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벼랑 끝에 내몰린 대한민국 어민들
어민들이 어업을 포기하고 있다. 잘못된 ‘남획 신화’에서 비롯된 온갖 어업규제와 기후변화로 어획량은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인건비와 기름값은 계속 올라 경영악화를 더이상 견디지 못한 까닭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10년 안에 우리 바다에서 근해어선은 자취를 감추고 연안어업도 어촌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겨우 명맥만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근해어선들이 정부 감척(減隻) 폐업지원금이라도 받고 어업을 포기하려 한다. 이미 몇년 전부터 부산과 통영 근해어선들도 앞다투어 감척 신청을 하고 있다. 특히 오징어만 주로 잡아오던 동해 채낚기어업은 모두 도산 위기이다. 감척지원금사업 대상에 들어가는 것을 로또 당첨으로 여길 정도라고 한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어업과 어민을 천시하는 나라가 있을까. 유럽 각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경제논리 이전에 국가 자존심을 걸고 자국 어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어민들은 애국자로 대접받는다. 반면 대한민국 어민들은 온갖 어업규제로 대부분이 전과범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대중에게도 수산자원을 고갈시키는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매도되기 일쑤다.
지난 40년 동안 국내 일부 수산 관련 연구자들과 대학교수들은 불확실한 ‘어획노력량’ 자료에 기반해 엉터리 통계분석을 내놓고, 어민들의 ‘남획’ 탓에 수산자원이 계속 줄어들어 곧 바다생태계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해왔다. 그러면서 인공어초나 바다숲과 같은 혈세 탕진 바다토목사업을 합리화했다. 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일본 어민들을 위해 만들었던 어업규제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하여, 전국에 전기자동차가 달리는 21세기에도 우리의 어업 형태와 어선 규모는 백여년 전 인력거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민들이 기후변화로 달라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보려고 해도 백년 전과 같은 온갖 규제가 족쇄로 작용한다. 이것이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어업경영이 악화하고 어가 소득과 인구가 줄어든 근본적 이유이다. 촘촘한 어업규제 때문에 어민들은 잡는 어종이나 어구어법을 바꿀 수 없으며, 새로운 어장에서 고기가 많이 잡혀도 조업장소를 바꿀 수가 없다. 어선에 복지시설을 늘리고 장비를 현대화하여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고기를 잡는 것도 어선 크기 상한규제에 묶여 불가능하다.
지금 같은 기후변화 개념이 없었을 조선시대에도 잘 잡히던 대구가 안 잡힐 경우 어민이 다른 어종으로 세금을 대납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했다(조선왕조실록 중종 11년, 1516년 5월 21일 기록). 그런데 오늘날 해양수산부는 기후변화로 우점종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멸치 중층쌍끌이(권현망)어업이면 멸치만 잡으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멸치·정어리·밴댕이 등 청어과 소형 부어류는 기후변화에 특히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부수어획(혼획)에 대한 규제가 계속되면 멸치어업은 기후변화에 따른 경영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어업 경영악화와 어촌 소멸위기, 그리고 최근 오히려 늘고 있는 어선사고의 궁극적 원인이 잘못된 남획 신화에서 비롯된 어업규제 때문임을 해수부도 인정한 것인지, 2023년 8월 당정협의를 통해 어업규제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발표했다. 그러나 그 진행속도가 너무 느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규제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더구나 당정협의회에서 연근해 어업정책을 할당제인 총허용어획량제도(TAC)로 전면전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하는데, 기후변화 적응에 TAC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TAC는 개별 어종에 대해 연간 잡을 수 있는 총 어획량을 설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만 어획을 허용하는 수산자원 관리제도를 말하는데, 바다환경 변화나 물고기 서식지 이동 등을 고려하지 않아 기후변화 적응에 역행하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꾸준한 지적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해수부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TAC를 고수하고 있다.
나는 15년 전부터 논문과 언론기고문 등을 통해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따라 대형 부어류인 방어·삼치·참다랑어와 함께 단년생 연체동물인 오징어 서식지가 가장 빨리 북상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수산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명태가 사라진 것이 노가리 ‘남획 때문’이라는 명태살리기사업에서 볼 수 있듯 해수부와 산하 연구기관은 기후변화가 우리 어업에 미치는 영향을 애써 부정해왔다. 늦게나마 심각성을 인지한 지난해부터 부랴부랴 대응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이마저도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다.
사농공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 해양은 강조하면서 수산을 천시하는 태도는 새 정부에서도 드러난다. 해수부 청사를 부산으로 옮기면 북극항로 개척 등 해운업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정작 국민들이 매일 먹는 생선을 공급하는 수산업을 어떻게 회생시키고 어촌소멸을 막는 계기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는 것이다. 우리 바다에서 곧 고깃배가 모두 사라지고 어촌이 소멸할 절박한 비상상황인데도 해수부는 아직도 수산자원 보호니 어업선진화니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한가하게 반복하고 있다.
큰 혁신 없이 이대로 가다가는 10년 뒤 우리 식탁 생선은 모두 수입 냉동수산물로 바뀔 것이다. 잘못된 어업정책으로 지난 40년 동안 우리 바다 어획량은 꾸준히 줄어든 반면 수입량은 늘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생선 중 3분의 2는 이미 수입산이다. 우리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을 계속 먹으려면 그동안 흉내만 낸 완화가 아니라, TAC, 부수어획금지, 금지체장, 금어기, 조업금지구역과 같은 어업규제를 모두 없애 어민들이 자유롭게 고기를 잡아 어가 소득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업관리를 더이상 경직된 정부부처가 아닌 민간자율에 맡기는 방안도 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기후변화로 어업환경이 요동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행정관료들이 그 변화에 맞추어 관성적인 규제를 개혁하고 혁신적인 수산정책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지난 30년 동안 해온 수산자원조성사업(인공어초, 바다숲)이니 명태살리기니 하는 국민혈세 탕진 사업에 대해 정부나 학계에서 누구 하나 지난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책임질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동서고금 관료조직은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게 마련이므로, 앞으로 수산업분야 규제개혁 주체도 민간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수산업협동조합(수협)이라는 민간조직이 있다. 다만 지금은 정부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해 관변단체로 전락한 지 오래라 어민들 이익은 뒷전이고 해수부 눈치나 보고 있다. 특히 어업은 ‘공유지의 비극’에서 비롯된 업종·지역·노사 간 갈등이 심해 어민들끼리 단결된 목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에 수협의 역할과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어민들과 수산업 종사자들을 섬길 수 있는 수협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가칭 ‘국가수산업진흥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관이 수협 업무를 지휘감독하게 하여, 어민들과 수산업 종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수산정책과 어업규제를 만들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수협이 어민과 수산업 종사자 이익을 대변하는 독립된 조직으로 탈바꿈해 규제개혁 주체로 나서는 것이 실로 필요하다. 근해어업은 배 규모 상한을 없애 수천 톤 이상 대형어선으로 우리 영해권을 지키면서 기업형어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연안어업도 관련 규제를 개혁할 수 있게끔 업종별·지역별 갈등을 중재해줄 수 있다면 머지않아 10년 이내에 한국도 어민들이 잘 살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수산강국이 될 것이다.
정석근 / 국립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2025.10.14.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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