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청해부대가 호르무즈로 가면 안 되는 이유
어제 해군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이 부산 해군작전기지를 출발했다. 청해부대는 본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선박호송과 해적퇴치 임무 등을 수행하는 부대지만, 강감찬함이 아덴만으로 갈지 호르무즈해협으로 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러 경로로 호르무즈해협으로 파병해줄 것을 요청해왔고, 정부는 파병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은 채 필요시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변경하여 파견하면 되고 이를 위한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참여연대, 제주해군기지전국대책회의 등이 잇달아 발표한 파병반대 성명에 대해 지난 8월 9일 국방부가 보내온 회신의 일부다.
“현재 우리 국방부에서는 미측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행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 선박 보호와 에너지 자원 안보상 사활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최근 호르무즈해협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유조선 피격/나포사건과 관련 미측에서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 호위 연합체는 同지역에서의 선박 보호와 호르무즈해협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미국 주도 對이란 다국적 연합해군구성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 만일 청해부대가 호위 연합체에 참여한다면 지난 10년간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우리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목적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헌법에 반하고, 국제적 이해도 얻기 힘든 파병
하지만 이 답변은 여러가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미국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마치 파병이 우리 정부의 자발적인 선택인 것처럼 꾸미고 있고, 우리 해군이 상대해야 할 대상이 이란이라는 사실 역시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최근 호르무즈해협에서 일어난 몇건의 선박공격행위를 이란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있고 미국이 동참을 요구하는 연합해군도 이란 혹은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단체를 상대하는 군대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는데 정작 요청을 받은 한국정부는 파병목표를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도 공격의 주체가 이란과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를 미국으로부터 제시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호르무즈해협에서 자국 유조선이 피격당한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이란이 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며 파병을 망설이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도 이란을 지목하는 미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과 이란의 즉각적인 대화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거도 없이 이란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국제법에 반하는 침략적 행위에 해당한다. 만약 국방부 주장대로 막연히 ‘항행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헌법에 반하고 국제적으로도 용납되기 힘든 일이다. 유엔결의조차 없이 미국 편에 서서 맹목적으로 군대를 파견하기에 앞서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것이 순서다.
셋째,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임무를 국회 동의 없이 변경하는 것은 중대한 위법행위라는 점이다. 청해부대 파견은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바탕을 두고 아덴만 지역 다국적 연합해군에 파견돼 대(對)해적 대테러 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국회에 보고되어 동의된 사항이다. 그런 청해 부대가 호르무즈해협의 대이란 연합해군에 참여하는 것은 작전지역, 임무, 지휘체계 모든 면에서 중대한 변경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별도의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파견을 고유 임무의 연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군의 대이란 연합해군 참여 논의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가 굳이 파병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 선박이나 인명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등 유사사태에 준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 공격주체가 이란과 관련이 있음이 명백해지면 다른 평화적 해결 수단이 모두 사라졌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제시한 후에 충분한 국민의견 수렴을 거쳐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파병이 불러일으킬 군사적 연쇄작용
그런데 일부에서는 북핵문제로 미국의 협력이 필요한데 미국의 파병요청을 무작정 거부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노무현정부 때 이라크 파병을 통해 한반도 핵협상에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것과 동일한 논법이다. 하지만 그때 과연 이런 논리가 실제로 통했는지 냉정히 평가해봐야 한다. 정부는 아직 이라크 파병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서를 작성하지도 발표하지도 않았다. 전범국으로 비난받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모두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공식 평가서를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호르무즈해협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근본원인은 기실 이란과의 핵협상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미국 때문인데, 우리나라가 파병을 결정할 경우 약속을 파기한 미국 편에 서서 이란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하는 꼴이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사회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하고 북한을 설득해야 할 남한으로서는 자가당착인 셈이다. 남한이 비핵화협상을 맺은 당사자 중 약속을 깬 측을 돕는다면 북한이 과연 남한의 역할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겠는가.
또 한편에서는 한일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중재가 절실한데 호르무즈 파병은 그 비용의 일부가 아니겠느냐고 주장한다. 일본이 파병을 망설이는 사이에 한국이 먼저 미국을 도와 파병을 결정하는 게 유리할 거란 주장이다.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과의 갈등 때문에 미국의 요청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갈등의 상대편인 일본의 노림수를 궁극적으로 돕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전략’ 자체가 일본 아베 총리가 처음 제안하여, 트럼프 행정부가 전격 수용한 구상이다. 이 구상을 군사적으로 단순화하자면 서태평양과 인도양의 모든 바다에서 ‘항행의 자유’ ‘해양안보’를 명분으로 미일이 주도하고 주변국들이 동참하는 군사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북한, 이란 같은 ‘불량국가’들을 해상에서 포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군사적 긴장은 다시금 일본이 헌법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을 더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아베와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은 미일이 주도하고 인도와 호주를 끌어들여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응하는 4각 군사협력 축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4각 축은 다시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인도 군사협력이라는 3개의 3각 군사협력체계에 의해 뒷받침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구상은 비단 호르무즈해협이나 아덴만 등 인도양 지역에서 패권적 연합해군을 구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라카해협 주변의 남중국해를 비롯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대중국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미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한국정부의 개입을 집요하게 묻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조차 꺼리는 인도-태평양 군사전략
더 큰 문제는 아베가 주도하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채택한 인도-태평양 군사전략이 일본도 적극 가담하기를 꺼려할 만큼 공격적이라는 데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역내 국가들마저 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기도 하다. 단순히 중국 자본의 힘에 밀려서만이 아니라 유엔해양법 협약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패권적으로 적용하는 ‘항행의 자유’ 논리를 장차 역내에서 더 큰 힘을 얻게 될 중국이 일종의 선례로 보고 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패권 유지에 필요한 군사비를 충당하기 힘들어진 미국은 역내 동맹국에 기지나 군대 분담금을 더 지원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 주된 대상은 분쟁수역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호주나 비동맹국가 인도가 아니라 주로 만만한 한국과 일본이다.
문재인정부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중국 인도-태평양 전략 수용 여부에 대해서 가까스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의 한일갈등 전후로 미국은 기대했던 중재 대신 자신들의 청구서만 노골적으로 들이밀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남중국해 분쟁 개입, 방위비분담금 인상, 중거리 미사일 배치, 고가무기의 구매 등 미국이 이미 요구했거나 요구할 리스트는 끝이 없다. 정부가 호르무즈 파병이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에 대해 아직 확답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새로운 비용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미 한국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안에 너무 깊숙이 들어서 있다.
신냉전체제로 이어지는 군사주의를 버려야 할 때
이전 박근혜정부는 국회의 동의도 없이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잇달아 결정했다. 한일군사협력 강화를 요구해온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이 중 ‘위안부’ 합의의 일부를 제외한 군사적인 조치는 원상 회복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집권한 후인 2018년 완공된 평택 미군기지는 노무현정부 때 합의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는 미군의 허브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평택기지는 해외 미 육군기지 중 최대·최고 시설로서 당초 50%만 부담한다던 대국민 설명과는 달리 총 건설비 약 107억 달러의 92%를 한국정부가 제공했다. 또한 노무현정부가 결정하고 문재인정부 들어 완공된 제주해군기지 역시 명목상 한국해군기지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공해전 전략’에 필요한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이 기항하는 대중국 전초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일본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추구라는 이름으로 미군의 첨단군비들을 초대하고 집결시키는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고, 한국정부도 대규모 미군기지, 해군기지, 사드기지, 막대한 분담금 등을 제공하면서 엉거주춤하게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신한반도체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이 결과할 새로운 냉전체제는 조화될 수 없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익숙한 군사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상호의존과 협력에 기초한 평화를 보다 단호히 추구해야 한다. 미국의 호르무즈 대(對)이란 연합해군 참여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수 있다.
이태호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19.8.1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