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보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이 마무리되었다. 법원은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에 대한 재판이 한 고비를 넘어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을 비롯해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은 ‘혼이 비정상’이 될 지경이겠지만 국민들은 이제서야 혼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에 가장 부합하는 실례이다. 실로 ‘재판 대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이 우리에게 통쾌함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법정에서 중형에 처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낯설고 또 씁쓸하다. 이런 재판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은 무엇을 드러냈는가
이번 재판에서 우리 사회와 정치 시스템의 민낯이 많이 드러났다. 특히 대통령의 업무 수행 방식과 관심사가 많이 알려졌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일상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업무 수행을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 재판을 통해, 대통령이 측근의 요구에 따라 재벌과 공기업과 은행에 위세를 과시해, 특정 법인에 돈을 내게 하고, 특정 중소기업을 소개해 거래하게 하고, 측근이 운영하는 광고기획사와 계약할 것을 강요하며, 특정인에 대한 인사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측근의 딸을 돕기 위해 재벌에 돈과 말과 장비를 지원하게 하고, 고위관료를 강제로 사직하게 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은밀하고 신성하게 취급될 것 같은 청와대 문건이 보자기에 싸여 측근에게 전달된 모습도 보았으며, 이런 일을 청와대 비서관과 경호원이라는 공적인 조직을 통해 태연히 행하는 것도 보게 되었다. 대통령이 차마 그렇게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행해진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특권적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고 대통령이 공적으로 하는 말로만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대통령의 이런 행태가 어느 기관에 의해서도 견제되거나 제어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번 재판에서 드러났다. 대통령을 보좌하면서도 견제해야 할 비서관들은 그 수족이 되어 불법까지도 보좌하였고, 행정부 장관이나 관료들도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맞서지 못했다. 언론은 뒤늦게 알아채기 전까지는 일상적 감시에 무능했고, 국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찰과 경찰은 제 존재이유를 아예 잊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그동안 외형적·정치적 민주주의를 강화해왔지만, 내실적·규범적 민주주의는 아직 그 토대를 다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이 이번 재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또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대해 기본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황인식과 감정 공감에 있어서도 극히 무능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느 시점부터 재판에 불출석하기 시작하더니 선고 당일까지 끝내 불출석했다. 국민을 대신하여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사법부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았으며,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자신이 최순실에게 속았다거나, 부하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치졸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런 모습은 고위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통상적인 품위조차도 상실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재판은 장막에 가려지고 언론에 의해 포장된 박근혜의 실체를 날것으로 보여주었다.
성과와 한계
그런가 하면 이번 재판은 정치와 경제의 권력자라고 해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촛불이 촉발한 민주와 정의의 요구가 사법체계에 의해 구체적으로 결실을 맺는 것을 우리 국민이 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정경유착이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우리의 사법체계가 최소한의 상식과 기본적인 정의관념에 따라 작동한다는 점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점도 많이 있다. 우선, 모든 범죄 혐의가 기소되었는지부터 의문이다. 이번 재판에서 기소된 사안들은 주로 집권 후반기에 있었던 일이고,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일이다. 이로 인해 집권 초반기에 은밀하게 행해진 다른 범죄행위가 있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다음, 삼성에 대해서만 제3자 뇌물죄가 인정되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탄핵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은 엄정했지만, 살아 움직이는 경제권력에 대한 심판은 그만큼 엄정해 보이지 않는다. 삼성에 대해서는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그렇다면 삼성이 왜 미르재단 등에 돈을 냈는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게 만든다. 승마를 제공한 것은 뇌물로 인정됐는데, 그것과 다른 의도로 미르재단 등에 돈을 냈다고 보는 것도 매우 부자연스럽고, 삼성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도 모순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원이 삼성이 제공한 말을 뇌물로 본 것인데,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이재용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은 파기될 수밖에 없다. 경제권력에 대해서도 법원이 엄정한 판결을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형량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도 드는데, 형 집행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이 점까지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시사점
무릇 모든 재판은 피고인이 아닌 제3자에게는 ‘위하(威嚇)’의 효과를 가진다. 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어떤 행위가 죄가 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재판이 공개되는 주된 이유이다. 이번 재판은 처음으로 판결 모습을 중계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사건과 같은 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을 일은 없다. 재범의 위험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사범죄, 모방범죄는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세월이 지난 뒤에 더 지능화된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그런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재판의 가장 큰 교훈이자 시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와 행정부의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회와 언론과 사법당국이 각자의 자리에서 권력형 범죄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들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결국 시민들이 나서서 단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재판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정당하게 선출되어 자신의 권한 범위 내에서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고, 기업은 경제민주화의 토대하에서 정당한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공공적 영역에 속한 모든 개인은 공익에 복무하는 것을 최소한의 직업윤리로 삼아야 한다.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이 집행 단계에서 계속 거부되어야 권력자의 탐욕과 전횡이 제어될 수 있다. 적폐청산은 이렇게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물적 토대의 구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강문대 / 변호사, 민변 사무총장
2018.4.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