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지치지 않으려는 마음: 장준하 『돌베개』
회고록은 서술이 이루어지는 시점과 사건이 발생한 시점 간의 ‘시차’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글쓰기 양식이다. 이때 ‘시차’란 시간의 차이[時差]이기도 하고, 시각의 차이[視差]이기도 하다.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생겨난 이 시차‘들’의 깊이는 때로는 유려한 철학적 사변이나 문학적 상상력보다도 묵직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사상계』를 펴낸 언론인이자 군부정권에 필사적으로 저항한 정치인이었던 장준하(張俊河, 1918~75)의 회고록인 『돌베개』(1971)가 그런 경우이다. 주지하듯 그는 해방 직전에 학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쉬저우의 일본군 부대로 끌려갔던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다른 탈출 학병들과 함께 당시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향해 떠났다. 『돌베개』에는 쉬저우에서 충칭까지 일본군의 감시망과 국공내전의 혼란상을 뚫고 무려 6천리를 걸어 도달한 대장정의 기록이 담겼다. 물론 이 청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1971년 무렵, 종신 집권의 길로 달려가는 군부정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찬 장년의 장준하이다. 너무 험준해서 제비도 날아서 넘지 못한다는 파촉령의 설원을 헤매던 청년 장준하를 소환한 장년의 장준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회고록의 표제인 ‘돌베개’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홀로 헤매다 신을 만난 창세기 야곱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지친 몸으로 길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들었던 야곱에게 신이 찾아와 구원과 축복을 약속한다. 이에 야곱은 자신이 베고 누웠던 돌로 비석을 세우며 신을 만난 땅임을 표시한다. 조선에 두고 온 아내에게 탈출 계획을 알리기 위해 암구호로 인용했다는 야곱의 일화는 이 회고록에서 장준하의 회상을 끌고 가는 상징적 힘을 지닌다. ‘돌베개’는 일차적으로는 기아와 불안에 떨며 노숙하던 나날의 거친 잠자리와 그로 인한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일컫는 것이겠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렇듯 직접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새벽에 갈대밭 속을 헤매고 아직 아침밥을 못 먹은 배 속의 시장기는 또다시 우리에게 시련을 요구했다. 풀잎이라도 짓씹어보고 싶은 욕구를 견디어 내며 나는 야곱의 돌베개를 생각했다.
나는 사실 나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다. (…) 이긴다는 것은 모두 내 생애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의 생애가 만일 나 이외의 것을 위해 있을진대, 반드시 오늘의 이 이김은 나의 생애를 위해 필요한 것이리라.(100면)
대체 왜 젊다는 이유로 남의 전장에 끌려와야 하는지, 대체 왜 낯선 땅에서 고통스럽게 헤매고 있는 것인지. 평안도 목사의 아들이었던 장준하는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막힌 상황을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기로 한다. 야곱에게 이러한 고행은 결국 신의 구원과 축복에 닿는 방편이 되었다. 이처럼 야곱의 운명에 자신을 밀어넣는 사유의 종착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닿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이 나에게 임할 자리, 내가 돌베개를 베고 누워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그 답을 구하는 여정이 ‘임시정부’에의 합류와 언론운동, 반정부운동으로 이어졌음은 그의 이후 행적에서 잘 드러난다. 즉 수난을 감당하며 조국의 품을 향해 걷는 것, 이것이 『돌베개』의 핵심 주제이다.
그러나 회고록 『돌베개』의 깊이는 이 소명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이상적인 조국에 닿는 일이 너무도 요원해 보인다는 막막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데 있다. 그로부터 생겨나는 환멸의 깊이는 『돌베개』를 애국심을 증명하려는 반정부 정치인의 학병 시절 회고록쯤으로 단정해서는 안 되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이러한 환멸은 어쩌면 그의 세대적 특수성에서부터 예고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는 조국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일제 말인 1944년 당시 학병으로 징집된 조선인 청년들은 1920년을 전후하여 출생한 이들이다. 이들은 한일합병이 된 지 십여년 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그들에게 ‘조국’이란 조부나 부친의 전언을 통해서 알고 있는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가족이 사용하는 조선말과 그가 살아온 고향 땅으로 존재한다. 임정의 선배 독립운동가들에게 조국이 ‘빼앗긴 실체’였다면 장준하에게 조국이란 아직은 환상이자 상상의 대상이었다. 이에 충칭을 찾아가는 길, 나아가 해방 후 정부에 참여하는 일 등은 그에게 있어서는 환상을 실체로 바꾸어가는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신의 음성을 돌베개로 남겼던 야곱처럼 그는 관념이 아닌 육체를 갖춘 조국을 찾고자 했다. 임정 청사 위에서 휘날리는 기를 보고 ‘피가 뛰고 혈관이 좁아지는’ 감각을 느낀 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조국의 실체와 마주쳤다는 감격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가 현실에서 만난 조국은 번번이 실망을 안겨주었다. 상봉의 감격이 가신 후 들여다 본 임시정부 내부에는 여러 정파가 대립하는 중이었고, 광복군 내부에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기회주의자들이 존재했다. 그리움 끝에 다시 돌아온 조선 땅의 정치풍토도 어지럽기만 했다. 회고록을 쓰던 시점에는 초법적인 삼선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고 국가기관을 사유화하는 독재자가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 요컨대 조국은 늘 훼손되고 오염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체 이상적인 조국이란 얼마나 먼 곳에 있는 것인가.
이에 장준하는 고통 속에서도 돌베개를 찾던 마음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숭고한 열정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거친 중원을 횡단하는 생명을 건 걷기란 이 대목에서 스스로 선택한 소명을 완수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 장준하나 백범 김구 같은 이들의 생애와 겹쳐진다. 다시 말해 이들의 삶은 도달이 요원한 이상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 궤적이며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지치지 않는 마음이 아니다. 지쳤지만 지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조국이란 그 간절한 마음속에만 존재하며 현실은 다만 그 마음에 닿으려는 고단한 여정으로만 재현되는 것일 수 있다.
공적 가치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조차 무너져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오는 요즘이다. 그러나 이 탄식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며, 그 안에 담긴 염려가 어느 순간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전화했던 순간을 우리는 이미 지켜본 바 있다. 『돌베개』가 이미 알려준 바, 이상은 그것을 열망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실체화의 가능성을 갖는다. 유신 전야에 회고록을 한줄씩 써나갔던 저 영원한 청년의 마음이 새삼 묵직하게 와닿는 밤이다.
* 이 글은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에 소개된 서평입니다.
정주아 / 강원대 국어국문학 교수
2024.7.30. ⓒ창비주간논평·잔다리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