 사이버사령부, 기무사가 모두 동원되었고 여기에 국정원이 예산지원도 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하고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다. 최근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에 따르면, 댓글 사건이 드러나서 국정원 개혁과 국내정치 개입 중단을 약속했던 2013년 이후에도 국정원과 군은 진실을 은폐하고 국정에 개입하는 불법행위를 지속했다. 2014년 1월 국정원법의 부분개정에도 불구하고 국내정보 수집 기능도 심리전단도 폐지되지 않았다.
갈 길이 먼 진상 규명과 자체 개혁
문재인정부로의 정권교체 이후 서훈 국정원장이 취임하면서 내부에 ‘국정원 적폐청산 TF’를 꾸리고 외부자문기구인 국정원 개혁위원회를 구성해 국정원의 불법부당행위를 다시 조사하고 국정원 개혁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긍정적이다. 상당수의 범죄증거가 이미 은폐되고 폐기되었지만 그 실상의 일부가 공개되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도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에 이어 국방부가 최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진상규명 TF’를 꾸려 자체조사에 나선 것도, 비록 많은 언론이 은폐되어왔던 자료를 공개한 이후라는 점에서 낯부끄러운 일이지만, 안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천안함사건 전후 비판적인 시민단체와 언론들을 ‘한방에 훅 가게’ 하려 했던 대국민심리전의 실태 등이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고 국정원과 군 적폐청산 특위의 조사과제로도 채택되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 규명되어야 할 많은 진실들이 남아 있다. 분발을 촉구한다.
또다른 문제는 각종 정보기구들의 개혁 대안이다. 특히 매번 말만 요란하고 거의 바뀌지 않아온 국정원을 어떻게 개혁하여 기무사 등 다른 정보기구 개혁의 모델로 삼을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월,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업무 및 수사 기능을 폐지해 ‘한국형 CIA(미국 중앙정보국)’로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대북한 및 해외, 안보 및 테러, 국제범죄를 전담하는 한국형 CIA로 재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서훈 국정원장도 취임 직후 국내정보 담당관을 폐지했다. 하지만 실제 국정원 개혁방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100대 국정과제에는 그저 해외정보원으로 개편한다고만 되어 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어떤 개혁방안을 마련해 제출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노파심에 몇마디 적고자 한다. [이하의 제안은 국정원감시네크워크(민들레_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지난 9월 26일 발표한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정책의견서에 기초한 것이다.]
대공수사권 분리하고 국내정보 수집 금지해야
우선,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서 분리시켜 다른 사법경찰기구로 넘겨야 한다. 수사는 사법적 영역으로, 조직과 활동상황의 비공개성이 강한 국정원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니다. 수사권이 정보기관의 비공개성과 결합하면서 인권침해나 불법적 방법 동원이 가능하고 이에 대한 통제가 더 어려워진다. 국정원 직원에 의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이 검찰이나 경찰에서의 수사에 비해 보장받지 못하며, 인권침해 사실 여부에 대한 이의제기나 진상규명에도 제약을 받는다. 수사권 남용으로 인권침해나 간첩조작 같은 국정원의 위법·탈법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정원을 전문적인 정보수집기관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보 수집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은 타 국가기관에 맡기거나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질이 다른 여러 기능을 정보수집기관이 중첩적으로 맡는 것은 정보기관으로 전문화하는 데도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통령은 이를 공약했지만 국정원 내부에서 대공수사권을 포기해 다른 사법경찰기구로 넘기겠다는 자체 개혁안이 제시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이다. 국정원이 스스로를 개혁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표시는 대공수사권을 떼어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군 정보기구인 기무사령부가 가진 수사권 역시 군검찰과 헌병대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
둘째, 국내정보 수집 업무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정원에서 국내정보 수집 업무를 폐지해 한국형 CIA로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문대통령 발언과 서훈 국정원장 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안보 및 테러, 국제범죄’와 관련해서는 해외(북한 포함)정보뿐만 아니라 국내정보의 수집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행 국가정보원법 제3조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국정원의 정보 수집 업무 범위를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對共), 대정부전복(對政府顚覆), 방첩(防諜),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바꾸지 않거나 ‘대정부전복’ 등의 해석이 모호한 단어만 손보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미국의 비밀정보기구인 CIA는 국내정보는 일체 수집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한국형 CIA를 만들겠다는 약속과 ‘안보, 테러, 국제범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국민과 외국인을 상대로 사찰행위를 지속하겠다는 것은 상충된다. 미국은 수사기구인 FBI(연방수사국)만 테러, 방첩, 국제범죄 등 안보 관련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국내정보를 수집하는데, 이조차도 과도한 통신자료나 개인정보 수집으로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원의 국내 보안정보 수집·작성 및 배포 권한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국민의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국내정치에 관여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되어왔다.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온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국정원의 불법사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정원을 북한을 포함한 해외정보 수집 전문기관으로 개편하고, 국내 보안정보 수집은 금지해야 한다. 두가지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한, 북한을 포함한 해외정보 수집을 등한시하고 상대적으로 손쉬운 국내활동에만 머물러 해외정보 수집만 부실해질 우려가 높다.
일각에서는 국내정보와 해외정보가 분리될 수 없다거나, 국내에 들어와 암약하는 간첩이나 테러단체, 이들과 연계된 국민에 대한 정보 수집이 필요하며, 이를 폐지할 경우 중대한 정보 누수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당연하게 전제하는 국내정보 수집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범죄혐의와 관련된, 즉 피내사자나 피의자에 대한 정보 수집은 이미 수많은 사법경찰기구와 검찰이 진행하고 있다. 국정원이 해외정보만 수집하더라도 해외(북한)에 있는 위험인물과 소통하는 국내의 모든 국민과 외국인을 사찰할 수 있다. 해외정보를 제대로 수집하기 위해 국내에서 공개된 소스나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편, 국민에 대한 정보 수집을 당연시하는 태도도 문제다. 국민의 마음과 행동, 혹은 국민 간의 소통을 들여다보는 등의 기본권 제한조치는 아무리 안보 위협, 테러, 국제범죄를 내세우더라도 구체적인 혐의에 기초하여, 비밀정보기구가 아닌 공개된 사법경찰기구가 영장과 법원의 통제에 근거해 엄격한 제한 아래 실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분명한 혐의만 사찰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원법 개정뿐만 아니라, 테러 방지를 이유로 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합법화하고 있는 테러방지법도 폐지 또는 전면 개정해야 한다.
셋째, 국정원이 아닌 다른 경찰기구에 대해서도 내국인에 대한 정보 수집을 엄격히 제한하고, 부득이한 경우 법원의 허가 아래 허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통신의 쌍방 당사자가 내국인일 경우, 정보기구가 아닌 사법경찰기구가, 혐의가 분명한 피내사자 혹은 피의자일 경우에 한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통신제한조치(감청) 등을 취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밖의 내국인에 대한 추적 및 조사 행위는 정보기구와 경찰기구를 막론하고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만약 내국인을 상대로 통신제한조치, 통신사실 확인, 기타 개인비밀보호보장법상 민감정보나 위치정보 등의 수집을 할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사후 당사자에게 통보하고 해당 자료를 모두 비치하고, 그 결과를 국회(정보위원회)와 감독부서(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인권보고관 등)에 보고하며, 그 개요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기구와 수사기구의 영장 없는 통신자료 요청 등 무더기 정보 수집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긴급감청 권한도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개정도 불가피하다. 또한 경찰청 보안국, 정보국(과)을 폐지하고, 범죄수사와 관련된 피내사자 및 피의자별 정보만을 수집하도록 해야 한다.
상급기관 행세 막고 심리전 기능 폐지해야
넷째, 국정원이 다른 정보수사기구의 상급기관으로 행세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국정원법 제3조 1항 5호는 모든 국가기관에 대한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을 국정원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이 맡고 있는 조정 업무의 대상 기관은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규정> 제5조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국민안전처, 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 정부조직을 망라한다. 국정원도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는 여러 기관 중의 하나임에도, 이들이 국가 전체의 정보정책 수립과 판단 등 콘트롤타워 기능까지 겸하며, 국정원 외 다른 기관까지 포괄하여 정부 전체의 정보예산 편성권을 무기 삼아 타 기관의 정상적인 활동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정원의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권을 타 정부기관에 이관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국정원의 비밀보호정책 수립과 신원조사 및 보안측정권, 사이버보안 권한도 타 부처로 이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 수집 임무를 뛰어넘는 ‘심리전’ 기능 및 조직을 폐지해야 한다. 심리전은 작전 개념이고 집행 기능이다. 정보기구가 심리전 기능을 가질 이유가 없고 작전을 수행할 이유도 없다. 지난 2013년 연말 국회에 보고된 국정원의 이른바 자체개혁안에는 ‘방어심리전 활동시 특정 정당과 정치인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 금지’가 포함되어 있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지령과 북한체제 선전선동,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 부정, 반헌법적 북한주장 동조 등 세가지에 대해서는 방어심리전을 지속할 것이며, ‘이적 사이트’에 대한 정보 수집 차원의 심리전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법 어디에도 작전 기능을 국정원에 맡긴 바 없다. 국민을 상대로 전개하는 ‘방어심리전’은 더더욱 정보수집기관인 국정원의 역할이 아니며, 북한 등의 잘못된 주장에 대한 반박은 정부 홍보기관 등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맞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모든 부작용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심리전 기능을 폐지해야 한다.
이태호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17.10.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