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유병록

유병록

다들 청개구리 이야기 아시겠지요. 부모 말이라면 덮어놓고 반대로 행동했다는 그 청개구리 이야기 말입니다. 어머니가 죽으면서 산에 묻히고 싶어서 냇가에다 묻어달라 유언을 남기는데, 청개구리는 자신의 삶을 뉘우치며 유언대로 어머니의 무덤을 냇가에다 만듭니다. 그래서 비가 올 때면 어머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걱정되어 청개구리가 꺼이꺼이 슬프게 운다지요.

 

그 청개구리를 보며 생전의 어머니는 속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하고, 붙잡고 혼을 내기도 하고, 어쩌면 회초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청개구리는 달라지지 않았겠지요. 제멋대로였겠지요. 그런 청개구리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마음을 달리 먹게 됩니다. 전혀 다른 개구리가 됩니다.

 

사람이 달라지는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마음을 요동치게 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데는 여러 계기가 있겠지요. 좋은 책을 읽고 나서 감명을 받아서일 수도, 존경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특별한 계기 없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계기는 죽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청개구리가 삶의 태도를 바꾼 것처럼요.

 

죽음과 함께

 

저는 마음이 넓지도 못하고 이웃을 저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보잘것없다면 보잘것없는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큰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이 제 덕분에 즐거웠으면 좋겠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저를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 여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 되지는 못했더라도 생각이나마 이렇게 품고 살아가는 건 아마도 몇번의 죽음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으로 죽음이 다가오지 않도록 애씁니다. 그러나 죽음은 기어코 다가오고야 맙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스무살 무렵에는 어린 날의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가르쳐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누구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누군가의 울타리가 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존경하는 분의 죽음도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분에게 제가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게 가슴 아팠습니다. 저는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또다른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던 서울 용산역 앞의 한 건물에서 여러 분이 돌아가시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많은 분이 세상을 떠나는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죽음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억울하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기왕 죽음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니, 그 이야기를 빼놓고 지나갈 수는 없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가까운 가족을 잃었습니다. 저는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이제 행복한 날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 대신 보람이 있는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떠난 사람과 약속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죽음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죽음의 힘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안간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간힘마저 없었다면……

 

드물게 아름다운 영혼

 

며칠 전, 또 한번 가슴 아픈 죽음과 마주했습니다. 드물게 아름다운 영혼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의 소중함을 너무 뒤늦게 알게 되어서, 응원 한마디 하지 못해서, 작은 보탬조차 되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커 보여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 세상을 떠난 후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다른 사람의 죽음 때문에 눈물 나는 일은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한참이나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빈소를 나오면서, 저는 또 버릇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야 말았습니다. 그가 살아가야 마땅했던 세상에서, 그가 꿈꾼 세상을 위해 저도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고 다짐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죽음과 마주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왜 죽음으로 인해 삶이 달라지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저는 또다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을 것입니다. 죽음으로 인해서도 달라지지 못한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요.

 

유병록 / 시인

2018.8.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