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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노동과 흙과 시가 뒤엉켜 사는 삶: 귀농과 시

최정

무슨 큰 뜻이 있어서 귀농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팍팍한 도시 생활을 이십년쯤 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른 때가 왔다. 변함없는 일상에서 가끔 쓰는 시도 머리에서 억지로 짜내는 것처럼 메마르긴 마찬가지였다. 온몸으로 살며 온몸으로 글을 쓰고 싶은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날 판이었다.

 

도시에서 탈출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서른아홉살 때였다. 내 결단과 실천은 단칼에 이루어졌다. 강원도 홍천 고랭지 지역에 있는 유기농 농장에서 2년간 농사를 배우는 기간을 가져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준비기간이 없었다면 무모한 귀농이 될 뻔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산 중의 섬’이라 불릴 만한 경북 청송의 작은 산골짜기 끝자락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골짜기인데 첫눈에 반했다. 홀로 농사를 지으며 늙어가고 싶은 곳이었다. 한가지 흠이라면 지인들이 사는 수도권과는 너무 멀어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천여평의 밭농사로 먹고사는 게 급선무였다. 여성이 홀로 귀농해 농사로만 먹고살겠다는 목표는 꽤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시 쓰기는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해발 400미터 산골 끝자락에 값이 싼 돌밭을 사고 농막을 짓고 농사에 필요한 하우스 작업장과 농기구를 마련하니 통장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재정적으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으니 농사일은 내게 곧 생존 그 자체가 되었다. 당시는 이런 도전에 사뭇 설레기까지 했으나 실은 두려운 마음을 몰래 감추고 있었다.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농사일은 전투적이었다. 농사일지도 꼼꼼하게 써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처음 홀로 도전하는 농사는 결코 쉽지 않았다. 완전히 지쳐서 일찍 곯아떨어지는 산골 생활에 언제 시를 쓰게 될지 알 수조차 없었다. 홀로 일하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밭에서 일하면 새 소리, 바람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가끔 고개를 들면 산만 늘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곱씹어보는 지난 삶들은 어리석어 흙바닥에 떨어지곤 했다. 흙을 만지니 나 자신이 투명하게 보였다. 밭일에 지칠 때면 밭에서 이어진 산으로 들어가 계곡 옆 오솔길을 자주 걸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답도 없는 질문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느날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마음속 중얼거림이 그대로 한편의 시가 되었다. 밭, 풀, 새, 달, 별, 나무, 벌레, 계곡 등이 소재로 등장했으나 내용은 그리움에 풍덩 빠졌다가 나온 것 같은 언어들이었다.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여리고 쓸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외였다. 강인한 힘이 느껴지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시를 쓰고 싶어하지 않았었나? 나도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서정적인 목소리였다.

 

밭일을 하다가, 낫질을 하다가, 잠이 설핏 들었다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다 말고, 오솔길을 걷다가, 계곡에 앉았다가 시가 흘러나왔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받아 적기 시작했다. 시는 짧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핸드폰 메모장에 얼른 옮겨 기록해둘 수 있었다. 틈틈이 시를 붙들고 거듭 수정하는 시간은 피곤한 줄도 몰랐다. 작은 골짜기가 시로 변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고통이었다. 내 안에 그토록 퍼 올릴 그리움이 많았는지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농사를 지으니 일 근육이 붙으면서 몸이 변해갔는데, 시도 그만큼 변해갔다. 흙을 만지고 사니 시어가 더 단순해지고 투박해졌다. 밭농사가 고되긴 했지만 농사지으며 시를 쓰며 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해서 귀농 후, 두번째 시집 『산골 연가』(2015)를 출간하게 되었다. 시와 농사일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이정표였다. 도시에서 산골로 공간을 이동한 것만큼이나 시의 결도 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농사의 어려움과 산골 농부의 삶에 집중한 세번째 시집『푸른 돌밭』(2019)을 출간했다.

 

이제는 내가 짓는 게 밭농사인지 글 농사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아직 안 굶고 살아남았으니 밭농사가 나를 먹여 살린 것은 맞을 것이다. 대규모 산업농의 시대를 거슬러 내 노동에만 의존하는 나의 농사는 규모도 작고 원시적이다. 풀과 벌레가 함께 사는 농사라서 지구에 덜 미안하고, 내가 당장 굶지 않으니 만족스럽다. 딸린 식구가 없으니 가능한 일이긴 하다.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글보다는 밭을 일구는 시간이었다. 밭을 일구는 시간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다. 일이 고될수록 머릿속은 텅텅 비는 대신 몸은 육체노동에 적합하게 변했다. 머릿속이 비니 도시에서 집착했던 책읽기도 멀어졌다. 신기하게 농사철엔 지적 욕망이 사라진다. 이제 내겐 밭과 산이 책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평온해졌다. 머리로 살던 습관을 벗고 몸으로만 사니 점점 단순해져서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고스란히 온몸을 통과하면 자연의 일부인 ‘작은’ 나를 마주하게 된다. 몸에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다가 따가운 햇볕에 그을리기도 한다. 몸을 통과한 흙과 풀의 이야기가 시가 될 때 나는 큰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내 시는 촌스럽다. 농사짓고 살다보니 더 촌스러워진다. 나는 이 촌스러움이 좋다. 헐렁한 작업복에 챙이 긴 모자를 쓰면 하루가 금방 간다. 내 시는 화장기 하나 없이 점점 거칠어지는 내 얼굴을 닮아간다. 내 마음의 일렁거림이 읽는 이의 마음에 닿아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시, 오가다 마주치는 시골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를 계속 쓰고 싶을 뿐이다.

 

올해로 십년째 홀로 농사를 짓는다. 일년 농사로 일년만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다. 여느 해처럼 감자, 고추, 미니 단호박을 심고 텃밭에는 여러가지 채소를 심었다. 겨울부터 이어진 긴 가뭄으로 농사가 영 안 되는 해다. 농사가 안 되면 글 농사라도 잘 짓자고 마음먹어본다. 산골 농부로 살며 앞으로 내가 쓸 시들이 노동과 흙과 글이 하나로 뒤엉켜 경계조차 없는 곳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최정 / 시인, 농부

2022.7.1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