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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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이명박정부 교육정책의 세가지 특징

이범 / 교육평론가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은 자율과 다양성을 강조한다.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공약도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자율과 다양성을 강조하므로 얼핏 자유주의 철학에 기초한 발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교사의 자율성은 온데간데없고, 학교의 자율성만 옹호되고 있다. 학교의 운영진, 특히 사학재단의 자율성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율이란 고전적인 근대의 개념으로서, 궁극적으로 개인의 수준에 적용되는 것인데,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에서는 자율이 집단 혹은 단체의 수준에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에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무척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학제를 가지고 있다. 교과서는 검인정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소단원과 제목까지 똑같아서 국정교과서나 다름없다. 교육과정은 극히 세부적인 영역까지 ‘가르쳐야 할 것’과 ‘가르쳐서는 안될 것’이 규정되어 있다. 다른 교육선진국과 비교할 때 교과목과 교과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학생들에게 탐구와 발견의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전국 어느 학교에서나 붕어빵식 교육과 붕어빵식 평가가 이뤄진다. 제도가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교육의 다양성이 꽃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짓 자유주의적인 교육철학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 내신성적 위주의 대입제도가 발표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내신 사교육 시장의 대호황을 가져온 것도, 교육과정과 학제가 획일적이고 주입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대학입시에서는 내신성적(GPA)이 수능(SAT)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최근 SAT나 AP 학원이 증가하고 있지만) 내신성적을 위한 학원은 없다. 그 이유는 교과운영에서 교사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선진국에서 학교교육의 핵심적인 목표를 '발견과 탐구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두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과도한 분량의 교과내용을 '주입'하는 데 급급하다. 따라서 학교는 '주입 전문가'인 학원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결국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원교육을 통해 학교 성적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에는 이런 방향의 문제의식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다양성을 학교 수준에서만 묶어놓는 거짓 자유주의적 발상 때문이다. 기존의 학교 안에서 자율과 다양성을 꽃피우기 위해 어떤 체계로 관료적 통제를 철폐하고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의 자발성을 유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교를 세워 운영진에 자율성을 주면 새로운 다양성이 출현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학교를 세워봤자 새로운 다양성이 새삼스럽게 출현할 것 같지는 않다. 자사고들이 명문대 입학실적을 놓고 경쟁할 것이 분명한바, 그 교육과정이 입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짜여질 것임은 자명하다. 많은 외국어고에서 제2외국어 교육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창하게 자율성을 표방하고 있으나, 대입경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결과적으로 획일성을 강화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자율 강박증에 빠져 있는 교육정책


이명박정부 교육정책의 또다른 핵심은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단계와 2단계를 거쳐 3단계에 이르면 학생 선발이 완전히 자율화된다. 그런데 대학에 완전한 자율권을 주면 본고사가 부활되지 않겠느냐는 반문에 대하여, 이명박 당선자는 후보시절부터 "대학들이 본고사를 보지 않을 충분한 여건이 형성되었을 때 3단계 자율화를 한다"는 애매한 말로 일관했다.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자율 강박증에 빠져 있는 듯하다. 보수언론들이 노무현정부의 교육정책을 '대학에 대한 자율이냐 규제냐'라는 프레임에 가둬버린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에 자율적 권한을 줘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고, 자율화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제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당장 본고사에 대해서도 시행을 막겠다는 건지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건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학생과 학부모 들의 혼란과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을 위하여 자사고 학생 30%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정책도, 외고의 자연계반 운영을 허용하는 문제도 그렇다. 자사고와 외고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한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이관하겠다고 공언하는 한, 중앙정부 차원에서 특정한 정책내용을 관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사고에서 장학금을 전혀 주지 않아도, 이미 자율권을 부여했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 아닌가? 차라리 "완전한 자율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으나 이런저런 것들은 허용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재하겠다"라고 못박는 것이 낫다. 이것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이다.


목표와 위배되는 방법론


또한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목표와 방법 사이에 심각한 모순이 엿보인다. 예컨대 '사교육비 절반'을 지향한다지만, 구체적으로 내놓은 방법은 사교육비를 오히려 늘릴 것이 분명하다. 우선 자사고에는 그 원리상 학생 선발에 자율권을 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명문대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해 국·영·수 중심의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것이다. 따라서 자사고 입시는 그 과목들 중심의 상당한 난이도를 가진 시험이 될 것이며, 그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사교육이 팽배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후보시절 "자사고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많으면 공급을 늘리면 된다"고 가볍게 발언했지만, 이것은 공급논리만 알고 서열화논리는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 대학 정원이 수험생 숫자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대입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이것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어 좀더 상위권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사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입시 열기가 낮아질 것이라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높은 서열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일단 자사고나 특목고에 들어가고 나면 사교육비가 절감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학생들이 오히려 일반고 학생들보다 많은 사교육비를 쓴다는 것이 한국교육개발원 등의 공식적인 연구조사에 나와 있다. 입학사정관(査定官)제도 마찬가지다. 그 목표는 전국 학교들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들을 평가하여 학생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여건과 권한이 실질적으로 특목고와 자사고에만 주어진 현실에서 결국 그 제도는 변형된 고교등급제로서 기능할 우려가 크다.


새 정부, 노무현정부의 실패에서 배워라


결국 이명박정부의 교육공약은 노무현정부의 실책을 재탕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이 노무현정부 교육정책의 목적이나 취지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여건과 토양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방법론이 결과적으로 국민의 불만을 폭발시킨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은 자율이나 다양성 같은 솔깃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으나 치열하지 못한 현실인식으로 인해 매우 적절치 못한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의 실책을 비슷한 방식으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사교육업체가 자사고를 설립하거나('대교'가 추진하는 자사고가 최종설립인가를 앞두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사고·특목고에 더욱 많은 특혜를 줄 가능성(이미 김포시는 김포외고에 2년간 50%를 지원한 바 있다) 등이 감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대입 본고사가 부활하거나 자연계 논술이 본고사화할 가능성 등에 대해서 항상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감시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을 신장하고 우리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선결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2008.1.29 ⓒ 이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