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권력도 ‘개구리울음’을 울어라: 1980년 사북 광부와 주민들의 국가 사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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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북을 울렸고, 소설도 소리를 보탰다. 2024년 DMZ영화제 대상 수상작 「1980 사북」(감독 박봉남)은 2025년 10월 공식 개봉을 한 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북사건’이 단순히 그해 4월 21일부터 24일 사이 광부들이 벌인 생존권 투쟁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훌륭히 드러냈다. 동원탄좌의 어용노조와 기업이익만 챙긴 경찰에 대한 불만은 노동자들의 파업투쟁과 시위로 폭발했다. 당시에도 경찰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국가는, 합의로 상황이 종결된 뒤인 5월 느닷없이 더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다. 1980년 5월 6일부터 27일까지 사북에서는 2백명에 가까운 사북 광부와 주민들이 집단고문을 당했다. 4월 노동투쟁에 대한 계엄군과 경찰, 즉 국가의 잔인한 보복이었다. 광부와 주민들은 고문 폭력에 직면해 서로를 고발하도록 강제되어 최소한의 인간 존엄과 신뢰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사북 노동자·주민들은 국가폭력에 의해 ‘두번’의 고통을 받은 셈이다.
「1980 사북」은 새로운 자료와 증인의 발굴을 통해 ‘사건’이 그 ‘두번’으로도 끝나지 않았음을 잘 밝혔다. 투쟁 광부에 대한 ‘빨갱이’ 낙인과 고문 후유증 및 사회의 무관심과 연좌제로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로 내몰렸다. 같은 시기 일어난 광주·전남의 민주항쟁이 이후 민주화운동의 원천적 집단기억으로 자리잡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정치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동안, 사북 광부와 주민은 4월투쟁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폭도’로만 알려졌다. 5월의 고문 피해는 40여년간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해 몸과 마음에 새로운 ‘진폐증’을 낳았다. 고립된 탄광마을의 광부와 주민들은 그렇게 ‘세번’ 당했다. 그들은 “개구리 울듯” 울었다(황인욱·박다영·한정원 『사북항쟁과 국가폭력』, 지식공작소 2021, 275면).
그러니 최은미 단편소설 「김춘영」(『창작과비평』 2025년 여름호 수록, 2025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에서 ‘김춘영’은 폭설로 인해 맞은 낯선 방문객 부부와 대민지원을 나온 군인들의 대화 중 불쑥 튀어나온 “피아식별” 한마디에도 오줌을 지린다. 소설에서 김춘영은 사건 당시 사북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이로, 고문피해자이지만 광부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다른 구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구술기록자로서 그의 가없는 절망과 고통의 진본성을 접한 소설의 화자 ‘나’가 말하듯, 이 사북사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청자”에게 들리도록 하려면 우리는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할 것이다.
한편 영화 속 화자 황인욱(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과 사북항쟁의 주역이자 동시에 국가폭력 피해자인 이원갑은 자주 ‘사북의 광부 집안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홀대와 무시를 받았을까’ 묻는다. 강원도 산골마을의 고립된 광부와 가족들의 ‘개구리울음’은 아우성과 메아리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늙고 병든 피해자들이 어렵게 몸을 세워 ‘사북항쟁동지회’로 결집했다. ‘성공’과는 관련 없이 ‘결기’만 챙긴 현지인들이 팔을 걷었다.
그 결과 2008년 제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사북사건을 공권력 개입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국가가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2015년 이원갑 신경 등 사건의 주역들은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황한섭 강윤호 오항규 진복규 양규용 박노연 등의 피해자들도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앞서 언급한 피해자 일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국가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이미 세상을 떠났다. 「1980 사북」의 엔딩 씬에서 관객들은 ‘개구리울음’을 삼켰다. 출연자 다수의 이름 앞에 ‘고(故)’ 자가 적힌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제2기 진실화해위는 2024년 12월 17일 제93차 전체위원회에서 구정우를 포함한 사북사건 관련 인권침해 피해자 14명을 국가폭력 피해자로 다시 인정하며 국가의 사과 및 기념사업 실행을 재권고했다. 이쯤되면 국가가 나서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통령실과 총리실에서 관련 사과나 사업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없다. 사북사건의 피해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 사과를 비롯해 신원회복과 기념사업을 이끌어낼 힘이 부족하다.
세가지가 시급하다. 먼저, 국가는 공식 사과를 이행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해 사북지역뿐 아니라 정치공동체 주민들 모두의 관심을 촉구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임을 약속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직권조사를 통해 피해의 양상과 규모를 더 밝히고 범죄행위와 범죄자들을 드러내야 한다. 셋째, 국가는 사북을 국가폭력의 기억공간으로 조성하고 치유와 회복의 거점으로 만들도록 나서야 한다.
주장은 정당하고 요구는 절박하다. 2025년 10월 17일, 학계·문화계·종교계 등이 연대해 ‘1980 사북사건에 대한 국가사과를 촉구하는 각계 1000인 주권자 성명’과 서명부를 정부측(국무조정실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명필름 이은 대표 등 「1980 사북」을 관람한 영화계 인사들도 나서 ‘1980 사북 광부들의 외침에 화답하는 늦은 메아리’ 운동을 발의하고 시민상영위원회를 만들었다. 국가의 응답을 영화의 성공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안타깝지만 그나마 영화와 소설이 있어 다행이다.
사북은 늘 광주의 5·18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폭력과 민주항쟁 모두 광주 이전에 또한 동시에 사북에서 있었다. 게다가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공수11여단은 그 한달 전인 4월 23일 사북에 투입되기 위해 준비를 마쳤고 사북 근처에 집결한 바 있다. 사북이 광주가 될 뻔했다. 그렇게 가해세력에 주목하면, 5·18은 항상 사북과 함께 언급되어야 한다. 5·18로 정치적 사회화를 경험한 많은 이들이 그해 사북의 4월과 5월을 알지 못했거나 망각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서로 다른 장소의 역사와 기억이 그렇게 연결된다. 국가폭력의 피해나 민주항쟁의 의미는 위계나 서열, 경합과 갈등이 아니라 연루와 연결, 상호작용의 대상이다. 그것 또한 사북을 통해 얻는 과거사정리의 새 발판이다.
이제 누구도 사회발전 방향과 국가 미래전망을 명료히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니 현재의 정치 불만과 경제위기는 손쉽게 선동정치의 불쏘시개로 전락한다. 바로 이 시기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국가 스스로 과거의 폭력범죄와 방관의 오류를 더 적극 인정하고 사과해 국가의 존재 이유와 권력의 존재방식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권력의 문제와 결함에 대한 정치적 갱신과 자정 노력, 특히 국가폭력 문제의 해결능력과 의지에 대한 공동체의 신뢰야말로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갱신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극우세력들이 난동을 부릴수록, 민주주의 권력은 국가범죄의 피해를 제대로 밝히고 온전히 책임지는 길을 넓히고 닦아야 한다. 그렇게 선동정치와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다르고 지속적으로 다름을 보여야 한다. 사북사건 피해자를 비롯해 구석의 힘없는 자들에게 가해진 여러 국가폭력 사건의 과거사정리야말로 민주주의 갱신의 초석이다. 그러니 이재명정부는 사북사건 피해자들의 ‘개구리울음’에 어서 답하라.
이동기 /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2025.11.18.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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