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통령의 정치운명을 결정하는 순간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1년이 지난 시점인 지난 3월 6일 박진 외교부장관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발표했고,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는 사실도 공개되었다. 논란을 부른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부터 예견되었던 사태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일방적 항복에 가까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대법원 판결을 전면 부정하는 정부의 결정, 가해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에 대해 어떤 수단도 취할 수 없게 된 결과, 그리고 일본의 반도체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졌던 WTO 제소를 먼저 철회하겠다는 입장 등 하나하나가 주권을 가진 국가가 수행한 외교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일본과의 이러한 합의가 없다고 해서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법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일 공조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가라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본과의 군사협력이라는 더 큰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적지 않고 이것이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했지만, 이 역시 굴욕적 협상을 서두를 정도의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해석들은 오히려 이번에 제출된 해법이 우리의 국익이나 문제의 발전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근거로 보인다. 나아가 동북아 차원의 냉전적 대결구도를 강화함으로써 우리의 경제적‧안보적 리스크를 더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논리이기도 하다.
윤석열정부로서는 이번 삼일절 기념사나 강제징용 해법이 미국과 일본에 선의를 보여준 일회적 사건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그러한 기대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달리 지금 이 ‘순간’이 중장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특정 순간이 정치지도자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적지 않다.
대통령제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 많은 사례가 언급되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는 워터게이트 추문이 확산되던 1973년 11월 17일 닉슨이 기자들과의 논전 과정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I am not a crook)라는 유명한 말을 내뱉은 것이다. 이후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1974년 8월 그는 탄핵당하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자진사퇴하는 길을 택했다. 한편 시간이 더 흐른 뒤에 특정 순간과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1987년 6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연설을 하며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이 벽을 무너뜨려라”라고 촉구한 바 있다. 당시로서도 민감한 주장이기는 했지만, 이는 2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일종의 예언적 연설로 받아들여졌고 레이건에게 냉전에서 승리를 이끈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특정한 어느 순간과 대통령으로서의 운명, 대통령직에 대한 평가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될 수 있지만, 어떤 한순간의 결정이 정치지도자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더 분명한 사례가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사건 발생 7시간 만에 공개적 자리에 나와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발언한 순간이다. 당시에는 비극적 상황에 대한 대처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구조활동이 일단락된 뒤, 이 발언의 문제성에 주목하는 주장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질을 떠나 대통령의 발언은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선체 속 학생들의 상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이 발언은 통치 시스템의 오작동을 보여주는 사태로 인식되었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적인 평가는 그때 이미 내려졌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지지율에 등락이 있기는 했지만 통치체제의 비정상을 다시 확인시켜준 최순실 국정논단사건과 결합되며 2016년 촛불대항쟁을 폭발시켰다.
이번 순간들도 시간이 흐른다고 잊히지는 않을 것이며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의 운명을 결정지은 순간으로 사후에 소환될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역할이라는 의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 역할을 이처럼 쉽게 포기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고 윤석열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을 굳힐 것이다. 이미 10‧29 이태원참사 때도 국민안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는 데만 급급했던 모습을 목격한 바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정상외교 등의 이벤트로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순간의 문제성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사태가 앞으로도 반복해서 출현할 것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정치지도자로서, 특히 촛불혁명을 수행하는 국민들의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의 역사나 자기 역할에 대한 매우 부적절한 인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윤석열정부는 문제들을 가리기 위해 더 해괴한 일들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행태는 작년 방미 중 ‘바이든/날리면’ 사태 때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충북지사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는 발언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전조이다.
당장은 폭주하는 정부를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있다. 그 답답함은 조급증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급증은 윤석열정부를 향한 분노를 드러내지만, 단순한 분노 표명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재의 퇴행과 그 심각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는 일,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비전에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사이비 해결책에 매달리거나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면 쉽게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역사의 주요 고비에서 국민들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온 우리의 경험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 해결책은 시간이 흐른 후의 평가에서는 자명한 일이었다는 식의 착시효과를 만들어내지만, 정작 눈앞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혹은 등장한 직후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곤 했다.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정치적 역동성이 작동하고 있는 지금은 더 그렇다. 이렇게 보면 현재 필요한 것은 함께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을 촉발하는 일, 나아가 그 과정을 지속시키겠다는 태도와 그에 기초한 실천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해결책에 대한 충실성을 입증한 인물과 세력이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2023.3.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