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위로를 찾아서
얼마 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평일 오후에 시간이 난 김에, 그리고 누군가의 부추김으로 나선 길이었습니다. 자코메티가 유명한 조각가라는 것, 그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을 미술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 그 작품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 정도만 알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전시회는 참으로 그럴듯했습니다. 저야 조각 전시회에 간 적이 한손으로 꼽을 정도로 문외한이므로, 무엇을 배운다기보다는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빼빼 마르고 거친 느낌의 조각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좀 신기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두시간 남짓 지났을 때, 마지막 전시물, 바로 그 유명한 「걸어가는 사람」이 전시된 방에 들어갔습니다. 조각이 세상 대단한 일인가,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니 뭐 그럴듯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방에 들어간 순간, 저는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말은 물론이고 생각조차 멈추는 느낌이었습니다.
서 있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
저는 멍하니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조각 앞에 마련된 방석에 앉아서 한참이나 쳐다보았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앙상한 팔과 다리로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눈을 부릅뜨지도 않고 감지도 않은 채 담담한 눈빛이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지도 힘없이 펼치지도 않은 채 가볍게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뛰지도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돌이켜보니 「걸어가는 사람」 외에는 모두 두상과 흉상이거나, 전신상이더라도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지막에 본 「걸어가는 사람」은 오래도록 한자리에 머물던, 움직이지 않던 자가 안간힘으로 발을 내디딘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자기 안의 감정에 빠져 있다가 드디어 발을 내디딘 것 같았습니다. 가슴속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단호한 발걸음을 보고 있으니, 제가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한발을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걸어가는 사람’이 저에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참 담백하고 강건했습니다.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위로에 대한 오해
한참 전 같기도 하고 바로 얼마 전 같기도 한데, 저는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들으면서, 고마워하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내 슬픔 따위는 곧 잊을 거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오래 기억하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사람들은 곧 위로를 멈출 거야. 위로가 내 상처를 들쑤신다는 이유로.’ 제가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간단합니다. 저 자신이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 고통스러워서 적당한 핑계를 대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크게 다르지 않은지, 사람들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제 슬픔을 떠올릴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얼마가 더 지나자, 저를 위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앞으로 잘될 거라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위로는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 위로를 받고 싶은데, 아무도 저를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동안 위로가 멀리서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나봅니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그것이 다가와야 한다고 믿었나봅니다. 내 아픔이 크니까, 나는 여기 주저앉아 있으니까, 여기서 울고 있으니까, 위로가 알아서 저를 찾아 곁으로 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나봅니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괜찮아진 척하면서 속으로는 누가 저를 좀 일으켜주길 바라고 있었나봅니다.
그런데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위로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위로에게 다가가고 제가 위로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은 제가 슬픈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만큼 괜찮아지기를, 그래서 준비해둔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새삼 깨닫지만 위대한 예술은 저 같은 어쭙잖은 인간의 편견을 가볍게 부서뜨리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안을 만큼 품이 넓습니다.
여러분, 혹시 위로가 필요하십니까? 그럼 위로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으러 가는 게 어떨까요? 위로가 어디선가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위로는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수도 있고, 새로 만나게 될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영화관이나 산책길에서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자코메티 전시회에 가셔도 좋겠습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그 전시회는 4월 15일 일요일에 끝난다고 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저는 이제 위로를 찾아서 한발을 내디디려고 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도 모두 위로를 찾아 걸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유병록 / 시인
2018.4.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