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주거 불평등이 보내는 사회적 경고: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몇해 전 아르헨띠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있는 노르델따에 대형 설치류인 카피바라가 출몰했다는 외신보도가 화제였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체 카피바라가 노르델따를 점령했다”라는 내용으로 카피바라를 혁명가 ‘체 게바라’에 비유하는 사진과 글을 SNS에 공유하고, 카피바라의 점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노르델따 지역은 카피바라의 서식지인 파라나강 습지를 개간해 만든 계획도시로, 서식지에서 밀려났던 카피바라가 먹이를 찾아 다시 원래 서식지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동물들의 생태계를 침범한 인간들의 개발과 생태계 파괴 문제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카피바라의 점령에 열광한 것은 생태 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도시의 불평등이었다. 노르델따는 부유층들을 위한 계획도시로 수영장이 딸린 집들이 즐비하다. 바로 옆 기존 마을과 분리하기 위해 3m 높이의 콘크리트 담장을 쌓아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를 구축해 그들만의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도시공간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거지 분리 형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게이티드 커뮤니티로 등장한 단지는 2002년 준공된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 주상복합 아파트이다. 입주민 외 출입이 통제되며 모든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이 아파트 내부에서 원스톱으로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가장 큰 비닐하우스 판자촌인 구룡마을에서 바라다보이는 타워팰리스의 대비적인 모습은 같은 도시에서 나타나는 공간의 양극화와 주거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최근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분양 광고 문구로 논란이 된 반포의 주상복합을 비롯한 고급 주상복합 단지들은 ‘프라이빗한 주거공간’을 강조하며 주거지를 계층적으로 분리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다. 한정된 땅과 그 위에 지어지는 집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의 수호 논리가 소수에 의한 더 많은 독점과 공간의 분리,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주거 불평등은 그 자체가 점점 재난의 이유가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폭우로 일가족이 물에 잠긴 반지하 집에서 사망하자 시민들은 ‘불평등이 재난이다’라며 탄식했다. 기후재난의 위험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따라 아래로 흘러 약한 곳을 덮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절규였다. 1년이 지난 현재 폭우를 대비한 반지하 주택의 침수방지시설 설치 실적이 저조하다는 기사에서는 “집값 때문에 세입자의 위험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지하 주택에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건물 소유주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침수위험주택으로 보이면 집값이 떨어질까봐 설치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물막이판 설치 등은 임시방편일 뿐 온전한 대책이 못 되지만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까지 했던 1년 전 서울시의 호기롭던 기세도 집값 수호라는 부동산공화국의 주문에는 맥을 못 추고 있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친다’는 건설사의 노골적인 표현은 이미 집값 수호라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반지하 재난참사 이후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러한 주거형태가 지속되는 것은 저소득층이 도심생활권에 머물 수 있는 적정하고 저렴한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2019)이 화제가 된 이후 2020년부터 지하 거주가구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에 포함해 공공임대주택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정작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 물량은 턱없이 부족해 신청만 할 수 있을 뿐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높아졌는데 정부는 올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원이나 삭감했다(전년 대비 30% 감액).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쪽방 거주가구 등 주거취약계층에 보증금 대출과 이사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하며 약자복지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집(공공임대)을 빼앗고 빚을 지워 주거 안정성이 매우 낮은 민간 전‧월세 주택으로 내모는 격이다.
공공임대주택 예산 중 가장 크게 감액된 유형이 매입임대주택이다(3조원 삭감). 매입임대주택은 도심 내에 건설형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공공택지가 부족한 조건에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기존 도심생활권 내 다가구주택 등을 매입해 저소득층에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매입임대주택은 기후위기 시대에 재난으로 드러나는 주거 불평등의 현실을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주거정책이다. 그런데 이 예산을 3조원이나 대폭 삭감하더니 최근에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시민들의 공공매입 요구를 기존 매입임대주택 예산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예산증액 없는 피해주택 공공매입은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반지하, 쪽방 거주민 등 주거안정이 절실한 이들을 서로 불행을 증명하며 뺏고 뺏기는 ‘불행 경쟁’에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당장 추경을 통한 공공임대주택 예산확대와 공급확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반지하, 고시원 등에서의 재난참사와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의 잇따른 죽음이 우리 사회에 재난경보를 울리고 있다. 더는 내버려두면 안 된다며, 이 선을 넘으면 불평등의 재난이 참사로 번진다는 신호이다. “다주택자 세금 완화가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는 서민 정책”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의 인식에서 이미 예견된 사회적 재난참사이기도 했다. 그들의 소리 없는 죽음이 강렬한 사회적 재난경보를 울리고 있는데, 집값에 저당 잡힌 우리는 이 경계경보를 제대로 듣고 있을까?
집은 언제나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지만 점점 더 생사를 가르는 요소가 되고 있다. 높은 주거비와 전‧월세 부담으로 세입자들의 집은 짐이 되었고, 가난한 이들의 집은 기후재난의 흉기가 되었으며, 전세사기, 깡통전세로 집이 지옥이 되고 있다. 이들이 울리는 사회적 재난경보에 주목하여 집으로 인한 더이상의 고통과 절망을 막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집 걱정과 불안을 개인의 임금소득 또는 대출상품으로 해결하거나 열악한 주거로 인한 고통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각자의 문제로 치부하는 개인주의 생존전략에서 벗어나자. 집에 저당 잡힌 삶이 아니라 살 만한 집에 살 권리, 주거권을 선언하며 요구하자! “내놔라, 공공임대! 팔지 마, 공공의 땅! 늘려라, 세입자 권리!”
이원호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2023.6.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