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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 개혁, 전환인가 파산인가: 교육부 ‘2021년 기본계획’을 보고

윤지관

윤지관

교육부가 지난 8월 14일 발표한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은 학령인구 감소로 야기된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에 대처하는 이 정부의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교육부는 “제4차 산업혁명 등 사회변화에 따른 대학의 기능과 역할 변화 요구”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대학·전문대학의 위기심화”를 추진배경으로 제시하고, “대학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한 적정 규모화 등 대학의 자체적 정원 조정 기제 및 학사구조 개편 필요”를 내세웠다.

 

이같은 방향에서 2021년 시행될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정원 감축과 연계된 대학평가 대신 자체 계획에 따라 대학이 ‘적정 규모화’를 추진하고 그것이 진단에 반영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진단 지표에서 신입생 및 재학생 충원율의 비중을 100점 만점에 20점으로 크게 높여서 각 대학이 자율적인 정원 감축을 통해 지표를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전임교수확보율, 취업률 등 중요지표에서 정원 감축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만 보면 대학에 ‘자율성’과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강제적인 정원 감축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율성으로 포장된 교육부의 이 방안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제고와 단순한 ‘조정’을 넘어서는 ‘개혁’을 추구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포기한 정책파산 선언에 가깝다. 정부가 정원 조정에서 손을 떼고 대학의 자체적인 감축에 맡긴다는 것은 수도권 중심 서열구조가 확고한 상황에서 곧바로 지방대, 군소대, 전문대의 궤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의 어떤 대학이 학생 충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터에 스스로 정원을 감축하겠는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 감축의 피해는 고스란히 비수도권 사립대학이 감당할 수밖에 없고, 이들 대학의 교육현장 황폐화와 폐교사태는 불 보듯 분명하다. ‘지역대학과 전문대학의 위기심화’가 추진 배경이라면서 이같은 방안을 내놓는 것은 무책임한 자가당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파국을 방지하려는 조치로 기본계획에서 ‘지역대학 배려 강화’를 내세우고는 있다.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일반재정지원 대학을 90퍼센트 선정한다는 방침은 비수도권에 다소 유리하고, 일부 지표에서 권역별로 만점 기준을 분리 적용한다는 원칙도 그렇다. 그러나 학생충원율이 평가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극단적인 시장주의가 도입된 이상 이 정도의 처방은 땜질에 불과하고 ‘지역대학과 전문대학의 위기심화’는 해소되기는커녕 더 촉진될 것이다.

 

이 사태는 문재인정부 집권 초기 대학정책 수립 실패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대 김상곤 교육부는 박근혜정부가 시작한 대학구조개혁의 기본틀, 즉 경쟁을 통한 ‘기업체식’ 규모 축소 방식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더 악화시켰다. 기존의 5등급 평가를 상위대학인 자율개선대학과 하위대학인 역량강화대학 및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이분하여, 상위대학에는 정원 감축 권고를 면제하고 일반재정을 지원하는 한편 하위대학에 정원 감축과 재정적 불이익을 집중시킨 것이다. 이로써 대학들 사이의 부익부빈익빈은 더욱 심화되고 대학 서열구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하위대학에 대한 정원감축 권고도 2만명 이하로 하고 나머지 학령인구 감소분(3만명 추산)은 ‘학생의 선택’에 맡김으로써 시장주의로 더 기울었다. 교육부는 2024학년도에 대학정원 대비 입학생이 약 12만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 개입의 어려움을 부각하고 있는데, 기실 이처럼 악화된 상황은 현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다. 시장주의를 강화한 결과 마땅히 줄여야 할 정원을 줄이지 못한 탓이다. 대학서열구조에 대한 개혁의지의 실종은 과연 이 정부의 대학정책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다는 국정철학과 부합하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기본계획의 ‘지표개선노력’ 가운데 그나마 국정철학에 연동된 지표는 법인 책무성과 구성원 참여·소통으로, 이에 대한 배점은 각각 2→4점, 1→5점으로 대폭 상향되었다. 전자는 문재인정부가 역점을 두어온 사학비리 척결과 유관하고 후자는 대학민주화와 유관하다. 그러나 이같은 대학의 책무성 강화도 대학들이 시장주의에 따른 생존경쟁에 내몰려 있는 조건에서는 의미가 크게 약화된다. 사학 공영화 등의 대책 없이 부정·비리에 불이익만 주는 것은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의 피해로 직결되는데, 대학 내 민주주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대학일수록 생존을 앞세우는 논리와 압박 아래서 소통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대처하는 대학정책이 시장주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 구조조정은 한국 대학의 왜곡된 구조를 개혁할 호기이기도 하고, 망국병이라 할 학벌주의를 완화해나갈 계기로 전환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기본계획을 유보하고 대학의 장기적 전망에 입각한 구조조정 대안정책을 모색하는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필자도 지난 7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대학들에 대한 일률적 평가에서 벗어나 특성, 지역, 규모, 설립형태에 따라 구별하여 평가함으로써 획일적인 대학상을 탈피할 수 있는 대안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가령 대학들을 연구중심과 교육중심, 그리고 기술교육중심으로 나누어 각각의 특성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만약 교육부가 현재의 기본계획 시안을 그대로 확정하여 시행한다면, 문재인정부는 시장주의로 인해 비대해진 대학을 시장주의로 정리함으로써 한국 대학의 장래에 암운을 던진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 전 한국대학학회 회장 

2019.8.2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