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노조회계와 검찰 특활비, 대통령의 이중잣대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노조 때리기’를 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의 회계를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내비남공’(내가 쓴 돈은 비공개, 남이 쓴 돈은 공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보았다. 민간조직인 노조의 회계도 공개하라는 대통령이지만, 자신이 검찰총장 시절에 쓴 국민 세금은 한푼도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텨오고 있기 때문이다.
꽁꽁 숨겨온 검찰 특수활동비
필자는 2019년 11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사용한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예산 낭비 우려가 있는 대표적 항목으로 손꼽히는 것들이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목으로 예산을 사용하는 공공기관은 여럿 있지만 검찰의 경우는 가장 심각하다. 특수활동비는 검찰총장 등 간부들이 여러차례 ‘돈 봉투’ 돌리는 용도로 사용했다가 물의를 빚은 예산이다. 특정업무경비 역시 ‘수사기밀’이라는 이유로 한번도 사용내역이 공개된 적이 없다. 업무추진비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들은 지출증빙서류까지 공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검찰은 그것도 거부해왔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이 씀씀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은 수사‧기소를 맡고 있는 기관이지만,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그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는 행정기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행정기관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가 바로 정보공개다. 따라서 예산 정보의 공개는 검찰조직을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검찰조직은 세금을 쓰면서도 투명성에 대해서는 인식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정보공개청구에 비공개로 일관해왔고, 심지어 국회의원들에게도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철저한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지 않으면 이런 행태를 보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그 공개가 큰 의미를 갖는다. 소송의 원고는 필자이지만 소송이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와 「뉴스타파」가 협력한 권력감시 활동의 일환인 것도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소송 중에도 나타난 검찰의 은폐 행태
소송 과정에서 검찰 측이 보인 행태를 봐도 정보공개의 필요성은 더욱 강해진다. 검찰은 필자가 처음 특수활동비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을 때, 정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비공개’ 통보를 해왔다. 그런데 소송이 제기되자 말을 바꿨다. 1심에서 ‘특수활동비 집행 관련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연간 100억원 안팎의 특수활동비를 써왔으면서도 ‘집행내역이나 지출증빙자료가 없다’는 소리다. 그러다가 1심에서 일부패소하자 2심에서는 일부 자료는 존재한다고 시인하며 다시 입장을 바꿨다. 일부라도 자료가 존재하는데 ‘부존재’한다고 주장했으니 검찰은 1심에서 허위주장을 한 셈이다. 왜 이런 행태를 보였을까?
정보공개소송에서 비공개 사유에 대한 주장‧입증의 책임은 피고인 공공기관 측에 있다. 해당 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검찰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 측이 ‘정보가 부존재’한다고 주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없다’는 피고의 주장 자체가 잘못되었고 실제로 정보가 존재한다는 개연성을 원고(시민)가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이 정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행정 바깥에 있는 시민이 그것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은 있는 정보에 대해서도 ‘부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그야말로 법을 악용한 얄팍하면서도 고약한 행태이다.
임박한 검찰 특수활동비 상고심 판결
매우 어려운 소송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2022년 1월에 서울행정법원에서, 12월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판결 내용은 모두 ‘원칙적으로 공개하되 일부 개인정보나 수사와 직접 관련된 정보만 공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2심판결에 대해 상고해 현재 상고심 절차를 밟고 있다. 검찰이 상고이유서를 제출했고 필자가 답변서를 제출했으며 대법원은 법리검토에 들어갔다.
서류심사로 진행되는 상고심의 특성상 판결이 언제쯤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점이 언제가 되든 상고심 판결은 반드시 내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판결에 따라 그동안 꽁꽁 숨겨져왔던 검찰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집행과 관련된 정보가 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를 통해 검찰조직의 투명성 확보와 민주화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쓴 돈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숨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민간조직인 노조에 회계자료의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통령이자 전직 검찰총장부터 세금 사용내역을 공개하면서 다른 주체들에게도 요구해야 올바르지 않을까? 답답한 점은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이런 ‘내로남불’ 혹은 ‘내비남공’ 행태에 대해 제대로 된 보도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권력자의 잘못에 대한 언론의 침묵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하승수 / 변호사,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2023.2.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