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천안함사건, 대법원 판결과 또다른 시작
2010년 3월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반파 침몰한 천안함의 진실을 두고 12년간 이어졌던 법정공방이 6월 9일 대법원의 무죄확정 판결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 자격으로 민군합동조사단에 참여했던 제가 “군 당국이 천안함의 사고 원인을 조작·은폐하고 있다”고 선언하자 군이 명예훼손으로 저를 고소해 시작된 재판이었습니다.
이명박정부 때 시작된 재판은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1월에 1심(유죄),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 10월에 항소심(무죄)을 거쳐 네번째 정권 들어 최종판결(무죄확정)로 마무리되었습니다. 12년을 끈 재판이 끝난데다 무죄확정까지 받았으니 속이 후련할 만도 한데 기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 온전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끝나도 되는 사건인가 스스로 자꾸 되묻게 됩니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 후 소회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는 “무죄 판결 받자고 12년 재판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사고 원인 규명이라는 과제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라고도 했습니다. 현실의 미진함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안함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
천안함사건은 진실을 조작했다는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외교·국방·통일·안보 등 모든 분야에 나쁜 영향을 미쳤으며, 문제의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골 깊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이 사건을 국제사회로까지 가져갔지만 UN은 결국 공격 주체를 구체화하지 못한 채 원론적인 성명을 발표하는 데 그쳤고, 오히려 일본 보수세력이 오끼나와 후뗀마 미군기지 이전을 공약해 당선된 하또야마내각을 실각시키고 보수내각을 장기화하는 데 천안함사건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남·북·미 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천안함은 지금도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상존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법원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원인을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두렵습니다. 그나마 항소심에서 프로펠러가 휘어진 현상과 어뢰의 백색물질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단서를 단 것이 전부였습니다. 후세의 역사서에 천안함사건이 어떻게 기록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천안함사건의 진실 규명, 이제는 경찰의 몫으로
2010년 4월, 천안함 첫 조사에서 제가 군 당국의 조작을 폭로한 후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조사본부장, 합조단장 등 군부 실세 4인방의 고소·고발로 시작된 검찰 조사와 12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 과정에 경찰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장을 검찰이 조사하고 기소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로 그 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저에겐 아직 별건의 고소사건들이 남아 있습니다. ①천안함 함장의 고소 ②유가족들의 고소 ③천안함 함장에 대한 저의 고소(무고죄), 이렇게 세건의 사건이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검찰이 아닌 경찰에서 새롭게 들여다보게 된 셈입니다.
이는 곧 천안함사건의 진실 규명이 경찰의 몫으로 넘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찰이 이 사건을 들여다본다 해서 검찰과 무엇이 다를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사의 시작부터 다른 점은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검찰 조사의 부실함'에 기인합니다.
검찰이 주도했던 지난 12년의 재판은 사건의 기초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확보하지 않은 채) 시작되고 끝이 났습니다. 없거나 사라진 것도 아닌데 군사기밀이라는 명분으로 교신기록, 항해기록, 기관사용기록, 통신자료, 수리내역 등 펼쳐놓기만 하면 사고의 원인을 즉각 알 수 있는 내용을 모두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조사 역시 관성에 따라 똑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재판 과정에서 다투어왔던 무수히 많은 문제점과 오류들이 조사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합니다. 경찰 수사를 통해 검찰과 사법부의 부실한 조사 행태가 드러나게 된다면 대한민국 경찰의 위상을 재정립하는데 분명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수사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두 권력기관의 수사 의지와 능력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롭게 기대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천안함사건의 진실 규명과 두 권력기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검찰과 경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착한 진실 경쟁'을 열심히 부추길 생각입니다. 천안함사건의 진실 찾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신상철 / 진실의길 대표, 전(前)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2022.6.2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