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선거 패배 후 민주당, 어디로 가야 하나
선거 패배가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선거에서 진 이유가 한두가지로 설명되기 어려운데다 그 책임도 특정인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논란은 결국 엄밀한 논증보다는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하기 쉽다. 이 논란을 일단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존의 지도부가 그 책임을 감당하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지도부가 결과에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일종의 정치윤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누가 이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대선 패배 후 석달이 안 되어 치러진 지방선거라 정치적 책임을 논하기 위해서는 패배의 원인과 어려운 조건에서 거둔 성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데, 지금처럼 당내 세력 간 불신이 극대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이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책임을 질 지도부도 명확하지 않다. 임시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질 정도로 권한을 부여받아 선거를 이끌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대위가 이미 사퇴했음에도 책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사실 당의 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임한 선거에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예상된 결과를 변화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더불어민주당 내 누구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방선거에 한정해서 보면 송영길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한 것이 잘못 꿰어진 첫번째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 선거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구청장 선거는 불과 약 0.8% 차이, 마포구청장 선거에서는 약 2% 차이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런데 같은 지역에서 오세훈 후보와 송영길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각각 18.5%, 15.7%에 달한다. 시장 선거에서 벌어지는 격차를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이 만회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약세는 다른 지역 선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야당이 된 민주당으로서는 지방선거를 공세적으로 치러야 하는데, 선거 명분에서 우위에 서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을 따질 필요는 있다.
그런데 민주당의 문제는 송영길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 결정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결정이 문제라고 생각한 당내 인사들도 비판만 했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을 내세워 힘을 집중하고 치열한 경선을 치렀다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었고, 또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 입장만 표명하고 경선과정에서는 사실상 수수방관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이낙연 상임고문의 추대설에 가까운 출마설이 흘러나온 것은 송영길 후보의 출마에 반대한 세력들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태는 패배만 기다리다가 선거 이후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패배 원인에 대한 다각도의 규명 없이 한두가지 문제에만 비판을 집중하는 것도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논란은 ‘책임론’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내의 모든 사람들이 크든 작든 책임을 나누어야 할 때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당을 정비하거나 개혁하는 데 도움이 될 리 없다. 물론 선거 패배의 원인을 규명하자는 주장을 어떤 음모에 따른 것으로 싸잡아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는 데 전념하며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전망에 대한 논의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의 가장 암울한 면이다.
일반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해석되지만 이번에는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변화에 대한 열망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광주의 낮은 투표율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서울시장 선거는 참패했지만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는 꽤나 선전했다. 2006년에는 전패하기도 했고 3곳에서만 승리한 2002년의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는 8곳에서 승리했다. 강원도 인제, 고성, 춘천 등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선전한 사례도 있다. 선거에서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변화에 대한 유권자의 의지와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의 낮은 투표율은 미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선거에 대한 거부이지,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수용은 아니다. 선거 참여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점에서 낮은 투표율이 긍정적 현상은 아니지만, 정치세력으로서는 그 의미를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패배는 날개 없는 추락이 아니며, 패배주의에 빠질 이유도 없다.
지금의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다음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졌잘싸’는 유권자들의 노력에 대한 격려이고 민주당에게는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구호다. 물론 당의 변화와 혁신이 아름답게 진행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현재 민주당의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한 갈등과 고통을 피하기 어렵다. 해결책은 갈등을 치열한 경쟁으로 극복하는 데 있다. 경쟁을 통해 모두 만족하지는 않아도 수긍해야 하는 결과를 만들고 민주당의 중심을 다시 세워야 한다. 당대표 선거가 중요해진 이유다. 이를 앞두고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논란은 경쟁을 거부하는 것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민주당의 미래를 누가 이끌어갈 수 있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지자들의 동의와 참여를 경쟁을 통해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 시민들은 중요한 고비 때마다 그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든 역사를 갖고 있다. 촛불혁명을 거친 이후 이들의 눈은 더 높아져 있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민주당의 혁신을 책임지고자 하는 이들은 상대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이 촛불시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경쟁에 나서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2022.6.7.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