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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기획탈북범죄의 진상규명이 급선무다

장경욱

장경욱

9부 능선을 넘었다.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킨타나 UN 북한인권특별보고관조차 종업원 중 일부를 만나 1시간 10분여 면담 후 피해종업원들이 한국행을 모른 채 속아서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이것이 중대범죄라고 하면서 독립적인 기구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의 언론들도 뒤늦게 진상규명 요구에 합세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지금은 기획탈북 의혹을 많은 사람들이 집단납치범죄로 규정하기에 이르렀고, 그러한 입장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혀도 될 정도가 되었다.

 

총선 앞두고 자행한 납치범죄

 

박근혜정권은 2016년 4·13총선을 앞두고 북 해외식당 종업원들을 기획탈북시킨 후 이들이 입국하자마자 사진을 찍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케 했다. 당시 여당의 선거승리를 위해 대북제재로 북 해외식당 영업이 어려워지자 북의 상류층 자제들마저 한국행을 동경해 집단탈북했다고 선전한 것이다.

 

기획탈북범죄를 저지른 장본인들은 도리어 종업원들을 접견하려는 민변 변호사들로 인해 종업원들과 북측 가족의 신변안전이 위태로워진다며 종북몰이를 했다. 종북몰이는 진상규명 요구를 가로막는 무기가 되었다. 납치범죄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변안전을 걱정하는 적반하장의 논리가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 재판정에서조차 통했다. 이들은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 사건 재판부가 종업원들에 대해 내린 출석명령도 거부했다. 법원에 출석한 종업원들이 자유의사로 입국했다고 증언할 경우 북측 가족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며 출석을 명한 법원마저 종북몰이 대상으로 삼는 반사법적 행태를 서슴없이 자행한 결과, 법원은 출석명령을 철회했다. 우리 법이 보장하는 인신구제절차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범죄자들 외에는 아무도 피해자들의 행방을 몰랐다. 피해자들은 성과 이름을 다 바꿨다. 대부분은 대학을 다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고를 겪으며 학업과 알바를 병행했다. 자신들이 뉴스에 나오는 북 해외식당 종업원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 앞에서 속절없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때 기억으로 늘 고통스러웠다. 신뢰할 수 있는 그 누구도 곁에 없었다. 그동안 부모와 만나 자신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등을 직접 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가족을 만나는 것도 돌아갈 길도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절망적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현재에 이르기까지 2년 4개월간 강제로 정착을 강요당했다. 범죄행위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신원이 탄로날까봐 어디서든 정체를 숨기면서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입국 및 이후 정착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용기 낸 피해자들, 그러나...

 

그러던 중 범죄정권이 무너졌다.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등장하자 범죄실행자들은 저마다의 핑계를 대며 하나둘씩 사라졌다. 범죄자들에게 매수당한 지배인은 배신에 치를 떨며 자신도 국정원에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기획탈북범죄를 폭로하는 산증인이 되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어도 이들이 자유의사로 입국했다는 정부의 입장은 유지되고, 여권발급도 여전히 거부되고 있다. 기획탈북범죄에 대한 진상규명도 가해자들의 사과도 없었다. 가족들과의 상봉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드디어 몇몇 피해 종업원들이 용기를 내었다. 억울하게 끌려와 낯선 땅에서 숨어 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이들은 가족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기획탈북범죄에 가담한 지배인에 이어 피해 여종업원들이 용기를 내어 언론 인터뷰를 하고 유엔과의 면담에서 한국정부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진상규명이 되기만 하면 똑같은 처지에서 아직은 외부 접촉을 피해 숨어 있는 나머지 종업원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용기를 내어 증언할 것이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2016년 4월 북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이 국가정보원이 기획한 범죄행위라는 진실이 사건 발생 2년여가 지나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국정원과 통일부의 뻔뻔한 거짓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길은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규명뿐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납치범죄를 저지른 국가로 인정될 경우의 파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짐작해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외의 빗발치는 진상규명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끝내 박근혜정권의 범죄행위와 과오를 묵인하며 피해자를 방치한다면 기획탈북범죄의 법적·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진상을 밝히고 국가기관이 자행한 범죄와 이로 인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종업원들이 가족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도주의 및 인권의 원칙을 최우선으로, 분단적대를 악용한 불미스러운 과거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기획탈북범죄의 진상규명에 신속히 철저히 나서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 응당 해야 할 처신이다.

 

장경욱 / 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대응TF 팀장

2018.7.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