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올해의 한마디
새해가 어느새 한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다들 연말연시를 보내며 어떤 번듯한 계획을 세우셨는지 궁금합니다. 평소 부족했던 부분을 연마하겠다 마음먹은 분도 있고,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시작한 분도 있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부지런히 열심히 달려왔으니 올해는 여유있게 지내겠다 다짐한 분도 여럿이겠습니다. 물론 올해도 부지런히 준비해서 오랫동안 기울여온 노력의 결과물을 얻겠다 계획한 분도 아주 많겠습니다. 모두 소중하고 보람찬 일이겠습니다. 다만 올해가 아직 많이 남은 만큼, 여러분의 소중한 계획의 곁에 가볍고 자그마한 계획 하나 덧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몇자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자주 쓰기 어려우니까
새해가 되면 사자성어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보통 지난 1년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한해를 내다보면서 사자성어를 활용하는데요. 모두 의미가 있고 머릿속에 새겨둔다면 여러모로 가르침이 될 만한 말들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이웃과 이야기 나누는 중에 꺼내기에는 조금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자성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의 사자성어’ 이야기를 듣다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고 자주 쓰는 말을 골라 ‘올해의 한마디’라고 이름 붙이면 어떻겠나 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저마다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잘될까?”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어쩐지 그분 곁에 있을 때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그분 옆으로 가는 게 영 흔쾌하지 않습니다. 정반대인 분도 있습니다. 그분은 말버릇처럼 “재밌겠는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일도 왠지 흥미롭게 느껴지며 관심이 갑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분 옆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아무래도 말에는 기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선사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기운이 좋은 말을 하나 골라서 ‘올해의 한마디’로 정해 자꾸 쓰다보면 삶의 작은 활력이 되지 않을까요?
‘올해의 한마디’를 정한다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올해의 한마디’를 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각자 자기 마음에 드는 말 하나를 고르면 될 일입니다. 저한테는 어떤 말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친절하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들은 적이 별로 없는 말이기도 하고, 드물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올해 친절한 일과 마주치면 늦추지 말고 ‘친절하다’라는 말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무거운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몇층에 가느냐고 물어보며 버튼을 눌러주는 이웃을 만난다면, “13층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참 친절하시네요”라고 한마디 보태면 좋겠다 싶습니다. 어디 문을 드나들 때 앞에 가는 분이 열린 문을 잡고 뒤따라오는 저를 기다려준다면, “참 친절하시네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용기 있다’를 ‘올해의 한마디’로 정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동안 스스로가 참 용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멈칫거리는 저 자신에게 용기를 가지라는 혼잣말을 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도 여러번 했습니다. 하지만 전보다 그다지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는 다소 막연한 결심을 하는 대신, 그저 다른 이들에게 “참 용기 있으시네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기 있다는 말의 건강한 기운이 저에게도 퍼지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여러분이 ‘올해의 한마디’를 정한다면 어떤 말을 고르시겠습니까? 후보야 정말 끝이 없겠습니다. 착하다, 따뜻하다, 꼼꼼하다, 여유롭다, 부지런하다, 자상하다, 예쁘다, 믿음직스럽다, 겸손하다, 성실하다, 유머러스하다, 행복하다 등등. 굳이 덧붙이자면, ‘올해의 한마디’를 말하거나 들을 때마다 어디에 메모를 해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연말이 되어서 그 수를 헤아려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올해 세운 계획,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주위 사람을 미소 짓게 하고,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도 밝은 기운을 선사할 수 있는 계획들 모두 이루어지길 빕니다. 그 계획들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동안 틈이 난다면, 제가 말씀드린 조금은 엉뚱한 계획도 한번쯤 살펴봐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유병록 / 시인
2018.1.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