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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베니스: 아트 비엔날레의 역할

조주현

유서 깊은 건축물, 일렁이는 물결, 굽이굽이 흐르는 낭만적인 운하의 정취로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지중해의 섬 베니스는 2년에 한번 전세계 미술인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은다. 섬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세계 미술인들의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시이다. 1895년에 시작되어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있는 비엔날레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130년의 시간 동안 근대성을 향한 열망과 그것을 벗어나고자 했던 긴장 속에서 전쟁과 문화 식민주의, 정치적 저항의 바람,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난 인류학적 사건들에 반응하며 현재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예술계의 지표 역할을 해왔다.


이 경이로운 섬 베니스는 500년 전 바다 위에 도시를 세운다는 기발한 생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갯벌 위에 수백만개의 말뚝을 박아 만든 118개의 섬과 150여개의 운하로 이루어진 이 수상도시는 환경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는 인류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증거이다. 그러나 얕은 석호 한가운데에 지어져 만조와 아드리아해의 폭풍 해일에 노출된 베니스는 항상 악천후와 씨름해야 했다. 해수면이 계속 상승함에 따라 점점 심각해지는 홍수와 극단적인 기상현상으로 위태롭게 가라앉고 있는 이곳은 현재 기후 비상사태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러한 위태로움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주간인 4월 중순에 특히 두드러졌는데, 이 기간 동안 기온이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치고, 몬순과 같은 폭우가 쏟아지고, 한동안 수상버스가 중단될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희망과 절망, 해결책과 도전, 가라앉는 것과 구원하는 것 사이의 긴장 속에서 베니스의 유서 깊은 아트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급진적으로 예술계와 지역사회의 연대를 모색한다. 올해 비엔날레 개막과 동시에 기후변화와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 예술계와 유엔을 연결하는 중요한 새로운 이니셔티브가 ‘2024 희망포럼’에서 출범했다. ‘기후행동을 위한 예술헌장’(ACCA)을 중심으로 하는 이 이니셔티브는 시각예술 분야가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둥임을 확인시켰다. 이 예술헌장에 의해 유엔의 193개 회원국 내에서 시각예술 부문이 유엔 테이블에 한 자리를 부여받아 의미있는 환경 행동을 구현하기 위해 수반되는 모든 정치적 결정, 인프라 접근, 영향력 등에 관여하게 된다.


이처럼 예술이 기후전쟁의 중심이 되고, 협업과 실천적 연대의 장이 ‘베니스’, 그리고 ‘비엔날레’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게 된 배경은 팬데믹 이후 예술계가 비엔날레와 미술관 등 예술제도를 행성적 사건의 틀로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과 관련된다. 특히 비엔날레는 도시 전체가 예술 이벤트의 대상이 되어 특수한 커뮤니티, 장소성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예술제도이다. 비엔날레는 이전의 관례였던 국가간 경쟁과 환희, 남용의 역사적 찌꺼기를 벗어던지고, 해방적 사회와 생태학적 목표를 위해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막다른 길에 섰다. 탈식민적 내러티브에 기반한 연대와 협업은 그 대안으로 선택된 핵심 전략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이 주최한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6월 26일과 27일 양일간 베니스 현지에서 진행된 이 행사의 연계 담론 프로그램 「디어 오션 프렌즈」를 기획하며 한국과 유럽,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을 기반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석학 및 예술가, 큐레이터, 환경운동가 12인의 전문가(팀)를 패널로 구성했다. (탈)인류세 시대 ‘바다’를 공동의 지평으로 접근해 베니스 지역의 생태환경적 문제의식을 아시아, 태평양, 인도양 해역의 문화적, 역사적 내러티브와 연결하여 새로운 사고를 개발하고 실천적 대안을 제안해보고자 한 시도였다. 참여자들은 역사적 착취와 현대 환경문제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 태평양 해역과 베니스 지역의 여러 섬에서 어떠한 창조적 연대가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국적, 다세대, 다학문적 접근으로 전통적 지식과 현대 과학 지식을 통합하는 연구를 통해 예술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고 환경 보존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기후체제에서 비엔날레가 장기적이고 영향력있는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전략이 필요할까? 본질적으로 한시적인 비엔날레 전시가 공공정책이나 커뮤니티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인 사회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지막 종합 토론에서 패널들은 비엔날레가 특정 지역에 위치해 매우 지역적으로 관련성있고 중요한 개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엔날레는 한시적이지만 글로벌 예술제도로서 매우 강력하고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관심을 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적 개입과 도전이 여전히 위선적이거나 피상적인 방식으로 다뤄질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인정해야 한다. 인류학자 백영경 제주대 교수는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 “구체적인 맥락의 상실”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자와 예술가 모두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복잡성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불편한 진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에 개최된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 주제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에 대해 총감독이었던 랄프 러고프는 성명서에서 예술이 정치영역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지만, 이 난세에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지침서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예술이 세상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잠재적인 세계와 변화의 형태에 영감을 주거나 모델링하고 예시하는 것이기에 (탈)인류세 예술기관은 항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틀간의 열띤 담론의 장을 마무리하며,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수렴되었다. 세계를 보존하고 변혁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기 위해 비엔날레는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가? 박물관학자 콜린 스털링의 언급처럼, 무엇보다 미술계 내부의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대해 모두가 공감했다. 여전히 비엔날레는 많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현실과 극도로 분리되어 있다. 예술계가 이것을 진지하게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이 세계를 보존하고 변혁을 매개하며 인간 및 비인간 주체와의 창조적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조주현 / 큐레이터,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2024.7.2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