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강사법 시행 한 학기, 무엇이 달라졌나
세칭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19년 8월부터 시행 중이다. 부당대우와 열악한 삶을 죽음으로 호소하던 강사들의 이야기, 특히 2010년 고(故) 서정민 강사 사건을 계기로 2011년 만들어진 법안이다. 그러나 대량해고 우려와 대학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시행이 네차례나 유예된 바 있다. 이번 정부 들어 대학·강사 대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가 꾸려졌고 교원지위 인정, 1년 임용 및 3년 재임용 절차 보장, 방학 중 임금 지급 및 사회보험 제공 확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마련해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1977년 교원 지위를 박탈당했던 강사는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되어 매학기 위촉되고 해촉되는 임시적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임시성은 처우의 열악함을 비가시화하거나 자연화했고, 대학과 교수의 자의적 결정에 종속되는 위태로운(precarious) 삶을 양산했다. 거절하면 다음 학기에 위촉되지 않을까봐 들어오는 강의는 다 맡아 과로하거나 계획적 삶을 기획하지 못한 경험, 행정실의 위촉 전화이려나 모르는 번호도 무조건 받은 경험, 메일 한통도 없이 잘린 경험, 재직증명서가 아니라 경력증명서만 발급되어 금융대출 여부나 한도가 제한된 경험, 보육서비스 관련한 맞벌이 혜택도 받지 못한 경험, 독립된 건강보험 지출이나 국민연금 축적이 어려워 의존적 상황에 놓인 경험들. 모두 직접 겪고 목격한 것들이다. 낮은 강의료와 대학 공간·자원 이용에서의 소외는 더 말해 무엇하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을 돌아가게 하면서도 사회안전망과 대학의 자원분배·인정체제에서 체계적으로 주변화된 강사들의 현실은 대학의 오래된 모순으로, 개입해야 할 사회문제이다.
개정 강사법은 이 오래된 모순에 대한 적절한 개입일까. 여러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대학은 재정난을 들며 강사들이 주로 맡아온 교양강의를 축소하거나 대형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거나 전임교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험 지급을 피할 수 있는 겸임·초빙교수 지위로 강사를 채용하는 ‘꼼수’도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차근차근 진행되던 대학발 구조조정 행태로, 강사법으로 인한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7년의 유예기간 동안 이미 대학은 37%의 시간강사를 줄였으며, 몇몇 주요 사립대는 시간강사를 70% 이상 감축해왔다. 2019년 1학기 시간강사 담당강의 0학점의 위업을 달성한 한 대학의 선제적 대응을 보면,(『한겨레』 2019.5.29.)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에 대한 유예였는가라는 회의가 든다. 대학도 정부도 서로 눈치 보며 책임을 미루고 있었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해고된 강사들에게 가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이 보완책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부족하다.
게다가 교육부는 다른 부처 설득에 실패해 애초 추산된 예산이나 계획된 지원책보다 축소된 방향으로 강사법을 운용하고 있어(건강보험 커버 제외, 방학 중 임금도 2주분 정도만 지급하는 등), 현장에서 체감되는 경제적 처우 개선 효과는 크지 않다. 애초에 워낙 적었기 때문에 증가분을 포함해도 강사인건비가 대학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3%대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과 대학은 강사법이 대학 재정을 붕괴시키는 것처럼 엄살을 떨며, 등록금 인상이나 다른 지원책 유인을 의도하고 있다. 수도권 사립대학을 제외한 대학에 재정위기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강사법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협의체를 꾸려 이미 당사자로서 합의한 내용을 비판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대학은 이제 그만 구사할 때가 됐다.
강사법이 낳은 큰 변화는 오히려 교원으로서 강사의 자격과 권리주장을 둘러싼 영역에서 일어나는 듯하다. 공개채용이 전면화되면서 지원자격과 선발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전임교원급의 실적과 면접·공개발표회 등을 요구하는 대학들이 많아 지원자들의 부담이 가중됐고, 기존 강사들도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임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문사회계열 박사수료생들의 기회가 축소되었다. 박사논문 작성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이공계열에 비해 장학금·연구비 지원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강의는 교육자로서의 경력을 쌓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대학원생노조 등의 문제제기로 박사학위 미소지자를 포함한 학문후속세대 임용할당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대학과 학과 자율에 맡겨진 추세라 수혜자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미진입자들도 고려한 ‘연구안전망’ 정책이 개발되어야 한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같은 구제제도를 이용할 수 있고, 평의원회나 총장선거 등 대학 내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할 주체가 되었다는 의미를 마지막으로 숙고해보자. 나는 일부 교수들의 강사법에 대한 강고한 몰이해가 의아한 적이 있었다. 교육부 「대학 강사제도 운영매뉴얼」을 찾아보면 해결될 의문들을 끊임없이 강사법의 한계나 쓸모없음, 비용 문제로 전환하는 논리들을 보며 오히려 핵심은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권리주체의 등장에 대한 부담감과 거부감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확신을 굳히게 된 사건은 두가지인데, 첫째는 고(故) 고현철 교수의 죽음으로 지켜낸 총장직선제에 강사들의 투표권 행사는 거부한 부산대 교수평의회의 결정이다. 두번째는 20년간 강사였던 예술인을 실제 규정과도 무관하게 석사학위를 요구하며 해촉해 그의 죽음에 연루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행태다. 현재 강사법은 오히려 강사 임용에 학위 조건을 완화해 규정하고 있다. 어떤 합리성이나 정당성을 찾기 힘든 이 대학의 행태를 가능하게 한 일상적인 무관심과 차별적 태도, 나를 포함한 우리 대학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오래된 에토스가 있다. 그를 조직화된 실천으로 바꾸지 않는 한, 오래된 모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사법을 둘러싼 구체적 성찰과 개입이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유현미 /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수료
2020.1.2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