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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 수 없다는 사람들과 공존하기: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불합치 결정에 부쳐

임재성

임재성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병역의 종류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였다. 한국전쟁 시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시작된 이래, 70년 가까운 시간 동안 1만 9천여명의 젊은이들이 총을 들 수 없다는 종교적, 윤리적 신념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어왔다.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여 첨예한 논쟁이 이루어졌지만 군사주의가 인권을 압도하고, 싸우자는 외침이 죽일 수 없다는 양심을 폄하하는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의 ‘권리’는 쉽사리 인정되지 못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진 고통의 역사를 멈추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헌법불합치 결정의 사회적 배경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3번의 판단을 내렸다. 2004년, 2011년에는 모두 7(합헌) 대 2(위헌)의 합헌판단이었다.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지 않고 처벌로 일관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2018년 결정에서는 6(위헌) 대 3(각하)으로 기존의 선례를 바꿨다. 2011년 결정 이후 어떤 사회적 변화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변화를 추동한 것일까?

 

먼저 여론의 변화이다. 2010년 이후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모두 ‘형사처벌보다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뚜렷하게 증가하였다. 2016년 한국갤럽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찬성(70%) 의견이 반대(22%)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확인되었다. 병역거부 자체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여전히 높지만, 감옥행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갔던 것이다. 물론 인권은 여론으로 판단할 수 없다. 다수의 생각과 다른 소수자 문제를 과반의 지지 여부로 결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는 군대와 병역이라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론의 변화는 분명 헌법불합치 결정의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로 2015년 이후 하급심 법원에서 계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무죄판결 역시 헌법불합치 결정의 주요한 배경이었다. 2004년 최초의 무죄판결 이후 2015년 이전까지는 4건에 불과했지만, 2015년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 직전까지 3년 반 만에 80여건이 넘는 무죄판결이 이어졌다. 대법원의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도 아니었다. 2004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병역거부는 유죄라는 입장을 정하였고, 무죄판결이 이어졌던 2017년에도 다시금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대법원 판단에는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하급심 판사들은 대법원에 따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인데, 한국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상황이었다. 튀는 판사 몇명의 ‘사고’가 아닌, 더이상 자신의 손으로 이 젊은이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진지한 ‘선언’을 헌법재판소가 간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아가 이미 2004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입법자들에 대한 권고’로서 국회의 입법을 촉구하였음에도 장기간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사정, 최근 남북관계에 있어서 평화국면이 본격화되는 것 역시 헌법재판소 결정을 바꾼 요인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2018년 결정은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라기보다는, 변화된 시대를 추인하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체복무제는 공존을 위한 제도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헌법상 도출되는 입법의무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입법 부작위 위헌’ 결정이다. 국회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고안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흔히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누가 군대에 가겠나”라고 하지만, 이 말에는 대체복무제가 ‘특혜’나 ‘면제’일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대체복무제는 이미 수많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고, 그 어떤 국가에서도 특혜나 면제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았다. 형평성 있는 대체복무제를 설계한다면 앞선 우려는 쉽게 불식될 것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현역 복무인원 중 3만명 가까이를 전환복무라는 형태로 의무경찰이나 의무소방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를 특혜나 면제라고 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체복무제는 만들어야 하겠지만, 병역거부를 여전히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징벌적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복무기간을 현역복무의 2배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징병제 시행 국가 중 한국의 복무기간은 상위 5~6위에 달할 정도로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길다. 20대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에 21개월 육군 사병을 기준으로 42개월 이상의 기간으로 대체복무를 시키겠다는 것은 또다시 배제와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열악한 군복무로 인한 박탈감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서 접근해야 하지만, 그 박탈감에서 생겨나는 증오가 다른 소수자에게 향하는 비극은 멈춰져야 한다. 국제인권기구들은 현역복무의 1.5배 이상의 대체복무는 또다른 차별이라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병역거부의 권리가 힘겹게 인정된 만큼, 제도만큼은 국제기준에 부합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대체복무제는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제도이기도 하지만 그들에 대한 한 사회의 태도이기도 하다. 총을 들 수 없다는,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할 수 없다는 양심을 우리는 계속 배제하여왔다. ‘국가안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비폭력과 평화의 양심은 온전히 설 자리가 없었다. 대체복무제는 총을 내리겠다는 양심이 비로소 우리 사회 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징표이자 신호이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과정 역시 공존의 태도 위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임재성 / 변호사,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2018.7.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