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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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사립유치원에서 사립대학이 보인다: 유치원 3법과 공적 재정 투명성

김종엽

김종엽

어제 학기말 시험 감독을 들어갔다. 내가 담당하는 현대사회학이론 기말시험 마지막 문제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법 이론에 근거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유치원 3법 문제를 분석해보시오’였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J. Habermas)의 법 이론은 마지막 수업에서 설명한 바 있으니, 불과 닷새 뒤에 마주하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기억은 제법 남아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시험시간 종료 후 답안지를 제출할 때 한 학생이 대뜸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유치원 3법이 뭐예요?”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너나없이 유치원 3법이 뭐냐고 물었다.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걱정은 하버마스의 법 이론에 대해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걸림돌은 유치원 3법이었다.

 

학생들이 왜 시험 문제를 받자마자 잘 모르겠고 수업시간에 따로 다룬 바 없는 유치원 3법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는지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두 동시에 “나만 모르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 질문할 엄두를 못낸 것이다. 이른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대학생과 유치원 3법 사이의 연결고리

 

하지만 애초에 왜 그렇게 여러 학생이 유치원 3법에 대해 잘 몰랐는지는 좀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물론 대부분의 대학생에게는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없으니 그들이 유치원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특정 사회문제와 자신과의 연관은 그것을 어떤 측면에서 조망하느냐 그리고 그 문제를 얼마나 더 넓은 맥락 속에서 검토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이 경우 대학생들의 무관심은 현재 유치원생이 겪는 문제가 자신들이 겪는 문제와 어떤 구조적 연관성을 지니는지 파악하지 못해서인데, 그것은 유치원 문제의 의제화 방식이 유치원장의 일탈적 행태 중심으로 너무 좁게 설정된 탓인 것 같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유치원 문제와 대학 및 대학생을 연결하는 고리는 금세 떠오른다. 우선 지금 문제가 된 유치원이 사립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 대부분이 사립이라는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치원과 고등교육에서 사립의 비중이 유난히 높으니, 교육의 입구와 출구가 사립의 주도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공공재를 충분히 공급할 능력이 없는 우리의 국가는 언제나 사회로부터 이런저런 자산을 끌어들임으로써 그것을 공급하는 손쉬운 길을 찾았다. 주택에서도 의료에서도 교육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주택과 의료와 교육에 흘러든 사적 자본에 한편으로는 이윤 획득의 틈새를 열어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 목적에 입각한 통제라는 이중적 작업을 시도했다. 그런 작업은 기실 일종의 곡예일 뿐이어서 늘 위태로웠고 공적 통제는 은밀하게 위반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의 한 귀결이 사립대학의 만연한 비리였으며, 지금 우리는 사립대학에서 그토록 익숙했던 풍경을 사립유치원에서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해온 불투명한교육비 지원

 

교육비 문제에서도 구조적 동질성이 드러난다. 유치원 교육도 고등교육도 사립이 주도하는 그만큼 교육비 부담도 컸으며, 그것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다. 불만이 먼저 터져 나온 것은 대학이었거니와 이명박정부 시기에 제기된 반값 등록금 요구가 그것이다. 거센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대응은 대학생에 대한 국가장학금 지급이었다. 소득 분위에 연동하고 대학 측의 대응 장학금을 강요한 국가장학금은 반값 등록금에 필요한 예산의 절반 정도로 사회적 요구를 짓뭉갠 것이었으며,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정권을 압박한 대학생집단에 대한 반격 내지 ‘복수’이기도 했다. 국가장학금은 보편적 교육에 대한 대학생들의 요구를 학점을 매개로 그들에 대한 규율을 강화하는 장치로 전도시키는 장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것이 사학재단을 ‘싸고도는’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보자. 처음에 반값 등록금 요구가 치솟았을 때, 그것을 요구한 사람들이 생각한 쉽고 간명한 방안은 정부가 대학에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그만큼 등록금을 낮추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가 재정이 사립대학 재정에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립대학 재정 전반이 국가의 감사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학 경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개선할 제도적 길이 선명하게 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훤히 내다볼 만큼 노회한 사학재단들이 그런 길로 들어설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사학재단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대학생들의 등록금 지불 능력만을 개선하는 국가장학금 같은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교육부가 관할 아래 있는 커다란 장학재단이 만들어졌어야 하니 교육부 관료들에게도 대만족이었을 것이다.

 

지금 유치원 취학 아동에 대한 지원금 문제도 이와 매우 유사한 발상에 근거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지원금이란 정부가 유치원에게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취학 아동에게 주는 것이다. 대학과 다른 점은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 국가가 그 지원금을 아동에게 주지 않고 유치원에 직접 주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국가가 그것을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우리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사실은 그것도 용기 있는 또는 교육위 경험이 일천해서 과감했던 한 국회의원 덕에 알게 된 것)이다.

 

유치원 3, 공적 재정 투명성 제고의 출발점

 

지금 자유한국당을 앞세워서 사립유치원장들이 요구하는 바는 ‘만시지탄’이지만 사립대학의 방식을 따라야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학부모에게 유치원비를 직접 지원하거나 국가가 유치원에 직접적 지원금을 주더라도 딱 그 돈에 대해서만 감사권을 가지라는 것이다. 요컨대 국가가 사립유치원 재정 전반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적 재정인 교비를 사적으로 편취할 제도적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단호한 주장이다. 그러니 한국의 대학생들이 유치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감마저 가질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적 재정 투입을 매개로 한 투명성 제고라는, 대학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 유치원에서는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것이 언젠가 대학을 바꿀 밑받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왜 자유한국당이 비등한 여론을 무시하며 정당지지율을 깎아 먹을 것을 감수하며 사립유치원장 편을 들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편으로는 총선이 아직 멀었기 때문이고, 총선기간에는 조직되지 않은 학부모보다 잘 조직된 유치원장들이 더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사학재단은 대학뿐 아니라 사립초중등도 운영하고 유치원도 운영한다는 것,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 연결고리는 재계·언론계·법조계 등으로 길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갑질’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조선일보 사주 집안의 어린 손녀가 한 수도권 사립대학 이사장 집안의 외손녀이기도 하는 사실은 말해주는 바가 있다. 수백개의 사립대학과 수천개의 사립 초중등학교와 역시 수천개의 사립유치원이 엮어내는 권력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는 막강하며, 그것은 정당 속으로도 깊이 흘러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들과 자유한국당은 본질적으로는 다른 존재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으며, 지금 자유한국당은 정당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는 본능에 더 충실한 셈이다.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12.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