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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태평염전 등록 말소 논란과 유산 정책이 담아내야할 ‘가치들’



오창현



광복 직후 중국으로부터 천일염 수입이 끊기자, 국내 소금 공급은 급격히 부족해졌고 소금값은 치솟았다. 정부가 전국 곳곳에 염전 건설을 장려한 배경이다. 전남 신안 증도의 태평염전 역시 이러한 정책 기조 속에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조성됐다. 그러나 서해안 일대 넓은 갯벌에 대규모 염전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소금은 곧 과잉생산 상태에 이르렀고, 1962년 전매제가 폐지되었다. 이로써 염전업은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 유지돼온 국가 통제 산업에서 벗어나 완전히 민간의 시장 영역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시장에 맡겨졌던 염전업이 다시 국가 관리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2007년 태평염전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수십만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염전인 태평염전은 목조·석조 소금창고와 염부 숙소, 목욕탕 등이 갯벌과 저수지 경관과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나아가 2018년에는 천일제염법과 자염법(煮鹽法, 해수를 끓여 소금을 얻어내는 방식) 등의 제염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소금 생산방식 자체도 국가유산의 범주로 편입됐다. 이는 천일염이 단순한 생산시설이나 경관을 넘어 삶의 방식까지 포괄할 수 있음을 말한다.


현대 한국에서 천일염은 단순 식재료가 아니다. 자염으로 담가야 김치 맛이 난다는 인식 속에서 천일염은 한때 외면받았지만, 이제는 김장과 젓갈 등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자리잡았다. 오늘날 정제염이 주류가 되었음에도, 채소와 생선을 절이는 데 천일염이 널리 쓰이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은 소금이자, 한국인의 생활사와 얽힌 물질문화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어떤 기준으로 민간의 생업이었던 염전업에 ‘유산’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을까. 국가등록문화유산 제도는 2001년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고, 비지정 유형문화재, 민속문화재 중에서 특별히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것을 지정하게 하였다. 현재는 2024년 제정된 근현대문화유산법에 따라 “역사적·예술적·사회적 또는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개항기 이후의 유산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태평염전은 광복 직후 국내 소금 증산, 전쟁난민 일자리 제공 등 국가 경제정책에 따라 조성된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 현장에서 이제는 국가가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공적 자산으로 성격이 전환된 셈이다.


그러나 유산 지정을 주도했을 지자체나 기업의 기대는 국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의도와는 다소 달랐을 것이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태평염전은 관광·체험 중심의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염전 입구에는 박물관과 까페, 각종 체험시설이 들어섰고 소금동굴 힐링센터와 전망대, 산책로 등 관광 인프라도 촘촘히 조성됐다. 천일염 생산 체험과 힐링캠프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 결과 생계를 위한 노동의 공간이었던 염전은 어느새 대규모 복합 관광지로 그 성격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태평염전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말소 논란의 핵심은 신안 일대 염전이 강제노동과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된 공간이라는 점에 있다.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은 2014년에 이어 2021년에도 반복되며, 일부 염전의 운영구조 자체가 인권문제와 깊이 얽혀 있음을 드러냈다. 여기에 몇해 전 미국정부가 인권침해를 이유로 신안산 소금의 수입을 제한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이 사안은 국제적 문제로까지 확산됐다. 이러한 장소를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문화유산이나 관광지로 소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피해의 기억을 지운 채 경관과 체험만을 앞세운 유산 활용은 또다른 역사왜곡을 낳을 위험이 크다. 인권과 노동의 역사를 분명히 드러내고, 이를 전시와 교육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최근 태평염전 측이 국가등록문화유산 말소를 요청한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논란은 군함도와 사도광산 등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자국이 이룬 근대산업화의 성취를 강조했고, 한국은 조선인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태평염전 사안은 이러한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국제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논란은 국가유산청의 유산 정책이 보다 확장된 가치개념을 수용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과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유산은 우리 민족의 ‘영광의 역사’를 상징하는 논쟁 불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산은 더이상 단일한 의미로 환원될 수 없다. 기억은 다층적이며, 평가는 충돌하고,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산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삭제하거나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과 이해를 드러내고 조정하는 데 있다.


이제 유산 정책은 당위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산은 산업이나 관광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기준을 비추는 거울이다. 유산 정책의 관점에서 유산의 경제적 활용은 유산의 지속가능성과 가치의 성숙을 도모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태평염전 국가등록문화유산 말소 논란은 바로 이 지점을 묻고 있다. 유산 정책은 유산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와 관심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염전업자와 지자체, 지역 소상공인과 외지 방문객, 인권운동가와 피해자, 나아가 미국정부에 이르기까지 과거 유산 정책이 외면해온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충하는 기억과 이해관계, 그리고 인권, 문화다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우리는 어떤 기준 위에서 조정하고 공존시킬 것인가. 오늘날 유산 정책의 진정한 시험대는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오창현 / 국립목포대

2025.12.23.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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