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은 지속되어야 한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 연구자인 내가 보기에 김대중정부가 이룬 가장 중요한 기여는 두가지다. 하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1999)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설치(2001)다. 이 둘은 시민사회의 민주화, 다시 말해 '사회 민주화'를 상징한다. 어떤 사회이건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 시민사회 영역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하며, 바로 이 점에서 인권위의 설치는 우리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이 인권위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주도하는 정부조직 개편에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바꾸겠다는 안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다음주에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이 정부조직 개편안이 다뤄진다고 한다. 평소 인권위의 활동을 눈여겨본 나로서는 더없이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국가권력의 침해도 받지 말아야 할 인권위가 어떻게 행정권력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대통령이 직접 인권위를 관리한다?
인수위가 왜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는지 언론에 보도된 주장을 살펴봤다. 인수위에 따르면, 우리 헌법이 인권위를 헌법재판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처럼 제4부의 지위를 갖는 독립기구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통령 직속으로 옮기고,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이 되더라도 업무 및 기능 면에서는 어떤 간섭이나 규제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닌 듯하다. 지난 21일 한나라당이 낸 논평을 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나치게 권력층의 코드에 맞추느라 보편적인 인류의 인권 개념을 실천하는 역할보다 정권의 시녀 노릇을 충실하게 해"왔으며, "유엔에 상정된 대북 인권결의안에 우리 정부가 기권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도록 방관하고 정권의 친북노선을 성실하게 따라온 죄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은 "앞으로 인권위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정치적 균형을 갖춘 합리적 운영을 위한 업무 수행상 독립성만 보장된다면 조직의 법적 위상은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권위에 대한 이런 판단은 부분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먼저 논란이 된 북한 인권문제의 경우, 그동안 인권위가 취했던 태도에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권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인권위로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정치적인 오해를 살 만한 부분 역시 존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권력의 시녀였나
그러나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그동안 인권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해온 일들을 돌아보면 결코 옳은 비판이 아니다. 지난 7년 동안 인권위는 때로는 정부와 견해를 같이하기도 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허용, 국군의 이라크 파병 반대, 비정규직 법안 반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정책에 반대한 사례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2005년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인권위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사유 제한' 등의 의견을 제시해 정부 법률안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노동부장관이 인권위의 입장 표명을 비판함으로써 이를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진행된 바 있다. 이랜드사태를 포함해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된 이후의 상황을 돌아보면 인권위의 문제제기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당 이뤄져야 했던 것이었다.
비정규직 법안과 이라크 파병 반대 사례는 바로 인권위의 법적 위상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정치적 균형을 갖춘 합리적 운영을 위한 업무 수행상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는 하지만, 과연 대통령 직속으로 놓인 기구가 어디까지 정부정책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력 비판과 대안 제시는 권력 밖에서 가능한 것이지 권력 내부에서는 자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인수위가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려는 것이 혹시 이라크 파병이나 비정규직 법안 반대와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보장은 글로벌 스탠더드
인권위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직속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도 인권위의 탄생 과정을 돌아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권위가 그 탄생부터 독립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인권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입법·행정·사법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었다. 또한 1993년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빠리원칙)을 보더라도,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며, "지위·권한·업무 및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함은 자명하다.
인권위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은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1일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을 발표해 차기 정부가 인권위를 계속해서 독립기관으로 유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조가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리에 따라 인권위의 독립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인권위의 독립성이 인권보호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서도 보장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인권위의 독립성 결여는 결국 우리 사회 인권 보호와 증진의 후퇴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새 정부, 인권보호부터 선진화를
인권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넘어서는 자리에 위치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다름 아닌 인권보호에 있다. 보수든 진보든 민주주의가 소중한 가치라면, 인권 보호와 증진에 주력해야 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 조건이다.
곧 출범할 이명박정부는 1987년 이후 직접선거를 거쳐 출범하는 네번째 정부다. 이명박정부는 '선진화'를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선진화하려면 그 기본인 인권 보호와 증진부터 선진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인권위의 위상을 변화시키려는 안은 곧바로 철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8.1.22 ⓒ 김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