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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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이향규

이향규

2020. 2. 8. ()

 

중국사람, 중국음식, 중국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가 심상치 않다. 노골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당사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조직적이지도 누가 계획한 것도 아니지만 빠르고 강력하게 전파되는, ‘우리끼리’ 눈짓으로 담합하여 ‘그들을’ 조용히 격리시키는 그런 경계 말이다.

 

시내에 있는 중국음식점 하나는 결국 문을 닫았단다. 두달 가까이 손님이 하나도 없었으니 망할 만도 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우리 동네 펍 주인이 이 말을 전하면서, 자기가 직접 목격한 것이라며 이 얘기도 덧붙였다. 슈퍼마켓에서 중국인이 카트를 밀고 가는데, 사람들이 슬슬 피해서 그 사람 주변만 텅 비어 있었다고. 들으면서, 그 '중국인'은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국사람들이 기피하는 ‘그들’의 무리에 이미 속해 있을 지도 모른다.

 

오늘 런던에 갔다. 브릭스톤역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두리번거리다가, 중국음식을 포장해서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했다. 단정하게 생긴 중국청년 두명이 음식 진열대 뒤에서 인사를 했다. 도시락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가게가 있는 상가 안으로 몸집이 큰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고는 자신의 웃옷을 위로 잡아당겨 입과 코를 가렸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큰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

“익스큐즈 미?”

“너희 중국인들은 다 마스크 쓰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으면, 그리고 배짱이 있었으면, 이렇게 애기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인종주의적 혐오발언을 했어요.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어이없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런 거였다.

“나는 중국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영국에서 살고 중국에는 가지도 않았어요.”

 

나는 그의 인종주의적 발언을 문제 삼는 대신, 중국인이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건 중국인은 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좀 비굴했으나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동안 집에 있어야겠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봐 무섭다.

 

2020. 2. 13. ()

 

아이들이 다음주에 일주일 동안 하프텀 방학(학기 중간의 단기 방학)을 맞는다. 큰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왔다.

 

“하프텀 기간에 코로나19 위험지역인 다음 국가를 여행한 학생의 경우, 영국 입국일로부터 14일이 경과하여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등교할 수 없습니다. 이는 정부의 권고에 따른 것입니다. 이 점 유념하여 가급적 다음 국가에는 여행을 자제하십시오. 위험국가는 중국, 홍콩, 태국,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폴, 말레이시아, 마카오입니다.”

 

그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국인은 우리 아이밖에 없다. 나는 이 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이 가정통신문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 얼굴을 떠올리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자꾸만 바이러스와 우리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 싫다.

 

나는 요즘 평안하지 않다. 어제도 막내와 보건소에 갔는데, 우리가 대기 의자에 앉자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까페에 갔을 때도 그랬다. 내가 앉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바이러스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다. 지나친 피해의식일 수도 있는데, 나는 자꾸 민감해진다. 바이러스라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뉴스를 보면, 그곳에서의 혐오와 배제는 훨씬 노골적인 것 같은데. ‘중국인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 음식점도 있다는데, 만약 내가 여기서 그런 식당 앞에 서게 되면 어떤 모욕감을 느끼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화가 났다. 가사도우미, 간병인, 택배기사 등 임시·계약직으로 일하던 중국동포들은 상당수가 일이 끊겨서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겪는 위협은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안산에 사는 한 중국동포는 지난 몇년간 중국에 다녀온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이제 일터에서 밥을 같이 먹지도 않고 말을 섞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들도 외치고 싶을 거다.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고. 특정 집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이러스 취급하는 것, 나는 그것이 바이러스 만큼이나 무섭다.

 

2020. 2. 16. ()

 

이것은 다 공포 때문이다. 오늘 미사 말미에 신부님은 공지사항을 말하면서 다음주부터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악수나 포옹을 하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평화를 빕니다’(Peace be with you)라고 말하며 눈을 마주치고 악수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런데 서로 접촉하지 말라니. 평화를 빌면서. 나는 이 결정이 불편했다. 그동안 해왔던 인사를 하지 않게 되면, 이 시간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바이러스의 공포를 일깨우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바이러스처럼 보는 타인의 시선을 경험한 아시아 사람이라면 서로 손 내밀지 않는 그 순간에 괜히 마음이 위축될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에게 가서 이런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런던에서 내가 겪은 일도 이야기했다. 그는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건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 조치는 순전히 감염예방과 위생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우리 막내가 언젠가 그랬다. 백인 학생들은 다른 인종 학생이 일상적으로 겪는 배제의 경험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잘 모른다. 성직자라고 예외겠는가.

 

다음주 미사가 궁금하다. 사람들은 서로 손을 내밀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웃음 지으며 인사할 거다. 그런데 혹시 그 웃음 끝에 어색함이 묻어 있지는 않을까? 경계심과 두려움의 흔적 같은 것이 비치지는 않을까?

 

2020. 2. 23. ()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상대가 먼저 행동하기를 기다렸다. 손을 내밀었는데 상대가 잡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을 것 같고, 손을 내밀지 않았는데 상대가 악수를 기대해도 어색할 것 같았다. 머뭇거리는데 옆자리에 있는 할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했다. ‘평화를 빕니다.’ 앞자리에 있는 할머니도, 그 옆에 있는 중년 남자도, 그 옆에 있는 소녀도 손을 내밀었고 우린 눈을 맞추고 웃으며 인사했다. 지난주의 공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괜히 울컥했다. 내가 이 공간에 온전히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로 눈물이 나다니! 그동안 내 마음이 많이 약해졌나보다.

 

주보에 적힌 안내문을 읽은 것은 미사가 다 끝난 후였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평화의 인사: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손을 내밀지 말라는 안내는 이제 중단합니다. 그러나 미사에 오기 전에는 꼭 손을 깨끗이 씻고, 열이 나는 경우에는……”

 

마음은 사소한 사건으로 크게 상처받기도 하고, 크게 위로받기도 한다. 상처도 위로도, 다 나의 생각과 행동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오늘 위로의 힘은 제법 세서, 그동안의 상처를 많이 아물게 했다. 어쩌면 나의 생각과 행동까지 바꿀지도 모르겠다.

 

2020. 2. 24. ()

 

아침부터 모든 뉴스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을 넘어 전세계로 급격히 확산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국의 감염자가 830명이라는 것은 뉴스 첫머리에 나왔다. 뉴스 영상도 이제 중국이 아니라 한국을 비춘다. 한국 언론은 이미 중국인 혐오에서 한국인 혐오로 발전되는 것을 우려한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속으로 연습한다.

 

나는 어쩌면 또다시 “중국사람은 (혹은 한국사람은, 혹은 아시안은) 다 마스크 쓰고 다녀야하는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진작 말했어야 할 말을 해야겠다. “당신은 지금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했고, 저는 그 공격에 위협을 느낍니다.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번도 다른 인종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경험이 없었을 법한 이들에게, 이런 시기에 우리가 경험하는 것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해주어야겠다. 그들이 우리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다면, 부당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순간에 우리 편이 되어줄 수도 있겠으니.

 

멀리서 하는 발원이 도움이 된다면 나는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리라. 한국사회가 다 같이 협력하여 조속히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기를, 바이러스 감염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이 크지 않기를, 의료진과 지원인력이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그리고 전염병의 공포가 특정집단에 대한 비난과 혐오로 발전하지 않기를.

 

이향규 /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글로벌다문화연구원 객원연구원

2020.2.2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