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피터 갤리슨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과학에 대해, 환상 없이, 과학적으로 이야기하기
―피터 갤리슨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동아시아 2017

 

 

아인슈타인의 시계 100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곳의 시각은 몇시인가? 이런 질문은 답하기 쉽다. 현대인은 시간을 매우 가까이에 두고 수시로 참조하며 살기 때문이다. 시각을 알고 싶으면 손목시계를 보거나, 전화기를 꺼내 보거나,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쳐다볼 것이다. 컴퓨터 작업 중이었다면 간단히 작업표시줄을 쳐다보고 확인할 수도 있다. 시간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시간은 어디의 시간도 아니다. 내 손목시계가 정오를 가리킬 때, 내가 있는 곳의 태양은 정확히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는가? 그렇지 않다. 그 시각에 태양은 동경 135도라는 가상의 선(대략 일본 서부 효고현 부근을 지난다)과 교차할 뿐이다. 오늘날 지구 전체는 약 24개의 표준시간대로 나뉘어 있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천문학적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 표준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20세기에 들어서기 전에는 상황은 크게 달랐다. “표준시간”이라는 것을 국가와 국제 사회의 규약(convention)으로 정하기 전까지는, 나의 시간은 바로 지금 여기의 시간이었다. 각 지역의 중심 도시는 자신들의 머리 위로 해가 가장 높이 지날 때를 잘 알고 있었고, 이때에 맞춰 정오의 종을 울렸다. 도시마다 중앙광장에는 자기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이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자신의 시계를 맞췄다. 베를린의 시간, 로마의 시간, 빠리의 시간, 암스테르담의 시간이 모두 달랐다.

 

그러나 위에 거명한 도시들은 오늘날 모두 똑같은 시계를 쓰는 단일시간대에 속해 있다. 산업과 교통, 통신이 발달하고 각 지역의 고유함보다 세계적 차원의 연결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지역마다 13분, 22분, 또는 37분 차이가 나던 복잡한 시간체계들을 통합하여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리하여 지구는 오늘날과 같이 경도 15도 간격으로 24개의 표준시간대로 나뉘었고, 뉴욕의 시계는 보스턴의 시계와, 서울의 시계는 토오꾜오의 시계와, 빠리의 시계는 베를린의 시계와 똑같이 맞춰지게 되었다.

 

세기말의 모든 사람들이 골몰하던 일, 세기말의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일

 

그런데 “시계를 똑같이 맞춘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안방의 시계와 거실의 시계를 똑같이 맞추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빠리의 시계와 베를린의 시계를 어떻게 하면 똑같이 맞출 수가 있는가? 또는, 규약에 의하면 런던과 뉴욕이 다섯시간 차이가 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런던을 출발한 배가 뉴욕에 이르렀을 때 뉴욕이 몇시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미 이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다져진 기술을 누리고 사는 현대인들은 이와 같은 질문이 낯설 수밖에 없다. 전세계 어디를 누비고 다니건 공항에 내려 스마트폰을 켜면 바로 현지의 시각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불과 백오십년 전만 해도, 대양을 가로질러 항구에 들어오는 배는 떠나온 곳의 시각도, 자신이 입항하는 곳의 시각도 확실히 알 방법이 없었다. 진동과 온·습도의 변화에 잘 견디는 정밀 시계를 만들어 배에 싣고 항해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 또한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이런 항해용 정밀 시계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데이바 소벨의 『경도 이야기』 등을 볼 것).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려면 대륙과 대륙 사이를 (거의) 시간차 없이 연결하는 전기신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전신선이 온 땅 위를 뒤덮은 뒤에야 대륙의 시계들은 동기화될 수 있었고, 고무로 꽁꽁 싸맨 두꺼운 구리 전선이 대서양과 태평양 바다 밑을 가로지르고 나서야 런던과 뉴욕의 정확한 시차를 비교하여 시계를 맞출 수 있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위치의 시계를 맞추는 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과학기술자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다. 그런데 이 시기는 바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근대 과학기술이 크게 한발을 내디딘 시기이기도 했다. 19세기는 물리학에는 이제 남은 문제가 거의 없다는 극도의 자신감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20세기는 물리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한 영웅으로 오늘날까지 칭송받고 있는 이가 바로 아인슈타인(A. Einstein)이다.

 

뉴턴 이래로 시간과 공간은 다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틀로 여겨져왔다. 과학자들뿐 아니라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도 시간과 공간을 인간 인식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 시공간의 절대성을 포기하고, 대신 광속 하나만을 불변하는 기준으로 남겼다. 움직이는 좌표계에서도 빛의 속도는 일정한 대신, 시간과 공간은 관찰하는 좌표계에 따라 상대적으로 길게 또는 짧게 측정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을 바꾸자 그것을 바탕으로 과학의 전혀 새로운 장이 열렸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원자보다도 작은 매우 작고 빠른 입자들의 세계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전자공학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머나먼 곳의 천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상대성이론은 20세기 과학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과학의 혁신,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와 같은 혁명적 변화가 하필 그때, 그곳에서, 그의 머리로부터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의 위인전을 비롯한 대중적 문헌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만 주목한다. 어린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특이한 아이였는지, 청년 아인슈타인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상대성이론을 착안했을 때 그의 처지가 주류 과학계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등을(때로는 그의 수학 실력이 대단치 않아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과장된 이야기까지 덧붙는다) 구구절절 강조하고, 그렇게 어둡게 칠한 배경과 아인슈타인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대비시켜 한 천재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는 영웅서사를 내놓는다. 이러한 영웅담은 대중에게 친숙한 구조의 서사이므로 기억하고 퍼트리기는 쉽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한편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천재란 곧 시대의 산물이므로,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물질적, 지적 환경의 소산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영웅담으로 치환해버리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세련된 생각을 하는 독자들은 이런 접근 방식에 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접근 방식에 입각하여 역사를 써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이, 얼마나, 왜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았는지 딱 잘라 이야기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소련에서 과학과 과학사에 대한 교조적 접근법이 절정에 다다랐던 1930년대에는, 보리스 헤센 같은 이가 “당시 영국에서 상업이 융성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데 따라 수학이 발달한 결과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오늘날 외부 요인의 역할을 이처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은 큰 호응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학적 혁신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천재의 머릿속인가, 아니면 사회경제적 ‘토대’인가? 그도 아니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끓어오르기 직전의 임계점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피터 갤리슨(Peter Galison)은 이 책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Einstein’s Clocks, Poincare’s Maps: Empires of Time, 김재영·이희은 옮김)에서 지난 세대의 과학사학자들이 얽매였던 과학의 ‘내부’와 ‘외부’의 이분법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고독한 천재와 사회경제적 구조를 성급하게 대비시킬 것이 아니라, 시대의 화두가 무엇인지 맥락을 살필 것을 제안한다. 시간대의 제정과 시계의 동기화와 같은 특정한 문제에 한 시대의 과학자와 기술자와 대중이 집단적으로 몰두하면, 그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발상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갤리슨은 이것을 바닷물이 증발하기 직전의 “유백색의 임계점”이라고 표현하면서, 여기에서 가장 먼저 튀어오른 물분자가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보다 그 임계 상태의 요란함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갤리슨은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뿌앵까레(H. Poincare)의 역할을 중시한다. 경도의 측정, 지도 제작, 시간대의 제정 등 실제적인 문제 해결을 평생 천착했던 뿌앵까레의 이력이 시계의 동기화 같은 현실적 과제와 천체 및 전자기의 운동과 같은 이론적 과제에 모두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고, 그것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안할 수 있었던 토양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특허국 경험도 “천재의 불우한 배경”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수많은 시계 동기화 관련 업무를 처리하면서 시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본질적인 요소로 재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법은 거의 한세기 전의 헤센의 접근법과 일견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갤리슨은 교조적 결론을 세워놓고 대상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관심사들을 당대 사람들의 관점에서 복원하고자 한다. 따라서 분석의 결과도 이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하여 매끈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바닷물처럼 희뿌옇고 요란하다. 그러나 그 요란함이야말로 역사의 생명력이며, 그 복잡함이야말로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일 것이다. 복잡함과 요란함을 늘어놓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분석자의 통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갤리슨은 아인슈타인과 뿌앵까레와 같은 천재들을 환상 속의 이미지에서 해방시켜 다시 역사 속의 인물로 되돌려놓고 있다.

 

쉬운 결론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고 현실의 복잡함을 인내한다는 점에서는, 이 책의 접근 방식은 과학자들의 규율과도 상통한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과학자들은 결론을 예단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며 확실한 근거를 찾을 때까지는 감각경험의 인도에 따를 뿐이다(실제 과학활동이 그 이상적 규율에 얼마나 충실하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역사책이라고 평할 수도 있다.

 

김태호 /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2017.10.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