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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역사의 맥락에서 생각하는 방사성 오염수 방류

우동현

1974년 봄,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한국전력주식회사는 장차 건설될 원자력발전소 3호기가 초래할 주변 지역의 환경오염에 관한 보고서를 한국의 원자력 업무를 주관하는 과학기술처와 주고받았다. 「원자력발전소 설치에 따른 수산물 오염원 조사」(국가기록원 관리번호: BA0137869)라는 50여면 문서철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금은 경주의 동쪽인 월성에 자리 잡게 되었지만, 원래 원전 3호기가 들어설 예정지는 창원이나 거제였다. 문제는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이 지역 수산물이 한미 패류위생협정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이다. 방사성물질을 머금은 원전 오염수가 창원 앞바다로 배출될 텐데, 이를 빌미로 미국이 더이상 한국의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는다면?

 

보고서를 읽고 나면 한전과 정부(과학기술처) 모두 원자력발전이 일으킬 환경오염에 관한 어떠한 우려도 손쉽게 기각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일례로 한전은 미국과 한국의 관련 법규를 대거 인용하며 원전에서 배출되는 “액체 방사능폐기물의 농도는 음식물 중의 방사능 농도보다도 낮다”고 밝혔다. 정말 그러했을까?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한전의 당당함이 미심쩍었고, 보고서를 검토한 과학기술처 관료-과학자들은 방사성물질의 방출을 감소시키는 “시설을 설치토록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전에 발송된 검토의견서 최종본에서 해당 권고는 삭제됐다. 좌우간 보고서가 나온 지 2주 뒤 인도의 핵실험으로 캐나다에서 중수로를 도입하려던 박정희정부의 기획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의 전공인 핵역사(nuclear history)는 원자가 분열되거나 융합될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관련된 과거를 탐구하는 역사학의 하위분야이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2023)가 참조한 미국 핵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 등은 모두 핵역사의 연구 주제이다. 최형섭 교수가 탁월하게 번역한 오펜하이머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0)는 핵과학자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핵역사 저작이다. 내가 번역한 『플루토피아』(케이트 브라운 지음, 푸른역사 2021)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케이트 브라운 지음, 푸른역사 2020) 『저주받은 원자』(제이콥 햄블린 지음, 너머북스 2022)도 모두 환경사·도시사·외교사를 아우르는 핵역사의 수작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우리 사회는 핵역사에 무감하고 무관심하다. 물론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1939년 핵분열 현상이 학술적으로 발표된 이래 핵기술은 과학자·전문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군사적이든 ‘평화적’ 목적이든 간에 핵기술은 시민사회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개발되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의 경쟁적 핵개발을 비교사적 관점으로 풀어낸 『플루토피아』가 보여주듯 비밀로 가득했던 냉전기 핵역사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평화적 핵기술’와 ‘평화적인 원자’라는 명분을 내걸고 국제정치적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동시에 각국 정부는 자국의 시민과 인민을 대상으로 핵기술의 긍정적인 면모만을 부각하는 선전전을 펼쳤다. 미국이 ‘평화적 핵기술’을 이용해온 역사를 담은 책 『저주받은 원자』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 계획이 수소폭탄 실험의 지구적 여파를 감추기 위해 제안되었음을 밝힌다.

 

물론 모두가 핵역사를 연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역사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의 맥락을 알 수 없고, 나아가 그러한 일이 언제든 다시 발생하는 우울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핵기술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핵역사에 대한 팽배한 무관심을 생각할 때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은 처음부터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2023년 8월 24일, 일본의 키시다정부는 130만톤 이상의 후꾸시마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방류하기 시작했다. 방류 결정이 난 2021년 4월 이후 2년여 만의 일이다. 그사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고, 결국 삼중수소(트리튬)를 머금은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별문제 없이 흐르게 된 것이다. (트리튬이 인체, 특히 배아와 태아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내가 번역하고 조만간 인터넷에 공개될 아르준 마키자니Arjun Makhijani 박사의 신작 『트리튬 위험 탐색하기』Exploring Tritium Dangers를 참조하라.)

 

이번 방류를 두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용한 정계와 언론의 입장은 크게 두편으로 나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해 핵과학 및 보건물리학의 권위자들은 처리과정을 거친 오염수를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 방류하면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이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오염수는 아무리 희석한다 해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과학의 언어’는 상충했으나 친방류 진영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인류는 핵재난의 폐기물을 다시금 자연으로 배출한다는 선택을 내렸다. 이번 결정에서 어떤 ‘과학’이 옳았는가는 먼 미래에만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한 보고서로 돌아가보자. 이 보고서에 적힌 ‘과학’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원전은 안전하고 유익하며 주변 생태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보고서는 방사성물질을 머금었을 수도 있는 원전 배출수가 “조개류, 새우, 도미 등” 해양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적고 있다.

 

후꾸시마 오염수뿐만 아니라 중수(듀테륨)를 냉각재와 감속재로 쓰는 원자로인 중수로에서는 많은 양의 트리튬이 생성된다. 그러나 트리튬과 유기체의 결합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트리튬이 배아와 태아에 기형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이 ‘과학’이 세를 얻는 미래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우동현 /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조교수,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겸임교수

2023.9.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