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2025년 공적연금 개혁, 큰 변화를 위한 작은 한걸음
최영준
‘연금의 딜레마’라는 표현이 있다. 소득보장을 높이면 재정안정성이 줄어들고, 재정안정성을 강화하면 소득보장이 약화되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연금은 소득보장이 낮은 동시에 재정안정성도 낮다.
우리나라의 소득보장은 실제 매우 열악하다. OECD에서 노인빈곤율 통계가 나온 이래로 한국은 줄곧 40% 내외의 수치를 기록한 최악의 노인빈곤국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간단하다. OECD 국가들의 평균 공적연금 지출이 GDP 대비 9%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3.4%에 지나지 않는다(2020년 기준). 9%와 3.4% 차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100조 이상의 차이이다. 즉, 우리는 OECD 평균 대비 노후 소득보장에 100조 이상을 쓰지 않고 있다.
이렇게 적게 지출하는데 재정이 불안정하다. 현재가 아닌 미래의 불안정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빠른 노령화 및 낮은 연금기여율로 인해 2055년경에 기금 고갈이 예상되어왔다. 기금 고갈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미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연금의 기금 없이 현세대가 낸 기여금으로 노인세대가 연금을 받아가는 부과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 그사이 연금개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기금이 고갈되어 전면 부과방식으로 운영하려 할 때 보험료율이 소득의 30%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전자의 입장에서 소득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후자의 입장에서 재정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각자의 주장이 부딪히고 합의가 되지 않다보니 정작 전자나 후자의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했던 보험료 조기 인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번 2025년 3월의 연금개혁 이전까지 두 입장은 13% 보험료율 인상에는 합의가 있었지만, 소득대체율(40년 기여했을 때 평균 생애소득 대비 연금급여 비율)에 대해서는 각각 50%와 40%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 긴 평행선이 드디어 타협되었다. 2025년 3월 20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소득대체율은 본래 41.5%에서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통해 고정비율 43%로 소폭 상승하였다. 또한 보험료율이 13%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하면서 기금 고갈시점은 기금수익률에 따라 약 10년에서 15년 늦춰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개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세대론에 기반한 비판이다. 기성세대가 너무 많은 것을 누리는(이른바 ‘꿀을 빠는’) 개혁이고, 청년세대의 부담이 많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기금 고갈시점을 일시적으로만 늦춘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구조개혁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연금개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현재와 미래의 소득보장에 턱없이 부족한 연금개혁이라는 지적이다. 하나씩 이러한 비판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세대론에 기반한 비판은 연금만을 고려하면 타당한 지적이다. 소득대체율이 43%로 올라간 것은 청년층 역시 혜택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오해가 있지만, 현재 노년층이나 장년층에 비해 청년층이 기여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급여 대비 부담을 국민연금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협소하다. 장·노년층이 ‘꿀’을 누리고 있는 세대라면 앞서 언급한 노인빈곤이나 50대 남성의 고독사 비중이 가장 높은 점 등은 설명되기 어렵다. 노인세대의 소득불안정성이 그들의 도덕적 해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공적제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그들의 생애에서 부모부양, 자녀교육 및 지원, 손자녀돌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청년세대만이 부담을 진다는 비판은 과도하다.
오히려 문제는 세대 내 불평등에 있다. 많은 것을 누린 노인세대도 있지만, 다수의 노인은 빈곤하거나 빈곤상태에 가깝다. 소수의 부유한 청년층이 있지만, 어려운 다수의 청년이 있다. 사회적 이동성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부유한 기성세대의 자녀는 부유하고, 어려운 부모세대의 자녀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세대간 불균형 담론은 세대 내 불평등이라는 실제 문제로 초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세대간 불균형 담론이 제기한 두가지 문제의식은 숙고해보아야 한다. 첫째, 청년의 목소리가 연금개혁에 더욱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 연금개혁에 영향을 미치며 고려되는 대상은 대부분 50~60대 남성인데, 이들은 국민연금 가입자도 아닌 경우가 많다. 둘째, 재정문제를 미래로 늦추지 말고 지금 풀기 시작하자는 점이다. 현세대에서 부담하여 세대 내 불평등을 감소시키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구조개혁안이 아닌 임시방편적 개혁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 타당한지 살펴보자. 우선 입장 차가 상당한 두 입장이 타협될 때까지 개혁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국민연금을 약화시키는 입장에 다름 아니다. 국민연금 기여율이 1998년 9%가 된 이후 지금까지 보험료율을 한번도 올리지 못했다. 그사이 저출산이 지속되면서 국민연금이 미래 지급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계속 증폭되었지만, 어떤 이유인지 보험료 인상은 지속적으로 좌절되었다. 누가 승자였을까? 일부 언론은 불안을 부추겼고, 그때마다 국민들은 민간연금 등의 개인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한번의 개혁만으로 기금불안정을 씻을 영구적 방안을 찾자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구조개혁 대신 지속적인 모수개혁으로도 재정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 둘째, 강력한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거나 보험료율을 18% 정도까지 올리면 당장의 기금 고갈 우려를 경감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연금의 재정안정을 최우선으로 두는 강력한 자동안정장치는 연금 재정이 불안정해질 때 국민연금 급여를 과도하게 낮추어 평균가입자가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결국 국민들은 또 시장에 노후를 기대야 한다. 보험료율을 18%로 올리게 되면 보험료율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자영업자 등은 사각지대로 이전될 위험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소득보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비판이다. 그렇다. 2023년 재정계산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40%를 가정할 때 2050년 수급자의 평균 가입 연수는 여전히 24년 정도이고, 소득대체율은 약 26% 정도이다. 소득대체율 3% 인상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10년 이내에 벌어질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의 발전, 플랫폼 노동의 증가 등 변화하는 노동시장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발맞춰 공적연금의 급여와 기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개혁도 추후에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소득보장을 고려할 때 지난 약 20년 동안 꾸준히 확대되어온 기초연금을 줄이기보다 어떻게 재정을 마련하여 다수를 위한 기초연금이 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따라서 추후의 연금개혁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과제는 증세다. 미래에 기금이 소진된 다음 조세를 투입하는 것보다 지금부터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며 공적연금을 위한 기금을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금의 투자이익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기준을 정해서 세수 흑자분의 일부를 적립하는 방식과 함께, 모든 소득에 대한 일정한 비율의 증세를 통해서 공적연금 기금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난제인 연금개혁은 한걸음에 배부를 수는 없다. 작은 걸음을 내디딘 2025년 연금개혁은 그런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이제 더 나은 국민연금과 공적연금을 위해서 함께 2년 정도의 시계를 가지고 함께 숙의하며 방향을 찾아가야 할 때이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2025.4.22.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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