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뉴욕발 좌파 포퓰리즘의 확산, 극우화의 해독제
이송희일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뉴욕시장 당선은 정치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불리는 뉴욕에서 34살의 무슬림 이민자 출신이자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로 공언한 청년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촉각을 세우며 뉴욕을 주시했는데, 그중에서도 유럽 좌파의 눈길이 특히 비상했다.
가장 먼저 독일의 좌파당(Die Linke)이 관계자들을 파견했고 유럽의회 좌파 그룹의 공동의장인 마농 오브리(Manon Aubry)도 직접 뉴욕으로 날아갔다. 선거 과정을 가까이에서 목도하기 위해서다. 또 벨기에 노동자당(PTB-PVDA)은 맘다니 캠프 관계자들을 초청하는가 하면, 이딸리아 신생 좌파정당 ‘인민에게 권력을’(Potere al Popolo)은 신속하게 환영 메시지를 타전했다. 나아가 직접 적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프랑스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내년 지방선거에 맘다니의 전략을 참고하겠다고 선언했고, 독일 좌파당의 베를린 시장 후보도 “뉴욕에 사회주의 시장이 가능하다면 베를린에서도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영국 녹색당의 잭 폴란스키(Zack Polanski)다. ‘의심의 여지없이 조란 맘다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그는 2025년 9월 85%의 압도적 지지로 녹색당 대표에 선출됐다. 생태 포퓰리즘(eco-populism)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노동당과 보수당 양당이 초래한 정치적 환멸을 돌파하기 위해 기존의 환경 의제 중심에서 계급정치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결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폴란스키 당대표 당선 후 3개월 동안 10만명 이상의 가입자가 녹색당에 쇄도했고, 2025년 12월 3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 18%로 14%의 노동당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으며, 잭 폴란스키는 젊은 유권자(18~25세) 사이에서 영국 정치인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인 32%를 얻었다. 변방의 녹색당이 주류 정당을 제압한 것이다. 맘다니의 전략을 영국에 접목한 잭 폴란스키의 녹색당이 삽시간에 얻은 이 놀라운 성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유럽 좌파들은 왜 조란 맘다니에 열광하는 걸까?
먼저 조란 맘다니 선거운동이 오늘날의 암담한 정치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별의 지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트럼프와 MAGA가 지배하는 미국에서, 최소 26명의 억만장자가 맘다니를 막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돈을 쏟아붓고 민주당 주류 세력과 뉴욕의 기득권이 반발하는 첩첩산중을 기어이 뚫어내는 과정은 근래 보기 드문 정치적 궤적임에 분명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조란 맘다니 전략은 좌파 포퓰리즘이다. 대중영합주의라는 흔한 오해와 달리, 포퓰리즘은 체제의 위기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라끌라우(E. Laclau)와 무페(C. Mouffe)에 따르면, 위기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귀환하는 것이 곧 포퓰리즘 계기다. 탈진해버린 기존의 체제가 분출하는 정치적·경제적 요구와 분노를 해소하지 못할 때 위기가 발생하고, 그때 기득권과 대중 사이에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는 담론 전략인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이 이민자와 트랜스젠더와 같은 아웃사이더를 허구의 적으로 가정한다면, 좌파 포퓰리즘은 자본과두제와 기층민중의 계급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불평등이 문제다’, ‘집세를 동결시키겠다’는 조란 맘다니의 정공법은 좌파 포퓰리즘의 전형들이다. 부자 증세, 임대료 동결, 대중교통 무상화, 공공 식료품점 등 부의 재분배와 보편 서비스의 강화에 주력한 공약들이 생계비 위기에 처한 뉴욕 시민들의 실제적 욕구에 부응했다. 더불어 이는 정치적 올바름 같은 문화전쟁에 치중할 뿐 신자유주의를 지속하며 불평등 심화와 생계비 위기를 자초한 미국 민주당 같은 엘리트 세력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정확히 타격한 것이기도 했다.
2015년 대선에서 억만장자 계급에 맞선 정치혁명을 주장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B. Sanders)가 좌파 포퓰리즘의 씨앗을 뿌렸고, 그 선거운동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했던 조란 맘다니가 10년 후 뉴욕 시장에 당선되면서 월가 점령운동 이후 미국에서 펼쳐졌던 청년 좌파운동의 결실이 맺어진 셈이다. 물론 맘다니 개인의 능력도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미국 민주사회주의동맹(DSA)과 10만명의 자원활동가들이 300만가구의 문을 두드린 강력한 풀뿌리 선거운동, 그리고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정치전략, 이 두가지가 0%에 가까운 지지율에서 시작해 반세기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견인하며 끝내 뉴욕시장에 당선된 놀라운 여정의 진짜 배경이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유럽 좌파에게 조란 맘다니 선거운동이 각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동유럽부터 서유럽과 스칸디나비아까지 극우세력이 유럽 전역을 횡단하는 위기와 혼돈의 국면에, 대서양 건너 뉴욕에서 펼쳐진 풀뿌리운동의 쾌거가 등대 불빛처럼 명료한 가능성으로 현시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허 속에서 삶의 질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중도주의와 문화전쟁에 집착하는 중도좌파의 그 무능력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극우와 파시즘이 게걸스레 먹어치우며 성장했기에, 이 우경화된 세계를 다시 뒤집기 위해서는 담대하고 급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시대사적 긴급성을 조란 맘다니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다.
확실히 오늘날 좌파 포퓰리즘은 극우화의 해독제다. 시민의 삶에 이로운 정치가 바로 파시즘에 대한 면역이다. 주택·보건·식량·에너지 등 필수서비스가 확대되고 시민의 질이 올라갈수록 분노가 가라앉는다. 응당 이 정치는 대중의 지지가 높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 신인 케이티 윌슨(Katie Wilson)의 시애틀 시장 당선부터 100년 넘게 이어져온 사회민주당의 코펜하겐 시장직 독점을 깨고 사회주의 인민당(Socialistisk Folkeparti) 소속으로서 코펜하겐 시장으로 당선된 시세 마리 웰링(Sisse Marie Welling)에 이르기까지, 제2의 조란 맘다니라 불리며 부유세와 사회주택 등을 앞세워 당선된 최근 사례들이 이를 충분히 예증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뉴욕에서 날아온 저 뜻밖의 소식은 극우들이 맹동하는 위기의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과 급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전언이다. 당연히 내란 이후에도 여전히 극우들이 창궐하는 여기 한국에도 긴요한 교훈이다. 성장과 이윤에 도착된 정치, 그리고 실용주의를 앞세운 우경화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양산하고 극우를 위한 주단을 깔아줄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됐다.
이송희일 / 영화감독
2025.12.16.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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