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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문제, 더 길게 보아야 한다: 현 정부 대학정책을 보는 시각

윤지관

작년 7월 정부는 민생을 앞세우며 12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그 가운데 노동, 연금, 교육 부문을 3대 개혁과제로 설정했다. 그러나 집권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현 정부에는 제대로 된 개혁의지도 실현능력도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정권 자체가 민주화의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는 ‘적폐의 증식’이 될 것이라는 어두운 예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집권 초기임에도 국민 다수는 국정운영에 부정적이고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기대조차 접은 듯 보인다. 그러나 비판이나 냉소에 머물러서는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현 단계의 과제들에 대처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학문제도 그런 과제 중 하나다. 교육 부문은 이른바 ‘백년지대계’의 영역인 만큼 길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거니와, 특히 대학 구조개혁에서 이 정부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부는 기존 대학 구조개혁의 틀에서 벗어난 정책들을 전격적으로 쏟아내고 신속하게 추진해왔다. 대학에 대한 규제를 완화 혹은 철폐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기본 지향 아래 전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에 일대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의 핵심 정책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박근혜정부에서 문재인정부까지 3주기에 걸쳐 진행된 구조조정 정책의 토대인 대학기본역량진단을 폐지하고 대학인증평가를 통과한 대학들에 대해 ‘선 재정지원-후 성과평가’를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대 정책으로, 중앙에서의 하향식 접근 대신 각 지방정부에 대학 관리권을 이관하여 자체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자율은 대학에서 중요하고 또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추세, 특히 시장의 요구와 결합하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양날의 칼이다. 자칫하면 한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 즉 수도권의 세칭 일류대를 정점으로 하는 극심한 서열화를 완화해나갈 국가 차원의 개입 여지를 없애고 수요자 혹은 시장 중심으로 귀결될 위험성도 큰 것이다. 민교협, 전국교수노조, 국교련, 사교련 등 7개 교수단체가 전국교수연대회의를 결성하고 교육부의 대학정책을 ‘극단적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철회를 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미 시행에 들어간 교육부 정책이 철회될 리 만무하다는 현실론은 차치하고라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부터가 문제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대학정책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선회와 그런 흐름의 강화는 역대 정권의 일관된 방향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문재인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박근혜정부의 그것보다 더 신자유주의 쪽으로 기울었고 현재의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하의 대학문제에서 시장요소의 개입은 피할 수 없다. 관건은 신자유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라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정책적 판단이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 정부가 기존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중단하고 인증평가로 대체한 것은 중요한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정부에서 시행된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일률적인 잣대로 대학을 줄 세우고 등급에 따라 차등 조정 및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국의 모든 대학을 평가지표 경쟁으로 몰아넣었다. 대학교육을 위한 기본여건을 보는 인증평가로 그런 폐단을 없앴을 뿐 아니라 일정한 유형을 지정하는 목적사업을 줄이고 일반적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여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특성화를 추구해나갈 여지를 둔 것도 평가할 만하다. 기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대학지원 정책은 진작부터 이처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선지원 후평가 방식을 취해온 것이다.

 

지방대 정책에서도 교육부가 변화를 위한 화두를 던진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대학 구조개혁에서 지방대, 그 가운데서도 중소규모의 지방대가 집중적인 조정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역을 배려하겠다는 역대 정부의 약속이 모두 공염불에 불과함이 확연해진 상황에서 지방대 개혁과 정리를 중앙정부 아닌 지자체가 주도하게 한 것 자체는 혁신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입으로는 지방대 살리기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시장주의를 강화해온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고, 대규모 재정을 투여하되 그 행정 및 재정운영권을 광역시 및 도 단위의 지자체에 위임함으로써 근원적인 변화를 추구한 셈이다.

 

그러나 대학정책의 두가지 큰 전환이 공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것은 물론이다. 우선 일률평가를 통한 상호경쟁을 폐지하고 일반재정을 확대하는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 해도 대학인증평가를 어떻게 진행하고 사후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 제도적 정비는 미비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조정 이후 한국 대학이 어떤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이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대형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 및 대학 간 심각한 서열체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국가적 목적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일반재정지원의 확대도 이 병폐를 악화시키는 도구가 될 뿐이다. 교수연대회의의 비판처럼 ‘극단적’ 시장주의가 조장되는 경우 한국 대학의 미래는 더 암울해질 것이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제(RISE) 사업 및 글로컬대학 사업으로 이루어진 지방대 정책도 명암이 있기는 마찬가지며, 오히려 어둠이 더 짙은 편이다. 이같은 정책 전환이 충분한 준비 없이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실행에 옮겨지는 등 졸속에 따른 폐해가 예상된다. 지방의 대학들은 자율적인 혁신을 요구받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혼란에 빠지거나 지역 단위에서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 몰릴 위험이 큰 것이다. 대학정책을 시행해본 적이 없는 지자체들의 역량도 미지수지만, 창의적인 해결을 향한 노력보다 지역 내의 기득권이 강화되고 중소규모 대학들의 몰락을 방기하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도 엄연하다. 따라서 각 지자체의 논의구조에 전적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몇가지 원칙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가령 지역에 기반한 연구중심대학을 형성하되 다른 대학들과의 공유 및 협업 체제를 구축하게 한다거나 지역 중소 대학들에 대한 지원 및 공적 거버넌스의 형성, 즉 사학 공영화를 유도한다거나 하는 등이 그런 대비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학문제는 이 정권만의 책임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와도 이어진 공통의 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총체적 난맥과 역행의 징후조차 보이는 여타 부문과는 달리 교육부가 시도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 정책의 전환은 이미 시동이 걸렸다. 이 전환이 바람직한 대학체제 개편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비단 한 정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한국 대학의, 나아가서 미래사회의 전망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적어도 대학정책의 문제에서는 비판적 개입과 일정한 협치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윤지관 / 덕성여대 명예교수, 대학: 담론과 쟁점편집인

2023.4.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