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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논의인가?: 양당간의 밀실합의를 경계한다

윤영상

10월 6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이하 공론조사) 결과보고서 발간식을 개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 정개특위 위원들은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공론조사의 결과가 국민의힘 당론과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론조사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일정 기간 동안의 숙의(熟議)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참가자들이 학습과 토론을 통해 깊이있는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에 형식적 다수결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정개특위는 지난 4월 국회전원위원회의 토론 결과가 선거제도 개편으로 이어지지 못하자, 국회의원들이 아닌 유권자들의 공론조사를 통해 선거제도 개편의 방향을 잡고자 하였다. 정개특위는 5월에 세차례(숙의 전-숙의 도중-숙의 후)에 걸쳐 총 469명의 유권자참여단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지역구 의원 수는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좋다” “국회의원 수는 지금 이대로 또는 늘리는 것이 좋다”는 항목에서 처음에는 각 27%, 31%였던 찬성 의견이 나중에는 70%, 62%로 바뀌는 놀라운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금 이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도 찬성 의견이 14%에서 24%로 늘어났다. 피상적인 여론조사 결과나 대다수 주류 언론의 시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 6일 행사에 불참한 것은 그런 공론조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인 셈이다.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가들이나 국민들의 의견과는 달리 거대정당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쟁점이 형성되고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1987년 민주화 이후 법으로 정한 시간 내에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경우는 거의 없었고, 선거가 임박해서야 거대정당들 간 밀실담합을 통해 통과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이런 상황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2년과 2020년이었다. 2002년에는 민주노동당의 1인 1표제 비례대표 선출방식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認容)되면서 1인 2표제가 도입되었다. 소수정당이 헌법을 이용해 비례대표 선출방식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 결과 2004년 총선에서 여느 때와는 달리 정치 신인들이 대거 국회에 진입하게 되었고, 민주노동당이라는 소수정당이 10석을 획득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5당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비등하자 연동형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적극 검토하면서, 비례대표 확대 및 의원정수 문제 등에서 정개특위에 따른다는 내용을 포함한 6개 항목에 합의한다. 2002년 선거법 개정 이후 가장 큰 정치개혁 입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당내 반발을 이유로 합의를 거부하면서 이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및 비례대표제 확대 반대, 소선거구제 고수 입장을 밝히며, 4당의 합의가 이루어져 연동형 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위성정당 창당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결국 2020년 국회의원 선거는 여야 합의가 아닌 다수결로 결정된 선거제도에 따라 실시되었고,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과 그에 맞선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사태로 얼룩진다. 정치개혁이 아닌 심각한 정치후퇴가 발생했던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은 지금도 그때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고 소선거구제를 고수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의 비례의석 확대, 국회 의원정수 확대 의견에 맞불을 놓기 위해 국민의힘은 국회를 비판하는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국회 의원정수를 30석까지 축소하자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발언은 사실상 기존 논의의 성과를 무력화시키려는 ‘뻥카’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 결과 2024년 국회의원 총선을 둘러싼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법정시한인 4월 10일을 6개월이나 훌쩍 넘기고 있다. 그동안 △소선거구제+(권역)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병립형 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었지만 여야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정치개혁과 발전이라는 명분보다 거대양당 지도부의 선거전략과 의석확보가 더 중요했고 그 셈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최근 여야간 밀실담합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는 9월 1일 거대양당의 의원총회에서 소선거구제와 3개 권역(북부, 중부, 남부) 비례대표제에 대한 공감대가 공개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 선출방식이다. 국민의힘은 거대정당에 불리한 연동형을 반대하고, 지역구 당선자 수와 관계없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하는 병립형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자 수와 정당득표율을 연동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준)연동형을 주장하면서 정치교체의 명분을 견지하고 있다.

 

만약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현재 입장을 고수한다면 2020년 통과된 선거법에 따라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선거제도 개편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뻔하며, 자칫 2020년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고 두 당에 대한 반발 속에 강력한 제3세력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두 당은 서로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기하고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할 경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정치개혁 후퇴라는 비판과 정치교체 공약의 포기라는 여론의 반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좋아하는 퇴행적 합의는 가능하겠지만, 정치교체라는 미래 비전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현행과 유사하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준연동형과 병립형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합의하되 위성정당에 대한 반대를 어떤 형태로든 명문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두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혼합형 권역 비례대표제는 무늬만 준연동형이지 실질적으로 군소정당이 혜택을 입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정당에게 돌아갈 분배장벽(봉쇄조항)이 높아지거나 나눌 의석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북부·중부·남부로 구분되는 3개의 권역은 겉으로는 지역소멸 방지, 지역균형 발전을 꾀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역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초점이 두어져 있다는 점이다. 지역적 기반이 약한 군소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을 수 있다. 지역정당을 인정하는 정당법 개정도 없는 상태에서 이와 같은 3권역 비례대표제는 형식적으로는 위성정당을 반대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유사 위성정당들이 편법적으로 등장하는 사태를 조장할 가능성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런 우려도 국민의힘이 준연동형을 포함한 (권역)혼합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였을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2024년 국회의원선거는 2020년을 능가하는 최악의 혼돈상황에서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윤영상 /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

2023.10.10.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