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재정건전성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2024년 예산전쟁의 시작
2024년 예산전쟁이 시작되었다. 정부 예산안은 9월 3일에 이미 제출되었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예산안이 제출된 지 두달이 지난 후에 비로소 열리게 되었다. 이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중요한 기능인 예산안 심사를 미루다 결국 쫓기듯 처리하게 되는 것은 몹시 유감이다. 헌법이 정한 예산안 통과기일인 12월 2일만이라도 지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2024년 예산안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재정건전성과 재정책임성을 둘 다 놓친 미흡한 예산안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예산의 총지출 규모가 전년보다 2.8% 증가해 역대 최저 지출증가율을 기록했으며,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출증가율만으로는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기 어렵다. 예산 총수입은 2.2% 줄어들어 결론적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5% 많다. 재정건전성은 악화된 것이다.
이렇게 총수입과 총지출이 5%나 벌어진 것은 문재인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위해 적극적 재정지출을 선언했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국가채무도 61.8조원이 증가한 1,196조원으로 늘어나며 국가채무를 늘렸다는 전 정부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비판이 무색해졌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2024년 GDP 대비 재정적자는 3.9%로, 재정적자 3% 이내를 유지하겠다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국가채무도 증가한 예산안이다.
둘째,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예산안이다. 지난 9월 18일 기획재정부는 2023년 국세수입의 심각한 결손이 예상되자 ‘2023년 국세수입 재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3월부터 세수 감소가 지적되고 있었지만 “지난해 세수가 ‘상고하저’(상반기 세수가 하반기보다 좋음)를 보인 만큼, 올해 상반기가 전년 대비로 굉장히 어려웠지만 하반기는 크게 나쁘지 않”은 ‘상저하고’(상반기 세수보다 하반기가 좋음) 상황임을 주장하며 결손을 부인하던 정부가 비로소 세수 감소를 인정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재추계 결과에 따르면 올해 걷힐 세수 예상값은 기존 전망보다 59.1조원 감소되는데, 문제는 이마저도 8월 말 세수 기준이며 연말까지 상황이 개선되리라는 기대치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세수 감소를 가리키는 추세선은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그 폭이 더 커지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11월 현재, 호전될 기미는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의 세수 감소는 대부분 작년 경기의 결과라는 것이다. 작년 영업결과를 토대로 한 법인세, 작년 부동산거래를 기준으로 한 양도소득세 등 본격적인 경기불황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세수가 감소하고 있다. 올해 경기불황과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반영된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정부의 세수 감소가 최대 89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불황의 정도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매년 8월 실시되는 법인세 중간예납은 내년 세수 감소의 정도를 예상할 수 있는 지표이다. 작년 7.1조원을 납부한 바 있던 삼성전자의 중간예납액이 올해는 2,412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년 예산안의 총수입은 올해 예산 수준에서 겨우 2.2%만 줄어든다. 예견된 미래와 달리 매우 낙관적인 예산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올초에 전망하던 ‘상저하고’를 연장한 것에 불과한 ‘올저내고’(올해는 저성장이지만 내년에는 고성장)라는 단순한 낙관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셋째, 이 예산안으로는 지자체의 재정절벽 사태가 우려된다. 중앙정부는 내국세의 40%가량을 지방재정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원한다. 이는 국세가 80%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제도로,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지원재정은 (보조금까지 포함하여) 지방재정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교부세 이외에도 부가세의 25%를 지원하는 지방소비세, 중앙소득세와 연동된 지방소득세 등 파생적인 세수 감소 제도가 있다. 모두 합하여 18조원에 이른다는 것이 나라살림연구소의 추정이다.
그런데 세수 감소로 지방에 지원되는 재정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지원을 전제로 지출되던 지방재정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상황이 심각한 곳들은 재량예산의 30% 이상이 줄어들기도 하며, 지방의 각종 사업과 행정서비스는 위기를 맞았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정부는 세수 감소가 있더라도 그해에는 일단 지원재정을 지급하고 결산 후 다음 해부터 조금씩 분산해서 분담하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러한 충격완화 조치 없이 당장 교부금 규모를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중앙정부는 이를 지출구조조정 25조원에 포함시켜 설명하고 있다. R&D분야의 예산이 5.2조원이 줄어들고, 지방교부금이 15조원 이상 축소된다. 지방도 정부다. 지방정부의 재정절벽은 그들 탓이 아니다. 결국 2024년 예산안은 사상 초유의 세수 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적자, 그로 인한 채무증대로 설명할 수 있으며 지방과 R&D를 희생한 재정확대로 볼 수 있다.
재정을 운용하다보면 적자를 볼 수도 있고 채무가 증가할 수도 있다. 국가 재정은 소득 재분배를 통해 격차를 완화하고 복지를 제공하며, 자원 재분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국가시스템을 유지하고, 경기 조절 기능을 통해 경제위기에 대비하거나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것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다르다.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정부 기능이 지속 가능한 국가운영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재정건전성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며, 목표는 지속 가능한 재정과 국가운영이 되어야 한다. 국가의 흥망이 결정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다. 2024년 예산전쟁이 주목된다.
정창수 / 나라살림연구소장, 조세재정포럼 이사
2023.11.7.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