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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을 향한 발걸음

강경석

강경석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북미정상회담이 불과 두어달 전인데도 벌써 오래된 일 같다. 회담 이튿날 치러진 6·13지방선거의 파격적인 결과부터 그렇지만 그 뒤로도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한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각의 가변성은 북을 괄호 치곤 했던 ‘우리’의 오랜 타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기무사 계엄문건 파동은 차라리 노골적인 경우이지만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이나 대형 항공사 갑질 논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분단체제를 배경으로 형성된 기득권구조가 여전히 건재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시시비비도 마찬가지다. 지대 문제나 재벌중심의 수탈 구조는 놓아둔 채 최저임금 인상의 찬반만 물고 늘어져서는 누구 말마따나 을과 을의 대결만 부추기게 될 뿐이다. 적폐청산이 목표여서는 적폐청산도 어렵고 비핵화만 목표로 해서는 비핵화조차 달성하기 어렵다. 남북관계는 그나마 한고비를 넘었으니 북한과 미국에 ‘아웃소싱’하고 우리 내부의 개혁과제들을 돌볼 차례라는 식으로는 남한사회의 개혁조차 제때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이 분단체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들메끈을 고쳐 묶는 차원에서라도 판문점회담과 그에 이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획기성을 다시금 되짚어볼 이유는 충분한데, 그런 맥락에서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모두발언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혹은 그 너머—설령 그 형태가 막연한 것일지라도—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육성을 통해 거의 처음으로 공식 천명된 점이고, 둘째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무수히 맞닥뜨렸을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을 강조함으로써 지금부터 새롭게 채워나가야 할 역사의 빈 페이지가 전에 없는 창의를 요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명백히 확인한 점이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환기해야 할 지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예의 발언조차 사실상 촛불을 타고 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미회담을 이끌어낸 탁월한 중재자로서 새 정부의 공적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새 정부를 만들고 움직여 여기에 이르게 한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잊어서는 곤란하다. 북한 지도자의 이번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것조차 촛불시민들이 환하게 밝혀놓은 역사의 조명등 덕분임을 뚜렷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미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난 사실 자체로 이미 의의가 충분하다는 입장도 있고 무언가 극적인 진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앞선 판문점선언을 크게 넘지 못했다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획기적이었던 이유는 최소한의 약속들을 하나씩 주고받으며 신뢰를 회복하고 그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에 이르자는 과거의 단계론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데 있다. 먼저 큰 틀에서 상호 간의 신뢰를 확인하고 그 방향에 따라 세부 절차를 만들자는 일종의 역발상이 이뤄진 셈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을 적정선에서 관리하며 작은 약속들을 하나씩 주고받는 방식으로도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성취를 이뤄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에 노출될 위험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것이 한반도 문제(특히 북핵 문제)를 상당 기간 지지부진하게 만든 요인이었음을 상호 인정한 데서 나아가 모든 것이 단기간 내에 이뤄지기 힘든 하나의 긴 과정이 될 수밖에 없음을 냉정히 수긍한 데서도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현실적 의의는 뚜렷하다. 회담 이후 실무협상 단위에서의 신경전을 빌미로 우리와 미국 언론에 온갖 회의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남북정상회담 및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시한 남북과 북미 간 선순환 논의가 최근 들어 새롭게 탄력을 받고 있는 것도 예전과 같은 취약구조가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방증이다.

 

그 획기성을 애써 못 본 척하거나 아예 보지 못하는 것도 분단체제의 효과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편견과 관행은 남과 북 더 나아가서는 미국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도처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남한사회에 국한해 볼 때 그 주요한 바탕의 하나가 된 것은 87년체제 30여년간 형성된 일종의 최소주의인지도 모른다. 민주개혁 세력과 수구보수 세력의 타협을 통해 탄생한 87년체제는 분단체제라는 상위체제의 규정력 아래 어느 편에서 보든 일진일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성을 그 구조적 본질로 한다. 따라서 당장에 합의 가능하고 실행 가능한 최소한의 절차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대개의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관행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이뤄낸 민주화의 진전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어느덧 ‘최대한’에 대한 상상력을 차츰 상실해버렸는지도 모른다. 남북관계를 정상적 국가관계로 전환하고 남한 개혁에만 몰두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그런 최소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 시소놀이 같은 불안한 균형에 조종을 울린 사건이 다름 아닌 촛불혁명이었음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명백히 달라진 것과 아직 달라지지 않은 것들을 분별하면서 ‘최대한’을 회복하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흔들림 없이 내디딜 때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8년 가을호 '책머리에'의 일부입니다.

 

강경석 / 문학평론가

2018.8.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