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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생각하는 21세기 인권담론



조효제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세계인권선언—공식 명칭은 ‘보편인권선언’—의 초안을 만들기 시작했던 1947년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인류학회(AAA)에서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른바 ‘보편 인권’이 서구의 개인 권리와 재산권에 기반했고, 비서구권의 문화를 열등시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의도를 새로운 형식으로 대변할 우려가 크다는 비판이었다. 보편 인권이 과연 ‘모든’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가? 이 사건은 주류 인권 역사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현대 인권의 초기부터 보편 인권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1999년 미국인류학회는 기존의 입장을 대폭 수정했다. 국제인권법의 보편 인권 개념을 수용하되, 그것과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인권 해석과 투쟁이 교차하는 경계면에서 나타나는 현장의 인권 상황에 대처하자고 선언한 것이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상이성’을 인정하고, 그러한 차이를 이유로 인간에 폭력을 가하는 모든 움직임에 “저항하고 반대”해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미국인류학회는 2020년에 발표한 성명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동의한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그것의 인식론적 토대를 대폭 확장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권은 법이나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어떤 법규범이든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국가나 권위체가 위에서 아래로 인권을 일방적으로 부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 권리와 집단 권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권리와 의무가 긴밀하게 연관되어야 한다, 인간은 비인간 존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인권의 보편성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고) 권리의 맥락적 상대성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인류학계의 이런 움직임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 확산된 오늘의 지적 풍토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도, 불의한 권력 때문에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실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려는 모색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론과 실제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려는 제안이라고 보면 된다. 국제법, 국내법, 제도 중심의 ‘납작한’ 인권담론이 아니라, 역사성과 맥락성과 현장성과 당사자성을 최대한 고려한 ‘두툼한’ 인권담론을 만들자는 것이다. 학교 인권부터 젠더 인권까지, 북한 인권부터 팔레스타인 인권까지, 인류학적인 ‘두툼한’ 담론의 렌즈로 바라볼 때 흑백 양자택일의 정답 맞히기식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풍부한 가능성이 열린다.


세계인권선언은 75년 전에 만들어진 문헌이어서 오늘의 눈으로 보면 시대적 한계가 뚜렷하다. 몰역사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을 상정해놓고 보편 인권의 각 조항들을 ‘제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순진함, 근대 국민국가-산업사회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모습이 모든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가정한 실수(토착 원주민이나 무국적자는 고려 대상에서 빠지기 쉽다),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양성평등을 내세웠지만 복잡한 젠더의 특성과 섹슈얼리티 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 인간사회와 생태환경을 분리하여 후자를 인권의 문법에 반영하지 못한 공백 지점 등 간단히만 짚어봐도 부족한 측면이 많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의 시대적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선언에서 천명한 인간 존엄성 원칙에 대한 비타협적이고 단호한 태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세상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방향성의 제시는 우리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그런 것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상상해보면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세계인권선언의 한계와 허점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현시대의 조건에 맞춰 건설적으로 채워나가고, 새로운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인권담론을 21세기에 맞춰 재구성할 수 있는 단서를 세계인권선언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은연중에 법률적으로 인권을 상상해온 방식, 개별 권리 중심의 문제해결식 인권관, 당대적 감수성만 강조하고 역사적 감수성을 놓치는 관성, 직접적 가해-피해만 중시하고 구조적 폭력을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를 넘어서야 한다. 이렇게 시각을 전환하고 다시 세계인권선언을 읽으면 ‘전문’과 1·2조, 그리고 28·29·30조가 갑자기 생명력을 띠고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파트는 개별 권리들을 다루지 않고 인권의 역사적 배경, 철학적·실천적 토대, 교조적이지 않게 인권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다루는 부분이다. 인류학자들이 오랜 고민 끝에 도달한 지점을 이미 암시해놓은 부분이기도 하다.


두가지 예만 들어보겠다. 2조 차별금지 조항의 앞부분에서는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다. 그러나 뒷부분에서는 독립국가의 지위가 없는 지역의 주민이라 해도 절대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식민지배 (또는 그와 유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차별금지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는가? 만일 국제사회가 이러한 피식민 상태에 근거한 차별금지를 엄격히 적용해 이스라엘이 점령지역 주민들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제재를 가했다면 오늘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토록 참혹하게 말살당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28조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복지, 평화, 국제협력, 더 나아가 최근의 기후위기 등 세상의 구조와 시스템이 잘 돌아가야지만 개별 인권이 보장될 수 있고, 그런 좋은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 곧 인권이라는 뜻이다.


세계인권선언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인권담론 자체를 21세기 현실에 비추어 다시금 상상하고 구성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특히 인권을 옹호하고 지향하는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노력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의 존엄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굳게 지키면서, 인권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기존의 작동방식을 재검토할 줄 아는 지성적·실천적 용기가 세계인권선언 75주년 기념일의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효제 / 성공회대 교수, 한국인권학회장

2023.12.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