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플랫폼노동의 난제를 타고 넘기
공유경제는 보통 플랫폼 기술을 이용해 (비)물질자원의 수요가 필요한 이들과 빌려줄 여유가 있는 이들 사이를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면서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신생의 닷컴 시장 유형을 일컫는다. 물론 이 ‘공유’(sharing)의 시장 셈법에는 사회적 증여나 재분배 등의 가치 지향이 담겨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온라인 중개 플랫폼’ 경제라는 풀이말이 ‘공유경제’라는 허세보다 더 솔직하고 정확하다.
우리에게 이 공유경제가 가시적으로 사회문제가 된 발단에는, 플랫폼 자원 배치의 동학에 인간 산노동이 중요한 거래 품목으로 삽입된다는 사실에 있다. 플랫폼 육체노동이 일반 물질자원 논리와 흡사해져가는 것이다. 공유경제, 특히 육체의 산노동을 거래하거나 자원 배달에 이용하는 플랫폼노동은 사실상 ‘임시직(긱, Gig)노동’의 형태를 띠고 있다. 플랫폼 장치의 굴레 안에서 전통의 고용관계가 서비스 계약관계로 바뀌면서, 이들 플랫폼노동의 지위는 파편화하고 노동 위험 대부분이 개개인에게 외주화되는 형세다.
최근 승차 플랫폼 노동시장은, 택시-카풀 업계 논쟁으로 시작해 이제 ‘타다’ 등이 시장에 합류하면서 지형이 더욱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배달 라이더 노동시장의 경우에는, 노동의 파편화나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4대보험 및 산업재해 처리, 노동 결사권 등이 중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주장과 의견이 분분한데 관료/정부 불신론, 플랫폼노동 대세론, 플랫폼노동 보호론 등이 대결하거나 혼재하는 양상이다. 이들 주장의 면면에 대해서는 향후 좀더 호흡이 긴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몇가지 꼭 선결해야 할 핵심 쟁점을 짚고자 한다.
필자는 새로운 플랫폼 시장 변화 속에서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사회 덕목이, 플랫폼 신기술의 효율적 측면을 긍정적으로 흡수하는 가운데서도 보장되는 사회적 약자 포용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기본 전제 없이는 플랫폼경제는 향후 시민사회의 적대가 될 공산이 크다.
사회 포용적 기술혁신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플랫폼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기본적인 사회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플랫폼노동의 위기 상황은 사회적으로 무엇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면서 나타난 시장 이해갈등의 각축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배달 라이더, 운전기사, 돌봄·청소 노동자, 퀵노동자 등 취약한 플랫폼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안전판 마련이 시급하다. 플랫폼노동을 동시대 ‘고용유연화’의 새로운 단계로 본다면, 노동권 보호가 시장 혁신보다 앞서야 한다.
둘째, 플랫폼노동의 존재 근거는 고객 소비의 편의성을 보장한다는 것인데, 이와 상충하곤 하는 노동 생존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돌파해낼 수 없다면 플랫폼노동의 질 개선, 상생, 포용성장은 어려울 수 있다. 불친절과 승차거부 등이 택시업계의 고질병으로 문제제기되는 반면, 배달노동을 공식적으로 24시간 풀가동하는 새벽 배송이 소비 편의로 각광받는 한 현재 플랫폼노동 기본권이나 생존권 문제는 사회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플랫폼노동 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폭넓은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기에 더 그러하다. 타다 등이 ‘친절 서비스’와 ‘자동 배차’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플랫폼 기술혁신의 적정성 점검이 필요하다. 현재 플랫폼 기술 도입이나 혁신의 잠재력이 과연 우리 사회 내에서 포용성이라는 꼴값을 갖추고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산노동의 질을 악화하는 신기술을 그저 혁신이라 우기긴 어려운 까닭이다. 더디 가더라도 노동 권리의 존엄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합당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기술 효율성의 안착을 독려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플랫폼노동 강도를 스마트폰 앱 등을 매개해 자동화하는 알고리즘 기술 통제의 적정 수준까지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따져 물어야 한다.
넷째, 정부·서울시·경기도 등 지자체의 중재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카풀 문제에서 보여줬던 사회적 대타협류의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대타협’이라는 시도 자체는 좋았으나 사회 신뢰 모델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적어도 논의 테이블에 시민사회는 기본으로 하면서, 관련 스타트업 등 소외된 이해당사자들까지 포함해 좀더 포괄적 시민의회 테이블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어렵겠지만 정부는 중재력과 합의를 이끌어낼 민주적 플랫폼노동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해 좀더 끈질기게 고민하고 애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련 노동법이나 정책 입안을 통해 사회적 타자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플랫폼 긱경제를 넘어설 사회 대안이나 전망까지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플랫폼경제는 정도 차이는 있더라도 사회 전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물질과 비물질(데이터) 노동을 변변한 보상이나 사회적 공유 가치 확산 없이 대부분 지대 방식으로 수취하는 사적 이윤 모델에 기대고 있다. 플랫폼노동의 가치가 구성원에게 재분배되고 사회적으로 증여되는 상생과 호혜의 플랫폼 대안 구성을 논의하고 장려할 때인 것이다. 이제는 플랫폼경제의 수정 모델 제시가 됐건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 됐건 실질적인 플랫폼노동의 혁신적 실천 방향을 다잡아야 한다. 제도 안팎의 상상력과 실험이 필요하다.
이광석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2019.6.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