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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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대학서열 해소는 국가존망의 문제다

윤지관

대학서열 해소가 국가존망의 문제라니! 다소 과격한 제목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실은 대학문제연구소가 지난 5월 국회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정책토론회 발제문을 준비하던 중 문득 천둥처럼 내 머릿속을 울리고 간 문장이다. ‘대학정책의 기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의 이 정책토론회에서 나는 기조발표를 맡았다. 연구소가 이 토론회를 기획한 것은 총선 직후였다. 선거 내내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았고 야당에게 압승을 안겨준 이 민의를 살리고자 하는 취지였다. 만약 국정의 전반적인 기조가 바뀐다면 대학정책에서 그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연구소에서든 다른 진보적인 교육단체에서든 대안으로 삼을 만한 대학정책의 기조라면 그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주도로 이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극단적 시장주의 편향을 벗어나 공공성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에 입각하여 구체안들을 정리하던 나는 어떤 당혹스러운 의문에 휩싸였다. 우선 현 정부의 국정기조가 바뀔지부터가 극히 의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압도적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과거 집권 시에 시행하던 대학정책이 어떠했는지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사실 시장주의적 대학정책 기조는 1995년 김영삼정부의 ‘5·31 교육개혁’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문제의 최대 현안인 대학구조조정에 관한 한 문재인정부가 박근혜정부보다 더 시장주의에 기운 정책노선을 채택했으니 말이다. 그 결과는 누구나 아는 바다. 서울 중심의 대학서열체제는 더 공고해지고 지방대의 대규모 폐교사태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대학 관련 공약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고작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 거점 국립대들을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통해 이른바 스카이(SKY) 못지않은 일류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공약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은 대학문제를 웬만큼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알 일이다. 다른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애초에 그런 지원은 고등교육 예산상 감당하기 불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약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결국 한국 대학의 병통인 서열체제에 기반한 일류대 중심주의를 그 이념적 토대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기획은 상위 5% 미만에게만 허용되던 최상위권 대학 진입의 문을 다소간 확대하겠다는 발상과 맺어져 있다. 병목현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일류대 입학을 지상목표로 삼는 사회풍토를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것이다. 야당조차 이렇다면 대학정책의 기조를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막막한 심정에 사로잡히던 순간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통인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해묵은 명제가 뇌리를 스쳤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이 문제가 핵심적인 정치의제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과 함께.


왜 이것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과제일 수 있는가?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추세에 주목한 저명한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대로면 “대한민국이 인구소멸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언명하여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저출생은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가임여성 한명당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이 0.7명대의 위험수준에 이른 그야말로 초-초저출생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저출생의 요인은 한두가지가 아닐 터이나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의 가파른 출산율 저하가 극심한 경쟁주의 풍토와 결합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법하다. 그리고 서울 소재 일류대를 꼭짓점으로 하는 대학서열체제는 한국의 공교육을 입시 위주로 왜곡시키고 사교육을 비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왔다. 가속되는 저출생 추세는 그런 풍토를 부추겨온 사회 전체가 존망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위험신호다.


지난 20년 가까이 정부가 저출생 문제에 대한 대책을 앞세워 약 380조에 달하는 엄청난 국고를 쏟아부었음에도 왜 이같은 현상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악화하고 있는가? 결혼 및 가족관의 변화라든가 경제적 여건이나 보육의 과중한 부담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극심한 경쟁 위주의 사회구조 자체가 새로운 세대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부적합한 환경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의 인구정책 실패는 과도한 입시경쟁의 원천인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뒷받침해온 대학정책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불가피해졌지만 역으로 그 감소 자체가 일류대 중심의 대학서열체제의 소산임을 직시해야 한다. 대학정책의 기조를 바꾸려면 바로 이 체제에 대한 대폭 개선을 목표로 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간의 경쟁을 통한 차등 및 선별지원 방식을 폐지하고 상위권 대학에 집중된 정부재정지원을 균형있게 조정해야 한다. 아울러 수도권 소재 상위권 대형 대학들은 과도한 학부정원을 줄여서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으로 전환해나가야 하고, 지역에 필요한 지방사립대들은 정부지원을 통해 공영화하여 지역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중하위층 출신 청년들이 주로 재학하는 전문대를 비롯한 기술교육 중심의 하위권 대학들의 등록금은 정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어쩌면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조차 대학정책의 기조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부터가 부족해 보인다.


대학서열체제 문제는 교육의 사안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존속을 위한 변화의 고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물론 시장주의에 매몰된 교육부에 기대할 일은 아닌 것이 지금과 같은 교육부라면 차라리 폐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출생과 인구감소 문제를 국가위기의 차원에서 다루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이 일을 떠맡을 것인가? 그저 첩첩산중에서 넘어야 할 산들을 올려다보며 한숨짓는 보행자처럼 망연해진 나는 기조발표문 작성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5월로 예정되었던 국회 정책토론회는 제22대 원 구성이 끝나는 6월 이후로 연기되었다. 대학서열체제 해소라는 해묵은, 그렇지만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 앞에 선 나의 곤경도 당분간은 더 지속될 듯하다. 


윤지관 / 대학문제연구소장, 덕성여대 명예교수

2024.6.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