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미국 대선이 ‘좌파’들에게 던지는 질문
미국 대통령선거가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선거 직전까지도 언론이나 전문가는 그 반대의 결과를 예측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지금 이들은 잘못된 예측의 책임을 여론조사 기관에 돌리고 있지만, 여론조사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과 2022년 대선에서도 반복된 문제였다. 따라서 해리스와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기대와 희망이 적지 않게 반영된 것이었다고 하겠다. 트럼프의 ‘비정상성’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나, 이러한 이해는 앞으로의 도전에 대응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변화를 놓치게 만든다. 미국 민주당 패배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이전 선거에 대한 평가보다 더 중요해진 이유이다.
일단 민주당이 노동자 계층의 관심사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 주요한 패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샌더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 안팎의 좌파가 제기한 주장만은 아니다. 선거 직후 미국의 대표적 보수매체인 폭스뉴스에 나온 패널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한국의 주류매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노동계급(working class)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선거를 평가하는 장면은 매우 낯설었다.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백인 노동자만이 아니라 비백인(히스패닉이나 흑인) 노동자의 트럼프 지지가 뚜렷이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를 선거인단 수만이 아니라 유권자 투표에서도 앞서게 만든 동력이었다.
설명이 쉽지 않은 것은 노동계급이 왜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했는가라는 점이다. 주로 언급되는 요인은 인플레이션 문제이다. 현재 물가상승은 세계적으로 노동자를 포함한 서민에게 큰 어려움을 주는 원인이다. 그런데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022년 6월 9.1%(전달 대비 물가상승률을 1년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까지 치솟은 이후 계속 하락해, 2024년 9월에 이르면 2021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4%까지 떨어졌다. 실업률은 2024년 10월 4.1%로, 3% 후반을 기록했던 몇달 전에 비해 다소 상승했으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2021년 1월의 6.4%보다는 크게 낮아진 수치이다. 3분기 경제성장률은 2.8%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러한 경제지표는 집권당인 민주당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실적이다.
객관적 경제지표만으로 노동자 계층의 트럼프 지지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정체성 혹은 문화적 요인으로 이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다. 트랜스젠더, 범죄, 이민 등의 문제가 노동자 유권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폭스뉴스와 같은 보수매체들도 최근에는 노동계급 문제는 뒷전에 둔 채 트랜스젠더, 범죄, 이민 등과 관련한 민주당 정책을 뒤집는 데 화력을 더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을 비꼬기 위해 노동계급 문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계속 언급하고 싶어하는 주제는 아니다. 반면 미국 민주당 내에서는 트럼프 반대에 몰두할 일이 아니라 트럼프가 이 주제에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그에 협력하고 트럼프가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자신의 공약을 지킬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유용한 전술일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되기는 어렵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이민문제가 노동자의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여기에 미국 민주당이나 유럽 좌파정당의 고민이 있다. 소위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이 다른 측면에서의 진보성과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딜레마에 갇혀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현재의 정책을 고수하면 노동자의 지지가 계속 하락하고,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하면 정치적 퇴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틀을 넘어서서 타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결방법에 앞서 이 딜레마가 출현한 이유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제설정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이나 정책을 만들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 민주당이나 유럽의 좌파 정당이 지금껏 추진해온 정책이 이러한 딜레마를 자초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여러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들의 태도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 역시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유럽의 이민문제는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무력으로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쉽게 동의하거나 이를 자신의 정책으로 추진했다. 이는 유럽으로의 대량 이민을 촉발했고 유럽 내 이민 관련 갈등을 더 증폭시켰다. 현재 우끄라이나전쟁과 관련해서도 도덕적 판단만을 앞세우며 전쟁을 지속시킬 뿐 어떤 출구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서민층으로서는 자신에게 써야 하는 자원을 의미가 없는 전쟁에 (그리고 미국의 군수산업을 위해)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었는가, 전쟁을 빨리 끝낼 방법은 없었는가라는 물음은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가자전쟁과 관련한 문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좌파 내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지는 않지만, 좌파 주류정당의 태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이후 우끄라이나가 미국의 무기로 러시아 내의 원거리 목표를 타격하는 것을 허용했고, 우끄라이나전쟁의 확전 가능성을 높였다.
트럼프가 평화주의의 사도로 등장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진보정치가 자초한 역설이다. 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확산되는 혐오 가운데에서는 진보의 길을 찾기 어렵다. 이 역설적 상황은 노동자의 이익과 양립할 수 있는 평화주의 전략에 의해서만 타개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그러한 의지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2024.12.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