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부동산 대혼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동산 문제로 평범한 국민들의 고통이 심각하다. 현실을 보면 정책 실패를 부인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시장이 할 일, 국가가 할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한 것이 정책 실패의 출발점이다. 국가가 규제를 남발하면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주거 공공성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부동산가격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 전체의 전면적인 조정을 정부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정부가 시장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을 가진 것도 아니다. 정부나 정치인이 ‘집값을 잡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경제이론과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심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7월 28일 홍남기 부총리는 향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고성 담화까지 내놓았다. 미래의 시장가격에 대한 이러한 단언은 주술적 예언에 가깝다.
실상은 부동산가격 통계의 객관성마저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간 정부의 부동산 가격 통계가 현실의 체감 정도와 너무 괴리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가격 급등의 현실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 통계 수치가 또다시 이상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7월 들어 한국부동산원이 조사 표본을 2배 가까이 늘리면서 한달 사이에 수도권 아파트 매매 시세가 20%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책 판단의 근간인 통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정부가 현실을 정직하게 보고 있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기조는 혼란 속에 빠져 있다. 2017년 이후 수요억제책으로 일관하다가, 2021년 2·4대책에서야 공급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급물량 급감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서울의 주택공급 인허가 물량은 2017년 11만 3천여 가구에서 2020년 5만 8천여 가구로 감소했다. 주거의 질을 높이고 싶어하는 욕구는 존재하는데 공급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너무나 명백한 현실이 왜 부정되어왔을까? 인식의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오류를 교정하는 메커니즘은 왜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았을까?
현실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면 무모한 행동이 이어진다. 2020년 7월 국회를 전격 통과한 ‘임대차 3법’이 대표적인 예다. 세입자 권리를 강화한다는 취지의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서 전세 거래물량은 감소하고 전세 가격이 폭등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입법 당시(2020.7.31.) 3만 8427호에서 최근(2021.8.19.) 2만 1015호로 감소했다. 임대차 3법을 추진하면서 거래 물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정부가 계약갱신권 행사의 긍정적 효과를 홍보할 때는 딴 세상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주거 사다리로부터 밀려난 이들을 가까이에서 접해본 적이 없는 걸까? 2020년에 임대차계약 갱신청구권을 행사했던 가구들은 2022년 여름부터 폭등한 전세가를 마주해야 한다. 금융권 대출을 조이고 있는 마당에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법 제도의 강제력을 통해 임대차 가격과 물량을 조절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민간시장은 그대로 작용하게 두고 정부는 주거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시장 가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계층에 대한 주거복지는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 전체를 규율할 수는 없지만, 서민주거의 최후 보루인 공공임대주택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의 핵심적 역할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그 역할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가?
2019년 한국의 장기임대주택 재고는 158만 4천호이다. 그 내역은 영구임대, 공공임대, 국민임대, 기타 전세임대 등으로 되어 있다. 전체 주택 중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7.4%이다. 2019년 OECD 평균 8%에 비하면 약간 낮은 편이다. 미국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3.3% 정도이고(2017년), 주택급여 방식의 주거복지 서비스를 선호한다. 공공주택 비율이 높은 곳은 네덜란드(2018년 37.7%)와 영국(2018년 16.9%)이다. 한국도 공공주택 비율을 늘려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현재 공공주택을 관리하는 능력은 매우 낙후한 수준이다. 서민층의 주거복지와 공공성은 무관심의 영역이다.
현재 체제에서 주거복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떠맡겨져 있다. 그런데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의하면, LH는 토지의 취득·개발·비축·공급, 도시의 개발·정비, 주택의 건설·공급·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주거복지는 LH의 핵심 활동이 아니다. 지난 3월 LH 직원의 투기 행태가 문제가 되면서 LH를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분출되었으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안으로는 주거공공성을 강화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는 LH를 모회사(주거복지부문)와 자회사(토지+주택부문)로 수직 분리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안이 관철되면 ‘토지+주택부문’이 독립 법인화하면서 개발 사업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게 될 뿐이다.
정부는 부동산 공급정책의 기본 방향을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민간개발을 억제하고 정부 주도의 공공개발 사업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전체의 수요와 공급을 국가가 모두 떠맡고 갈 수는 없다. 공공개발의 경우에도 LH의 독점체제는 개혁되어야 한다. 특히 위축되고 있는 지방권에서는 새로운 도시개발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 공급체계를 분권화해서 LH의 지역본부와 지자체의 주택공사를 독립적인 사업 단위로 발전시키고, 정부는 주거공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부동산정책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방안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투기수요 억제와 불로소득 환수를 위해 고가 주택 및 다주택 보유자에게 높은 수준의 보유세를 징수하고 이를 기본소득으로 전국민에게 분배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가격 조절방안으로서의 주택매입공사 설치 방안, 공급대책으로서의 기본주택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현실 적용성이 높지 않다고 여겨진다. 시장경제에서 투기수요와 불로소득을 기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가 크게 진전된 현실의 조건에서는 과거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주장했던 단일지대세의 대안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국가사회주의하에서도 차액지대 전부를 국가가 수취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재산세 체계로 통합하여 보유세 수준을 높여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때 재산세를 통해 확보된 재원은 임대주택 등 주거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쓰는 것이 조세의 정당성·효율성 차원에서 유리하다. 보유세 제도에 기본소득을 연계하는 것은 이론적·현실적으로 수용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보유세 제도는 주거체제를 구성하는 한 요소이고, 기본소득은 복지제도와 연관된 목표를 지니고 있다. 보유세 인상에 대한 저항을 기본소득으로 완화시킨다는 발상은 잘게 쪼개진 다수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게 집결된 소수의 손실을 강제한다는 면에서 현실적이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다. 주택매입 제도나 기본주택은 서민층·청년층 주거복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제도를 가격 조절이나 불로소득 환수를 목표로 운영하려고 하면 시장경제를 왜곡할 수 있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카오스 상태이고, 정부 정책은 불신의 수렁에 빠져 있다. 시장의 일은 시장에 돌려주고, 국가는 주거공공성을 높이는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고통이 줄어든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2021.8.2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