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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책,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윤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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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정책인 ‘대학기본역량진단’의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교육부가 얼마 전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내놓았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미충원 사태로 지방대학의 위기가 심화되고, ‘디지털 대전환’으로 대학의 근본적 개편이 요구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방대와 전문대가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으리라는 것은 대학 간의 경쟁과 시장주의에 의존하는 현 정부의 대학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 이미 예상되던 바였다. 이번 교육부의 대책 발표는 그 폐해가 현저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상황에서 시기상으로도 늦었거니와 정책 방향의 수정이라고 보기에도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대학의 체질 개선을 위한 혁신 전략이 필요한 국면이라는 교육부의 인식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다. 지방대와 전문대의 위기도 위기려니와 팬데믹 이후 대학의 존립과 교육방식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부 대책의 방향 자체가 이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대응이 아니라 대증적인 처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내놓은 세가지 정책 방향을 살펴보면 그 어정쩡한 입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교육부가 제시한 방향 가운데 ‘대학의 자율혁신에 기반한 적정 규모화’와 ‘부실대학의 과감한 구조조정 유도 및 퇴출 추진’은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밝혔던 바와 동일한 내용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자율혁신을 통한 정원 조정은 정부가 ‘학생의 선택권’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시장주의로 더 기울면서 내세웠던 방침으로 현재의 난국을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나마 새로운 것이 있다면 지방대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유지충원율 지표의 평가를 권역별로 시행하여 수도권 내지 서울 지역의 대학도 조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 정도다. 대학의 개방과 공유를 촉진하겠다는 세번째 방향에는 새로운 전망이 실렸으나 현재의 대학 구조조정이 지속되는 한 시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 대책이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위기를 심화시킨 원인이라고 할 경쟁 위주의 시장주의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별로 유지충원율을 평가하겠다는 방침은 시장주의를 일부 보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맹점이 없지 않다. 수도권의 경우 경쟁 우위에 있는 서울 소재 대규모 대학들은 아무런 영향이 없는 반면 군소 사립대들은 이전보다 더 심각한 조정 위기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얼마나 보완될지는 오는 10월 발표 예정인 ‘대학 혁신지원사업 기본방향’을 지켜보아야겠지만, 현재의 교육부 ‘전략’으로 미루어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될지 의문이거니와, 내년 봄이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추진 동력도 얻지 못할 것이다. 결국 현재의 대학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차기 정부가 시장주의를 폐기하고 대학정책의 패러다임을 전면 혁신함으로써만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차기 정부 대학정책의 근간은 과거 10년간의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이 초래한 교육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고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선진적’ 대학체제를 구축하는 데 두어야 한다. 한국의 대학은 구조조정을 거치는 동안 계급 및 지역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수도권의 세칭 일류대를 정점으로 한 서열도 더 굳어졌다. 그리고 이 서열체계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반영할 뿐 아니라 확대·재생산하는 도구가 되어 있다. 앞으로 대학체제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는 사회의 평등을 지향하는 정부라면 피할 수 없는 민주화의 관건이자 척도가 될 것이다. 대학 서열과 그에 기반한 불공정·불평등 현실을 혁파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정치 차원의 ‘진보’와 ‘개혁’을 강조한들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과 기득권 구조는 방치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정권을 자처하는 이 정부가 불공정 논란에 휩싸이고 기득권 특혜구조의 일부라는 비판조차 받게 된 근저에는 대학정책의 실패가 가로놓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국가 개입을 줄이는 대학정책을 현재까지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겉보기에 공정을 가장한 이 자율성이 대학 서열구조를 조장하고 시장과 자본의 지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왔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차기 정부는 허울 좋은 ‘자율’을 앞세운 시장주의를 폐기하고, 사회불평등 해소와 공정한 교육기회 제공이라는 목적을 위해 공적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 사립인 지방대 및 전문대 가운데 지역에 꼭 필요한 대학들은 각 지역에서 고등교육기관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공영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재정 지원이나 구조조정의 준거가 되는 평가의 방식도 재고해야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대학 위기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나, 대학 구조조정은 고질화된 사학 문제와 서열화 등 한국 대학의 적폐들을 청산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규모와 성격을 가진 대학들을 동일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등급을 나누는 생존경쟁 방식은 이 위기를 더 가속화시켰다. 미래사회를 위해서 앞으로 대학은 일률적인 등급이나 순위가 아니라 특성에 따라 달리 평가되고 지원받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특히 현재처럼 전문대만 따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4년제 대학도 성격과 지향에 따라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대별하고 각 그룹을 그 특성에 따라 달리 평가할 필요가 있다.

 

가령 4년제 대학 가운데 대개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세칭 일류대학 및 대규모 대학은 그들끼리 따로 평가하여 과도한 학부 정원을 줄이고 대학원 중심 체제를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규모 대학 가운데 교육중심을 표방하는 대학과 대다수 중소 대학들은 불필요한 대학원을 정비하고 학부 교육에 치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저소득층 출신의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전문대학은 순차적으로 공영화하여 국가에서 기술 교육을 책임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처럼 특성에 따라 대학들을 분리하여 평가하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되면 대학의 획일화와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각 대학의 특성이 강화되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같은 혁신은 현재의 서열구조에 편승하는 일부 대학들의 기득권과는 배치되겠지만, 사회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부라면 대학체제의 개편이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설득해나가야 할 것이다.

 

 

윤지관 / 덕성여대 명예교수, 『대학: 담론과 쟁점』 편집인

2021.6.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