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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보호한다는 ‘보호출산제’의 환영

소라미

우리 사회는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이 2236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출생미신고 아동이 영아살해, 유기, 불법입양, 아동매매 사건의 범죄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이 문명국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참혹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었다. 부모에게만 출생신고를 맡겨두어 구멍 난 출생신고 제도하에서 예견되었던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한 것이다. 특히 이번 출생미신고 아동 관련 첫 보도였던, 냉장고에서 2구의 시체로 발견된 아동살해 사건은 여론을 들끓게 했고 그 결과 국회는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출생통보제란 의료기관에 출생통보 의무를 부과하여 병원에서 출생한 아동이 출생신고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제도이다. 지난 십여년간 민간 아동인권옹호단체와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출생통보제 도입을 주장해왔으나 발의법안은 번번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출생통보제가 뒤늦게라도 도입된 것은 반갑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정부는 보완된 출생신고 제도를 헐어 다시 구멍을 내겠다고 나서 아동인권 현장을 시름에 잠기게 했다. 출생통보제를 시행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보호출산 신청자에게는 상담과 의료지원을 하는 ‘보호출산제’를 병행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편 지난 7월 17일 국회는 영아살해를 일반 살인죄보다 약하게 처벌해온 영아살해죄와 유기죄를 폐기했다. 보호출산제의 도입과 동시에 추진된 영아살해죄 처벌강화가 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여성들이여, 임신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이를 낳아라, 그러면 국가가 출산 사실을 비밀에 부쳐주고 아이는 알아서 입양 보내주겠노라. 다만 낙태(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아직까지 임신중지에 대한 상담과 지원 등에 관한 법안은 논의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도 영아살해도 안 된다!'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해서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여성도 아동도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꿈틀거린다.

 

과연 보호출산제는 여성을 보호하는 제도인가. 이번 전수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아동살해 및 유기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수조사 결과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에서 친모는 임신중지 비용을 부담하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워 두 자녀를 출산하자마자 살해했다고 말했다. ‘거제 유령 아동’ 살해혐의로 구속된 부부는 아이 키울 형편이 안 돼서 범행에 이르렀다고 했으며,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친모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홀로 임신·출산을 하게 되었다고, 또한 출산한 아동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도한 20대 친모는 친부가 누군지도 모르고 여건상 아이를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아동을 암매장한 40대 친모는 남편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던 중이었고, 인터넷을 통해 불법입양을 보낸 30대 친모도 경제적인 이유를 언급했다. 생후 1일 된 딸을 텃밭에 암매장한 40대 친모는 남편과 별거하며 홀로 아들을 양육하고 있던 중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사건 대부분이 경제적 어려움, 원치 않는 임신, 남편 또는 연인과 헤어져 홀로 임신과 출산을 한 경우로 사회경제적으로 궁박한 상황에서 발생되었다. 이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보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당시, 판결 이유에 명시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한 여성의 임신중지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결과 여성은 영아유기죄, 영아살해죄, 사체유기죄, 아동매매죄를 행한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여성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몰래 출산할 권리의 보장이 아니라 임신의 유지와 종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보편적인 지원체계 없이 당장 보호출산제를 성급하게 도입한다면 출생신고를 기피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까지 ‘익명’ 출산을 하도록 유도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 대한 상담과 정보 제공을 위한 핫라인과 상담체계를 공적으로 구축하고,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먹는 약의 시판을 허용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프랑스, 독일, 영국의 경우 이미 수십년 전부터 임신중지에 필요한 의료비용 전액을 의료보험에서 처리해왔을 뿐만 아니라, 임신과 출산 및 산후조리까지 전과정에 드는 비용 전액을 국가가 무상으로 지원해왔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함으로써 출산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일 초저출생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공적인 지원은 100만원가량의 국민행복카드가 전부이다.

 

보호출산제는 아동인권 또한 심각하게 침해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우리 정부에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할 것”과 더불어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은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보호출산제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아동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와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보호출산제도가 다른 대책에 우선하여 시행될 경우 ‘고아’를 양산하여 아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입양아동’을 양산하여 원가정에서 양육될 아동의 권리 또한 침해하게 된다.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간이하고 신속한 입양절차를 위해 친생부모가 있는 아동까지 ‘고아’ 호적으로 해외입양을 보냈던 관행 때문에 대다수 해외입양인들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친생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원초적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다. 수백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자신의 입양기록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고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를 신청한 배경이기도 하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로 한국사회에서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과 병원의 거부 등으로 적절한 시기에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가 영아살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동의 사망으로 촉발된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분을 단순하게 익명출산과 비밀입양을 보장하는 것으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오히려 정상성의 굴레 밖에서 이루어진 임신과 출산은 은폐되어야 한다는 차별과 낙인을 강화시킨다.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여성의 신분세탁법이라는 비아냥과 혐오가 유포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보호출산제가 아니다. 임신·출산에 대한 지원센터를 만들어 제대로 된 상담과 지원을 연계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임신중지 지원 제도가 도입된다면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고 상정하는 상황의 대부분은 해소될 것이다.

 

소라미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

2023.8.8.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